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188) 화학숙성의 홍시

[ ] | 2008-11-13 21:01
'화공약품' 카바이드 사용 논란
감에 닿지않게 포장기술 개발을



◇바이오&사이언스

추운 겨울날의 별미인 달콤한 홍시를 생산하는 농가에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홍시를 만들기 위해 인체에 유해한 `화공약품'인 카바이드(칼슘카바이드)를 사용한다는 소문 때문이다. 멜라민 때문에 놀란 가슴을 채 가라앉히지 못한 소비자의 입장이 난처하다. 도무지 누구를 믿어야 하고 무엇을 먹어야 할지 알 수 없는 형편이다.

감은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전통 과일이다. 생과일로 먹기도 하지만 말려서 곶감으로 먹기도 하고 수정과나 감식초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강한 단맛과 함께 타닌의 떫은맛이 감의 특징이다. 타닌이 너무 많이 들어있는 감은 충분히 숙성시켜 수용성의 타닌이 물에 녹지 않는 형태로 변환돼야만 감 특유의 단맛과 향기를 마음껏 즐길 수가 있다.

감나무에 달린 채 숙성시킨 홍시는 수확하기도 어렵고 품질도 나쁘다. 전통적으로 떫은 땡감은 며칠 동안 햇볕을 쪼여주거나 항아리에 넣어 추운 곳에 두는 숙성법이 많이 사용된다. 충분한 숙성으로 섬유질까지 완전히 풀어지게 되면 특유의 말랑말랑하고 달콤한 홍시가 된다. 그런 홍시는 만들기가 어려워 더 귀한 별미였다.

그래서 도입된 것이 바로 문제의 화학숙성법이다. 거의 모든 식물에서 호르몬으로 작용하는 에틸렌을 쓴다. 메티오닌이라는 아미노산으로부터 합성되는 에틸렌의 생리작용은 정말 다양하다. 과일을 숙성시키고, 꽃을 피우고, 싹을 틔우고, 수명이 다한 잎을 떨어뜨리는 일이 모두 에틸렌과 관련된다. 홍수, 가뭄, 서리 등에 의해 성장 환경이 나빠지거나 상처가 생기거나 병원균에 감염되면 에틸렌의 생합성이 촉진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확한 과일이나 꽃병에 꽂아둔 꽃에서도 에틸렌 생합성은 계속된다. 그런 에틸렌이 경제적으로 문제가 되기도 한다. 에틸렌 때문에 유통 중인 바나나, 토마토, 사과가 물러져 버리고 화병에 꽂아두거나 화분에 심어둔 꽃이 너무 빨리 시들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식물이나 과일이 에틸렌을 만들어내지 못하게 만들기도 어렵다. 그래서 메틸사이클로프로펜을 이용해 식물이 에틸렌에 반응하는 경로를 차단하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반드시 숙성을 시켜야 하는 감의 경우에는 정반대로 에틸렌이 꼭 필요하다. 그렇지만 석유화학 공장에서 생산되는 에틸렌 기체는 운반, 저장, 사용이 모두 쉽지 않다. 그래서 찾아낸 것이 바로 아세틸렌이다. 아세틸렌도 에틸렌과 마찬가지로 과일의 숙성을 촉진시킨다.

더욱이 아세틸렌은 쉽게 구할 수 있는 카바이드(칼슘 카바이드)를 물에 넣어 쉽게 만들 수 있다. 전기로에서 석회석과 탄소를 2000도 이상으로 가열해 만든 카바이드는 화학산업에서 탄소 화합물을 만드는 중요한 원료로 사용된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낭만적으로 기억하는 포장마차의 희미한 카바이드 등불이 바로 그렇게 만든 아세틸렌을 이용한 것이었다.

물에 젖은 카바이드를 땡감이 들어있는 상자에 넣어두기만 하면 수송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아세틸렌에 의해 홍시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카바이드가 물과 반응하고 나면 강한 염기인 수산화칼슘이 남게 된다. 홍시 상자에서 발견된 회색 가루가 바로 그것이다. 물론 반응하지 않은 카바이드도 섞여 있다. 감에 묻어있는 가루를 쉽게 씻어낼 수는 있다. 그러나 독성도 있고 냄새도 고약한 가루가 홍시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카바이드로 홍시를 만드는 방법 자체를 포기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맛있으면서도 상품성이 뛰어난 홍시를 만드는 값싸고 확실한 방법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카바이드나 수산화칼슘이 감에 직접 닿지 않도록 만드는 포장기술만 개발하면 된다. 화공약품이라고 무작정 쓰지 말자는 주장은 어리석은 것이다.

서강대 교수/과학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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