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형 미 스탠퍼드대학교 바이오 엔지니어링 교수
뇌의 구조와 작동 원리를 밝히는 뇌과학은 현재 세계 과학계에서 가장 뜨거운 연구영역 중 하나다. 알츠하이머, 파킨슨 등 난치성 뇌질환 치료의 열쇠로 인류의 삶의 질과 직접 맞닿아 있다. 뿐만 아니라 서로 기억을 전송하거나 생각만으로 각종 기기를 조작하는 기술, 뇌를 모사한 슈퍼컴퓨터 개발 등 미래 경제를 이끌 기술로도 주목받고 있다. 우리 정부도 미래창조과학부를 중심으로 뇌과학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다.
치열한 뇌과학 분야에서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인 과학자가 있다. 바로 이진형 미 스탠퍼드대 바이오엔지니어링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스탠퍼드 공대 최초의 한국인 여교수인 그는 2010년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장치로 뇌의 활성화 영역을 찾아낼 수 있음을 증명한 논문을 네이처에 게재하며 세계 뇌과학계의 신성으로 떠올랐다. 학부부터 박사과정까지 전기공학을 전공한 이 교수는 어린 시절부터 관심이 많았던 뇌과학에 자신의 전공을 융합해 전에 없던 새로운 연구방법을 제시했다. 기존 생명과학자들이 뇌를 생물학적 기관으로 봤다면 이 교수는 뇌를 일종의 '전자회로'로 파악했다. 미세하게 회로를 조작하고, 전체 회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자세히 관찰하는 방법을 뇌 연구에 적용한 것이다.
그는 현재 유전자 조작을 통해 빛을 쪼일 경우 특정 종류 신경세포만 반응하도록 만들고, 이들이 어떻게 신호를 보내며 동작하는지 광유전학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기술을 통해 관찰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연구성과가 쓰일 수 있도록 뇌질환치료제를 만드는 벤처기업도 창업해 연구과 사업을 병행하고 있다.
무선통신 분야 세계적 권위자이자 이진형 교수의 스승인 토마스 리 스탠퍼드대 전기공학 교수는 이 교수에 대해 "현재 스탠퍼드에서 가장 빛나는 샛별 중 하나"라고 표현했다. 그는 "지금 이 교수가 하는 연구는 뇌의 작동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현격히 높일 수 있는 거대한 잠재력을 품고 있다"며 "이러한 사실에 흥분되고 이 교수가 우리의 동료라는 게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 현재 연구하고 있는 영역을 설명하자면.
"뇌는 전자기기처럼 모든 부분이 신호를 주고받으며 동작하는 신경세포(뉴런)들의 집합체로 이뤄진 회로다. 뇌 안에는 전세계 인구보다 10배 이상 많은 약 1000억개의 뉴런이 있다. 더구나 세포들이 일렬로 정렬해 있는 것도 아니고 여러 종류의 세포들이 함께 얽혀 서로 복잡하게 연결돼 있다. 이 복잡한 시스템이 어떻게 동작하는지 보려면 뇌에 있는 여러 세포들을 하나씩 동작시켜 보고 어떻게 회로가 이어지는지, 반응은 어떻게 나타나는지 봐야 한다. 뇌가 평소에 어떻게 동작하는지, 병이 생기면 어떻게 동작이 바뀌는지, 이런 원리를 알게 되면 파킨슨이나 알츠하이머 등 뇌질환을 고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또 뇌 동작 원리를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하면 뇌에 직접 지식을 다운로드하는 등 인간의 능력을 높이는 데도 활용할 할 수 있다.
그동안 연구로 뇌의 동작원리를 상당 부분 알아냈으며, 조만간 연구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다. 궁극적으로는 뇌가 어떻게 동작하는지 전체 동작 모델을 만들 것이다. 세계 여러 기관에서 뇌 회로도를 그리는 연구를 하고 있지만, 직접 측정한 실제 동작 원리를 바탕으로 전체 뇌 모델을 만드는 기술이 있거나 시도한 기관은 아직 없다. 현재 개발하고 있는 기술을 가지고 뇌 전체 동작모델을 5~10년 사이에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본다."
- 뇌 연구를 하게 된 계기는.
