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지금껏 '주선(酒仙)' 그러니까 술의 신선은 이백(李白) 한 사람만 있었다고 한다. 허구한 날 딥다 마셔도 거뜬 없는 이를 일컬어 주선이라 하진 않는다. 사람이 술을 마시는지, 술이 사람을 먹는지 모르는 그런 지경은 술 한 잔에 갖은 추태를 떠는, 기껏해야 '주졸(走卒, 술의 졸병)' 다음 단계라고나 할까, 술은 물론 한 잔 물에도 술 마신 듯 취하는 주선의 경지와는 도통 무관하다.
"시는 쌀로 지은 술"이라는 옛말 덕분일까, 이백의 주선다운 풍모는 그의 시에도 오롯이 묻어났다. '술을 권한다'는 뜻의 <장진주(將進酒)> 같은 시도 그러하다. 자고로 성인 가운데 이름이 후세에 전해지는 이 드물지만 술꾼의 이름은 모조리 전해졌다며 능청을 떨더니, "술은 마셨다 하면 모름지기 삼백 잔!"이라며 호기를 부린다. 급기야 "하늘이 나 같은 재목을 세상에 낳음은 필시 크게 쓰려 함"이니, 벗이여 그대 부유한 벗들이여, 오늘은 천금 풀어 양 삶고 소 잡아 거방지게 즐겨보자고 다그친다. 천하의 준마와 명품 모피라고 아낄 거 뭐 있겠는가, 상긋한 미주와 바꿔 마시며 만고의 시름을 삭여보자 채근된다.
그런데 일생을 살며 '나'는 하늘이 낸 천하의 재목이라 자부하는 게 과연 몇 번이나 될까? 술 마시며 '만고(萬古)'의 시름을 녹이자는 얘기는 평생 몇 번이나 할까? 아니, 누군가 그런 얘기를 하면 우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백과 쌍벽을 이뤘던 두보(杜甫)처럼, 지인들이 이백에게 표했던 흠모와 존경을 과연 우리도 내보일 수 있을까?
사실 '나'를 하늘이 빚어낸 특별한 존재라 일컫고 사람들도 이를 긍정하는 이런 보기 드문 일의 원조는 공자였다. 그는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때조차 하늘이 내게 자신의 덕을 주어 세상의 인문과 교화를 맡겼는데 저 무도한 자들이 날 어찌할 수 있겠냐며 태연자약했다. 한마디로, '나'는 하늘이 나은 자니 하늘의 허락 없인 '나'를 어찌할 수 없다는 소리다. 자칫 토가 동할 수 있는 발언이건만, 제자들은 그런 그에게 "우리 스승은 하늘이 세상을 일깨우려 보내신 목탁"이라며 가없는 신뢰를 보냈다.
맹자도 못지않았다. 공자의 적통이라 자부한 대로 그 역시 걸핏하면 하늘을 끌어왔다. 급기야 "만물은 내게 다 갖추어져 있다"고, 그러니까 내가 곧 우주라고 선언하고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의 선함을 타고난다고 단언했다. 그렇게 타고난 선한 본성을 잘 보존하며 살아간다면 사람은 누구나 하늘과 통한다고 보았다. 그러니 만약 임금이 나보다 선한 본성을 잘 보존치 못했다면 그의 말에 꼭 복종할 이유가 없게 된다. 본성이 악해진 임금보단 선함 자체인 하늘이 절대적으로 옳기에 그래야 한다는 논리다.
사람은 이기적 유전자가 빚어낸 이기적 생물임에도 남을 도우며 행복해 하고, 백년 살기 어려운 유한한 개체이면서도 무한을 사유한다. 볼 수 없으면 잘 믿지 않는 현상적 존재면서도 늘 본질을 캐묻고 초월을 염원한다. 이타성과 무한, 본질과 초월은 모두 하늘의 변치 않는 속성이다. 그래서 맹자를 이은 성리학자들은 "인간의 본성은 곧 천리(天理)"라고 못 박았다. 다른 말로, 사람은 누구나 '우주적 존재'라는 것이다. 삶이 여의치 못하다보니 눈앞에 이익에 연연하고 본능과 탐욕에 휩쓸리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나'가 하나의 소우주라는 사실 자체가 부인될 수 없다는 소리다.
