[이덕환의 과학세상] (185) 형광단백질

[ ] | 2008-10-23 20:32
살아있는 세포변화 관찰 가능
물속의 맹독 중금속도 가려내



◇바이오&사이언스

올해 노벨화학상은 특별히 감동적이다. 이번 공적은 서로 아무 관계가 없는 과학자 3명의 끈기와 재능이 40년 가까운 세월을 건너뛰어 결합되면서 이룩된 것이다. 과학의 역사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특별한 경우다. 역경을 이겨낸 굳은 의지와 스승의 애정이 담긴 훈훈한 이야기도 있지만 훌륭한 과학자가 잘못된 제도에 밀려난 씁쓸한 이야기도 있다.

푸른빛이나 자외선을 쪼여주면 녹색 형광(螢光)을 내는 `녹색 형광단백질'(GFP)이 살아있는 세포의 작동을 살펴보는 수단이 되고 있다. 세포나 생물체를 파괴하지 않은 채 세포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변화를 직접 지켜볼 수 있는 정말 획기적인 방법이다.

원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GFP를 만들어내는 유전자를 클로닝 기법으로 DNA의 원하는 곳에 주입하면 된다. 그런 방법으로 표지(標識) 역할을 하는 GFP를 세포에서 만들어지는 수많은 단백질 중에 원하는 단백질에 선택적으로 결합시킬 수 있다. 그런 방법을 이용하면 세포의 성장과 활동 과정에서 특정 단백질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광학현미경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기존의 현미경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새로운 방법이다.

그런 기술이 느닷없이 등장한 것은 아니다. 이야기는 시모무라 오사무(下村脩)가 해파리에서 GFP를 처음으로 분리한 1962년부터 시작된다. 미국 서부 워싱턴주의 프라이데이 하버에 서식하는 녹색 형광을 내는 `에쿼리아 빅토리아' 1만 마리에서 얻은 성과였다. 과학적 호기심 이외에 다른 특별한 목적은 없는 순수한 기초과학 연구의 결과였다.


그런 시모무라에게는 남다른 스승이 있었다. 나고야 대학의 히라타 야시마사 교수는 대학원 학생도 아니었던 조수가 어려운 실험에 성공하자 곧바로 박사 학위를 주었다. 경험이 없었던 시모무라를 미국으로 데려와 GFP를 찾아내도록 해준 프랭크 존슨 교수도 있었다. 두 교수의 남다른 통찰력과 유연한 제도가 오늘날의 시모무라를 만들어낸 셈이다.

그러나 GFP가 유용하게 되기까지는 무려 32년의 세월이 걸렸다. 투명한 선충(蟬蟲)을 연구하던 마틴 챌피의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유전자 클로닝 기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챌피는 대장균의 촉각 수용체 뉴런에 GFP를 결합시켜 살아있는 세포 속에서 뉴런이 움직이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 일에 성공했다.

238개의 아미노산이 맥주 캔 모양으로 접혀있는 GFP는 별난 단백질이다. 생체에서 만들어지는 대부분의 형광 물질이나 색소들과 달리 GFP는 DNA에 들어있는 하나의 유전자에 의해 합성이 되고, 고(高)에너지 분자의 도움이 없이 형광을 내기 때문이다. 단백질에 결합시킬 표지 물질로는 더 없이 좋은 특성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 GFP를 예술 수준으로 발전시킨 것이 바로 로저 첸이었다. 그는 GFP를 구성하는 아미노산을 변화시켜 온갖 화려한 색깔의 GFP를 만들어냈다. 이제 여러 종류의 단백질이 세포 속에서 함께 움직이는 모습을 총 천연색으로 관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GFP가 세포의 작동을 살펴보는 일에만 쓸모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물을 오염시키는 비소와 같은 맹독성의 중금속을 찾아내는 일에도 쓰일 수 있다. 그런데 우리에게 놀라운 기술을 제공해 준 해파리가 왜 녹색의 형광을 만들어내는지는 알 수가 없다고 한다.

GFP의 성공 이야기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있다. 챌피에게 GFP의 유전자를 제공해 준 과학자는 따로 있었다. 더글러스 프래셔가 해파리의 DNA에서 GFP의 유전자를 분리했던 것은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러나 충분한 연구비를 구하지 못한 프래셔는 결국 과학계를 영원히 떠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세상은 공평하지 않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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