"서울과학고에 입학했을 때 공부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어느 날 수학 문제를 풀다가 안 풀려 그대로 책상에서 잠이 들었는데 꿈에서 문제를 풀었다. 아침에 일어나 문제를 봤더니 신기하게도 어떻게 푸는지 알겠더라. 이 일을 계기로 공부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빨리 할 수 있을지 생각하다가 뇌가 어떻게 동작하고 학습하는지 원리를 알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에서는 전기공학을 전공했다. 전기공학은 당시만 해도 생물학이나 뇌과학보다 훨씬 두드러진 성과를 내던 전성기였다. 특히 시스템의 원리를 이해하는 전공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유용했다. 전기공학을 전공하면서도 뇌과학에는 계속 관심이 많았다. 대학원에서는 뇌 영상기술에 대해 공부했고 뇌 연구 관련 지식이 쌓이다 보니 어떻게 뇌를 연구해야 할지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라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 전기공학 전공자로서 뇌과학을 시작하기에 어려움은 없었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미국 국립보건원(NIH)에 제안서를 제출해 자금 지원을 받아 처음 연구를 시작했는데, 이 때 정말 많은 사람들이 말렸다. 이 분야는 생물학, 유전공학 등 다양한 지식이 필요한데 평생 해보지 않은 분야를 어떻게 연구할 생각이냐고 멘토들과 동료들이 모두 극구 반대했다. 일반인들은 연구자들이 항상 새로운 것을 연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연구자도 쌓아야 할 경력이나 연구 과정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기 때문에 실패 위험이 높은 연구는 피하려 한다. 잘못하면 직장에서 해고당하거나 자금 지원이 끊길 수도 있다. 또 기존 연구자들이 연구하던 방식이 있는데 갑자기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연구를 하겠다고 하면 반발도 심하다. 대부분 실패할 것이라고 부정적으로 전망한다. 과학 연구가 대체로 위험 부담을 받아주는 환경이 아니다. 하던 것을 해야 생존에 유리한 환경이다."
- 그런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나
"생존을 위해 규칙을 따르다 보면 정말 풀고 싶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 나는 꼭 문제를 풀고 싶었다. 처음 연구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4~5가지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는데 다 그만두고 다른 사람들에게 넘겼다. 그 후 뇌 연구 아이디어에만 집중해서 1년 넘게 실험실에 박혀 있었다. 연구 분야 자체가 어렵기도 했고 모르는 분야를 배우면서 하다 보니 쉽지 않았다. 하지만 확신이 있었다. 원래 용감한 데다가 잘 될 것 같아서 그냥 시작했다.
막상 생각대로 되고 나니 주변에서 당연히 되는 거 아니냐고 얘기하더라. 스스로 열심히 생각하지 않고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 했으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방법론보다는 어떻게 문제를 풀 수 있을까에 집중했기 때문에 하면 될 것이란 확신이 섰다. 자신감이 중요한 것 같다. 자신감이 없으면 다른 사람이 한 것을 따라 하게 되고 따라 하면 늘 늦다."
- 스탠퍼드대에서 연구를 하게 된 계기는.
"스탠퍼드대와 실리콘밸리의 관계 때문이다. 여기도 물론 위험한 연구를 좋아하진 않지만, 받아들이는 정도에 차이가 있다. 실리콘밸리 성공의 핵심에는 스탠퍼드가 있다. 이곳 사람들이 특별히 다르다기보다는 성공한 기억이 많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에 대해 훨씬 관대한 편이다.
스탠퍼드 대학원생들은 생물학과로 들어왔어도 물리학과 교수와 일하고 싶으면 아무런 제한 없이 할 수 있다. 이런 유연한 제도들이 융합적인 성향의 연구자들을 모이게 하고, 모인 사람들끼리 서로 더 배워나가게 한다. 또 미국 문화의 장점 중 하나가 직접 당장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아도 분명한 목적이 있는 연구에 투자도 하고 기부도 잘 한다는 점이다.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반대가 있더라도 목표한 바를 열심히 추진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바를 이뤄낼 수 있는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 연구도 바쁠 텐데 회사까지 설립한 이유는 무엇인가.