왠지 공자나 맹자, 이백 급은 돼야 어울리는 말인 듯싶은가? 그러나 성리학자들은 장삼이사 모두가 그러하다고 했다. 더구나 '나'가 우주적 존재임을 자각하며 사는 데엔 재물이나 권력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니다. 천문학적 규모의 재물이 있어도,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만한 권력이 있어도, '나'가 우주적 존재라는 자각이 없으면 가까스로 '주졸'을 면한 정도이리라.
김월회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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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쌀로 지은 술"이라는 옛말 덕분일까, 이백의 주선다운 풍모는 그의 시에도 오롯이 묻어났다. '술을 권한다'는 뜻의 <장진주(將進酒)> 같은 시도 그러하다. 자고로 성인 가운데 이름이 후세에 전해지는 이 드물지만 술꾼의 이름은 모조리 전해졌다며 능청을 떨더니, "술은 마셨다 하면 모름지기 삼백 잔!"이라며 호기를 부린다. 급기야 "하늘이 나 같은 재목을 세상에 낳음은 필시 크게 쓰려 함"이니, 벗이여 그대 부유한 벗들이여, 오늘은 천금 풀어 양 삶고 소 잡아 거방지게 즐겨보자고 다그친다. 천하의 준마와 명품 모피라고 아낄 거 뭐 있겠는가, 상긋한 미주와 바꿔 마시며 만고의 시름을 삭여보자 채근된다.
그런데 일생을 살며 '나'는 하늘이 낸 천하의 재목이라 자부하는 게 과연 몇 번이나 될까? 술 마시며 '만고(萬古)'의 시름을 녹이자는 얘기는 평생 몇 번이나 할까? 아니, 누군가 그런 얘기를 하면 우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백과 쌍벽을 이뤘던 두보(杜甫)처럼, 지인들이 이백에게 표했던 흠모와 존경을 과연 우리도 내보일 수 있을까?
사실 '나'를 하늘이 빚어낸 특별한 존재라 일컫고 사람들도 이를 긍정하는 이런 보기 드문 일의 원조는 공자였다. 그는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때조차 하늘이 내게 자신의 덕을 주어 세상의 인문과 교화를 맡겼는데 저 무도한 자들이 날 어찌할 수 있겠냐며 태연자약했다. 한마디로, '나'는 하늘이 나은 자니 하늘의 허락 없인 '나'를 어찌할 수 없다는 소리다. 자칫 토가 동할 수 있는 발언이건만, 제자들은 그런 그에게 "우리 스승은 하늘이 세상을 일깨우려 보내신 목탁"이라며 가없는 신뢰를 보냈다.
맹자도 못지않았다. 공자의 적통이라 자부한 대로 그 역시 걸핏하면 하늘을 끌어왔다. 급기야 "만물은 내게 다 갖추어져 있다"고, 그러니까 내가 곧 우주라고 선언하고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의 선함을 타고난다고 단언했다. 그렇게 타고난 선한 본성을 잘 보존하며 살아간다면 사람은 누구나 하늘과 통한다고 보았다. 그러니 만약 임금이 나보다 선한 본성을 잘 보존치 못했다면 그의 말에 꼭 복종할 이유가 없게 된다. 본성이 악해진 임금보단 선함 자체인 하늘이 절대적으로 옳기에 그래야 한다는 논리다.
사람은 이기적 유전자가 빚어낸 이기적 생물임에도 남을 도우며 행복해 하고, 백년 살기 어려운 유한한 개체이면서도 무한을 사유한다. 볼 수 없으면 잘 믿지 않는 현상적 존재면서도 늘 본질을 캐묻고 초월을 염원한다. 이타성과 무한, 본질과 초월은 모두 하늘의 변치 않는 속성이다. 그래서 맹자를 이은 성리학자들은 "인간의 본성은 곧 천리(天理)"라고 못 박았다. 다른 말로, 사람은 누구나 '우주적 존재'라는 것이다. 삶이 여의치 못하다보니 눈앞에 이익에 연연하고 본능과 탐욕에 휩쓸리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나'가 하나의 소우주라는 사실 자체가 부인될 수 없다는 소리다.
왠지 공자나 맹자, 이백 급은 돼야 어울리는 말인 듯싶은가? 그러나 성리학자들은 장삼이사 모두가 그러하다고 했다. 더구나 '나'가 우주적 존재임을 자각하며 사는 데엔 재물이나 권력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니다. 천문학적 규모의 재물이 있어도,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만한 권력이 있어도, '나'가 우주적 존재라는 자각이 없으면 가까스로 '주졸'을 면한 정도이리라.
김월회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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