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194) 가공식품

[ ] | 2008-12-25 20:56
과일 통조림 제조 염산사용 논란
일방적 비난보단 과학적 근거를



◇바이오&사이언스

가공식품에 대한 거부감을 부추기는 보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번에는 과일 통조림 제조 과정에서 맹독성의 염산과 수산화나트륨을 사용한 것이 문제라고 한다. 물론 가공식품의 제조 과정에서 드러나는 문제는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 그러나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근거가 없는 일방적인 비난은 공연한 혼란만 부추길 뿐이다.

대표적인 가공식품인 통조림은 1804년 프랑스의 아페르에 의해 처음 개발됐다. 식품을 가장 신선한 상태로 장기간 보존할 수 있는 최초의 기술이었다. 그러나 통조림이 본격적으로 활용되기까지는 한 세기 이상의 노력이 필요했다. 우리나라에서 통조림의 역사는 훨씬 더 짧다. 1960년대부터 조금씩 도입되기 시작했고 과일 통조림은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가공 기술을 확보할 수 있었다. 통조림 기술은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니다.

과일 통조림 제조 기술의 핵심은 껍질을 매끈하게 벗겨내는 일이다. 사람의 손이나 기계적인 방법으로 귤의 속껍질이나 복숭아의 껍질을 매끈하게 벗겨내기는 쉽지 않다. 결국 화학적인 방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섬유소(셀룰로오스)로 만들어진 껍질이 과일에 달라붙도록 해주는 결합 단백질 성분이 산(酸)이나 염기에 의해 쉽게 분해되는 성질을 이용한다. 그런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바로 묽은 염산이나 수산화나트륨이다.


물론 염산이나 수산화나트륨이 과일에 그냥 남아 있으면 좋을 이유가 없다. 우리 몸은 물론 통조림에 들어가는 과일 맛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그러나 과일에 남아있는 산이나 염기를 제거하기는 쉽다. 충분한 양의 물로 씻어주거나 같은 양의 염기나 산으로 중화시키면 된다. 그런 후에 남게 되는 극소량의 산이나 염기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수용액에서 산과 염기가 만나면 염(鹽)과 함께 물이 만들어지는 것이 바로 중화반응이다. 그런 과정에서 맹독성의 염산과 수산화나트륨은 정체성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짠맛이 나는 소금물이 돼버린다. 화학에서만 볼 수 있는 정말 신비로운 현상이다.

결국 사용하는 염산이나 수산화나트륨이 충분히 순수하다면 과일의 껍질을 벗겨내는 목적으로 사용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화가 제대로 이뤄져서 껍질을 벗겨낸 과일의 산도(酸度)가 지나치게 높거나 낮지 않으면 식용으로 사용해도 된다는 뜻이다.

물론 부작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산이나 염기로 과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단맛을 내는 과당(果糖)과 같은 유용한 성분이 빠져나가기도 한다. 그래서 설탕을 추가로 넣어주기도 한다. 그렇다고 과일 통조림이 식품으로서 가치가 없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식품의 품질을 향상시키고 보존 기간을 늘리는 일은 식품을 생산하는 일만큼이나 어렵고 중요한 일이다. 소금이나 설탕에 절이고, 발효를 시키고, 훈제를 하거나 말리는 전통적인 식품 가공 방법이 모두 그런 목적으로 개발된 것이다. 그런 방법들이 우리에게 익숙하기는 하지만 한계는 분명하다. 그런 방법으로는 신선한 야채나 채소에 들어있는 비타민C와 같은 성분을 보존할 수가 없다. 장거리 원정이나 항해에 나섰던 병사나 선원들은 괴혈병과 같은 질병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져 버릴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식품 가공에 활용되는 통조림, 냉동건조, 진공포장과 같은 새로운 기술들이 그런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새로운 가공 기술은 식품의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엄청난 축복이었다. 그렇다고 가공 식품에만 의존하는 식생활을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다. 새로운 기술로 가공된 식품의 정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현명하게 소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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