"연구한 내용을 바탕으로 회사를 설립해 뇌 치료 기술을 개발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학교에서 하는 연구와 회사에서 하는 연구는 다르다. 학교에서는 계속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일을 하고, 회사에서는 새로운 기술을 바탕으로 직접 소비자에게 전달할 상품을 만들고 상업화하는 일을 한다. 개인적으로 새로운 것을 연구해서 논문만 내고 끝내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연구한 기술들이 직접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을 보는 것이 바람이자 꿈이다. 그동안 개발한 기술로 직접 환자들이 뇌 치료에 성공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고, 그랬을 때 제일 뿌듯할 것 같다. 스탠퍼드의 장점 중 하나가 교수가 창업할 수 있는 시간을 학교에서 할애해준다는 점이다. 연구자들이 연구한 기술들을 사회에 보급하는 것은 대학의 의무 중 하나다. 기술을 개발한 교수가 직접 나설 때 첨단 기술이 가장 빨리 보급될 수 있다."
- 한국에서 성공한 과학자들이 더 많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얼마 전 한국에서 열린 간담회에 참석해 여러 한국 교수들과 얘기하기도 했지만, 사실 한국에서 과학자들이 성공적인 길을 갈 수 있는 방법이 별로 많지 않은 것 같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일 중 하나가 처음 전기공학부에 입학했을 때 선배들이 '졸업하면 대기업에 들어갔다가 40대에 은퇴해서 피자가게나 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뜻이 있어서 전공을 선택한 어린 학생에게 선배들이 그렇게 얘기하면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농담 섞인 얘기지만 현실과 무관하지 않은 문제다. 과학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그렇다면 아무리 자신이 과학이 좋아서 한다고 해도 본인 삶이 행복하겠는가. 과학자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대로 주고, 기여에 대한 보상도 제대로 해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 제도적 문제뿐만 아니라 실제 성공사례를 만들고 소개하는 것도 중요하다. 학생들도 성공사례를 많이 보면 피자가게 생각은 안 할 것이다. 유능한 인재들에게 기회가 없다는 것은 사회적 산업구조가 제대로 돼 있지 않다는 의미다. 과학자들이 선두에 서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많은 사람의 삶을 행복하게 만든다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그런 꿈을 꿀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거나, 꿈만 꾸고 실현할 방법이 없다면 악순환이 계속 될 것이다."
- 과학자를 꿈꾸는 청소년이나 청년들에게 조언 하자면.
"내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가 무엇이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가 사회적으로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많이 생각했으면 좋겠다. 문제 해결을 위한 자주적인 사고능력을 가진 한국 학생들을 별로 못 봤다. 특히 중국인 학생들과 비교가 많이 된다. 중국 학생들은 훨씬 호전적이고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데 우리나라 학생들은 그렇지 않아 좀 걱정스럽다.
비단 우리나라 학생뿐만 아니라 미디어 세대로 자라난 학생들은 즉각적인 해결에 익숙해져 사고력이 많이 떨어질 수 있다. 화장실 청소를 하더라도 어떻게 더 잘할 수 있을지 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하려는 생각을 계속 해야 한다. 생활 속 작은 일에도 생각을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크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를 생각해보면 매일 하는 작은 결정들이 더해져 큰 차이를 만들었던 것 같다. 자주적인 사고능력을 갖도록 계속 노력하길 바란다."
캘리포니아 팰로앨토(미국)=남도영기자 namdo0@dt.co.kr
■ 이진형 교수는…
이진형 교수는 뇌 신경세포 연결망 연구의 권위자로, 광유전자학과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을 융합한 혁신적인 연구 방법론을 개발해 뇌 신경세포의 연결 구조와 동작 원리를 밝혀내는 데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77년생인 이 교수는 서울과학고와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스탠퍼드대로 유학을 떠나 전기공학 석 ·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같은 대학에서 박사후연구과정을 마친 그는 2007년부터 UCLA 전기공학과 정신의학 · 방사선학 조교수로 근무하다 지난 2012년 모교인 스탠퍼드대로 자리를 옮겨 바이오엔지니어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동안 개발한 기술을 바탕으로 뇌질환 치료제를 개발하는 벤처기업 'LVIS'를 창업하기도 했다.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