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산책] `왝더독` 앞의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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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산책] `왝더독` 앞의 인간

   
입력 2016-02-15 18:18
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연수위원



디지털이 아날로그를 위협하고 인공지능이 인간을 앞서기 시작하는 세상에서 인간이 위기를 맞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기우일까. 디지털 세상은 한편에서 보면 전면적 왝더독 세상이다. '왝더독(Wag the dog)'은 '꼬리가 개의 몸통을 흔든다'는 뜻이다. 앞뒤가 바뀌고 주객이 바뀌고 본말이 전도된 경우를 가리킨다.
경제에서는 선물이 현물 주식시장을 흔드는 현상을 말하고, 정치적으로는 정치인이 여론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연막을 치는 행위를 가리킨다. 1997년 개봉된 더스틴 호프만, 로버트 드 니로 주연의 영화 '왝더독'에 보면 백악관에 견학 온 걸스카웃 학생을 성추한 사건을 덮기 위해 국민들에게 생소한 알바니아를 적대국으로 만들어 전쟁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알바니아전에서 억류된 가상의 군인을 전쟁영웅으로 미화하는 사기극을 벌이는데 이것이 정치적 왝더독이다. 맥도날드가 햄버거를 사면 덤으로 피규어를 주자 온라인 중고장터에서는 한때 맥도날드 피규어가 인기 아이템으로 등장했는데, 이것도 왝더독이다. 피규어를 갖기 위해 햄버거를 사고, 화장품을 받기 위해 잡지를 사고, 자전거를 받기위해 신문을 구독하는 등 우리 일상 곳곳에서 왝더독 현상이 나타난다. 기계나 미디어에서도 왝더독이 만연해 있다. 테크놀로지의 산물인 미디어는 인간의 오감이 한계를 갖기 때문에 인간 감각을 확장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발명품이다.

캐나다의 문화비평가 마셜 맥루언은 일찍이 1960년대에 <미디어의 이해>, <미디어는 메시지다> 등의 명저를 통해 '미디어는 인간의 확장'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망원경, 현미경, 보청기, 자동차, 비행기, 전화 등의 미디어는 모두 인간의 확장이다. 멀리 보거나 미세한 것을 보기 위해 망원경, 현미경이 발명됐고, 멀리 그리고 빨리 이동하기 위해 자동차와 비행기가 만들어졌고, 전화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게 해줬다. 요컨대 망원경, 현미경은 인간 시각의 확장이고, 자동차, 비행기는 인간 다리의 확장이고, 전화는 인간 청각의 확장인 셈이다. 이렇게 미디어는 인간의 감각을 확장시켜주고 속도와 편리함을 선사해준 유용한 도구들이다. 미디어로 인해 인간의 삶은 편리하고 윤택해졌지만 너무 과한 나머지 주객이 전도되고 사람들은 미디어에 매몰돼 오히려 편리함의 노예가 되고 있다. 소통의 도구로 만들어진 스마트폰 때문에 사람들은 밥상머리에서도 대화를 잊고 각자 휴대폰만 쳐다보는 세상을 살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왝더독은 심각한 수준이다. 디지털은 복제가 가능하고 한계원가가 제로에 수렴한다는 특성상 아날로그에 기반하고 있는 전통적인 제조업보다 생산성에 있어 압도적 비교우위를 점한다. 그래서 사회 각분야에서 디지털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러닝이 교실을 대체하고, 포털이 종이신문을 압도하고, 디지털콘텐츠가 문화산업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처음에 아날로그를 보완하던 수준이던 디지털은 점점 아날로그를 대체하고 있다. 아날로그로부터 나온 디지털이 세상의 중심이 되고 가상현실이나 사이버세상이 현실을 압도하고 있다면 이는 왝더독을 넘어 인간 본연의 위기라 할 수 있다.

얼마 전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 컴퓨터 알파고의 도전을 받아들여 오는 3월 인간과 인공지능간의 세기의 바둑 대결을 벌이게 된다는 기사를 접했다. 만약 인공지능이 세계 최고의 인간 바둑기사를 이긴다면 인간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고 전통적인 인간 직업을 차례차례 로봇에게 내줘야한다면 이제껏 편리함을 가져다준 문명의 이기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꼬리가 개의 몸통을 흔들어대지만 사실은 개가 꼬리를 흔드는 것이다. 이것이 본질이다. 본질을 망각한다면 디지털은 인간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아날로그 없는 디지털, 현실 없는 가상세계는 그저 공허한 신기루일 뿐이다.

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연수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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