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복잡성 간과하면 지속 불가능
소통·협력하면서 새 부가가치 창출해야
![[이덕환의 과학세상] (538) 생태계 조성](http://contents.dt.co.kr/images/201512/2015120102101176650001[1].jpg?var=5509 "[이덕환의 과학세상] (538) 생태계 조성")
생태계 조성이 유행이다. 정보통신과 산업정책에서 시작된 생태계 조성이 이제는 금융·유통·복지·연구개발을 비롯한 사회·경제·문화의 모든 분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심지어 '창조경제' 생태계도 있고 '국방' 생태계도 있다. 스마트·공정·건전·자생·상생과 같은 화려한 수식어를 붙이기도 한다.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모두 생태계 조성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민간단체도 적극적이다. 생태계만 만들어놓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야단들이다.
자연 생태계의 핵심은 복잡한 먹이사슬을 통해 연결된 다양한 개체들의 먹이 활동과 번식 활동이다. 그런 과정에서 물질과 에너지가 순환되고, 무생물적 자연환경과 생물적 생태환경의 조화가 구축된다. 자연 생태계를 관리하는 관리자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자연 생태계의 모든 순환과 조화가 개체들의 자발적이고 자생적인 활동에 의해 완성된다.
자연 생태계의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놀라울 정도로 안정적이고 평화롭고 아름답다. 생태계를 구성하는 개체들이 서로 긴밀하게 소통하고, 협력하면서 상생과 공생을 추구한다. 외부의 교란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능력도 상당한 수준이다. 자연 생태계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스스로 진화하는 것도 중요한 특성이다.
생태계 조성을 추구하는 정책이 주목하는 것이 바로 자연 생태계의 복잡성·자생성·안정성·진화성이다. 다양한 민간 부문이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면서 스스로의 혁신과 창조를 통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면서 안정적이고 스스로 진화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생태계 조성 정책의 목표라는 뜻이다.
우리 사회에서 엘리트 관료 주도의 '선택과 집중'이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정도로 고도화·다양화되고 복잡해진 것은 분명하다. 선택의 폭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넓어져 버렸고, 정부가 정책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정도의 과도한 집중을 책임질 수도 없게 됐다. 정부의 불합리한 선택과 과도한 집중의 폐해를 더는 감당할 수 없다는 뜻이다. 결국 정부 주도의 '육성' 정책을 민간 중심의 생태계 조성 '지원' 정책으로 전환해야 하는 것은 필연이다.
그러나 생태계 조성을 목표로 세우기만 하면 민간 중심의 지속 가능한 사회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생태계 조성이 또 다른 형태의 '선택과 집중'으로 변질될 수 있다. 어떤 생태계를 어떻게 조성할 것인지의 결정은 어쩔 수 없이 정부의 몫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짧은 안목으로 불합리하고 어설프게 선택한 생태계의 조성에 과도한 사회적 자원을 집중하게 되면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외부와 완전히 고립된 생태계는 안정하지도 않고,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정책적으로 조성하는 생태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회와 단절된 생태계는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외부와의 상호작용도 생태계 내부의 소통·협력만큼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정책으로 조성된 생태계들 사이의 긴밀한 상호작용도 무시할 수 없다.
생태계 조성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다양성과 복잡성에 대한 고려다. 단선적인 포식자·피식자 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생태계는 절대 지속될 수 없다. 지금까지 정부가 추진했던 생태계 조성 사업이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것도 대부분 생태계 내부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생태계 내부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보장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인위적이고 제한된 기획의 한계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대비해야 한다.
생태계의 실체에 대한 정확한 이해도 필요하다. 자연 생태계는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평화롭거나 아름답지 않다.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을 원칙으로 하는 자연 생태계의 경쟁은 삭막하고 거친 것이다. 치열한 생존 경쟁이 공정한 것도 아니고, 생태계를 구성하는 개체가 스마트한 것도 아니다. 녹조처럼 자기파괴적인 개체도 흔하다. 생태계에 대한 과도한 환상이 자칫 심각한 재앙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우후죽순처럼 만들어지는 생태계들 사이의 충돌도 위험하다. 자율과 공정의 원칙을 확실하게 지키지 못하면 생태계 조성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따뜻한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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