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수 충북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디지털인문학] 한불수교 130주년, 프랑스 이해하기](http://contents.dt.co.kr/images/201606/2016061702102251607002[1].jpg?var=2311 "[디지털인문학] 한불수교 130주년, 프랑스 이해하기")
올해는 한불수교 130주년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프랑스에서는 '한국의 해'가 그리고 한국에서는 '프랑스의 해'가 선포되고 풍성한 문화행사가 펼쳐지고 있다. 2012년에는 한미수교 130주년, 2013년에는 한영수교 130주년이었으니, 개항하여 구미 열강들과 교류한지 이제 꽤나 오랜 시간이 흘렀다. 이 긴 시간 동안 교류한 국가들을 우리는 얼마나 깊이 이해하게 됐을까. 우리에게 프랑스라는 나라는 과연 어떤 이미지로 인식되고 있는가. 그리고 프랑스인들은 우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들과 우리는 대화 가능한 방식의 삶을 살고 있는가. 이 수많은 교류행사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무슨 말을 건네야 할까.
최근 대통령의 프랑스 방문에 즈음해, 우리 외교부는 공식 트위터를 통해 프랑스 하면 떠오르는 것은 '달콤한 디저트'라고 언급했는데, 이는 많은 트위터 유저들의 반발을 야기했다. 그들은 달콤함과는 거리가 먼 '혁명'과 혁명의 결과로 이룬 사회변혁이 먼저 떠오른다고 응수했다.
사실 이 두 가지 프랑스의 모습은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파리의 연인들>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누리듯이 파리는 달콤한 사랑의 도시이며, 동시에 노동권과 시민의 생존권을 위해 투쟁하는 파업과 농성의 도시이기도 하다. 그런데 130년이나 사귄 친구를 이와 같이 스테레오타입이 되어버린 몇 가지 개념을 가지고 설명하는 것으로는 우리가 이 친구를 충분히 깊이 이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친구를 그들의 사소한 일상 속에서 이해해보자. 예를 들어 프랑스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노래는 어떤 것일까.
2015년에 실시된 '프랑스인들의 일상적 삶의 관찰'이라는 설문조사에 따르면, 프랑스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노래는 '오 샹제리제'나 '라 비 앙 로즈'가 아니라 우리에게는 조금 생소한 가수 르노(Renaud)가 85년에 발표한 '미스트랄 가냥'이라는 노래다. '미스트랄 가냥'은 70년대에 인기 있었던 추억의 사탕 이름이다. 미스트랄은 남부 프랑스에 부는 계절풍인데, 굳이 번역한다면 높새바람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가루로 된 이 사탕을 빨대로 빨아먹을 때 높새바람이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입안이 알싸해지는 느낌이 온다. 우리로 치면 박하사탕 정도의 느낌일 것이다.
이 노래는 화자가 자신의 딸에게 삶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 해주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그는 삶이란 좌절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어린시절에 맛보았던 달콤한 사탕처럼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며 그렇기에 삶을 사랑해야 한다고 다음과 같이 말해준다.
벤치에 앉아 너와 함께 오분 동안 지는 해를 바라보기. 이젠 지나버린, 그리고 이젠 아무 상관없어진 좋았던 시절 대해 말하기. 나쁜 사람들은 우리가 아니라고 말하기. (…) 네 웃음 소리가 새들의 울음소리 보다 더 높이 날아가는 것을 듣기.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네게 말하지. 삶을 사랑해야 해. 비록 시간이 널 죽이고, 시간과 함께, 어린이들의 웃음을 앗아가 버린다해도, 삶을 사랑해야 해. 그리고 미스트랄 가냥 사탕.
결국 프랑스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노래는 그들의 미래 세대에게 삶을 사랑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주는 노래였다. 삶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 이 말은 너무도 당연한 것 같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정말 삶은 살만한 가치가 있으며, 그래서 그 모든 고통에도 불구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하고 있을까.
우리에게도 사탕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이 그것이다. 박하사탕은 어린 시절의 향수를 떠오르게 하는 알싸한 맛의 사탕이라는 점에서 분명 미스트랄가냥 사탕과 비슷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사탕의 이야기는 프랑스인들의 노래와는 전혀 다른 삶에 대한 태도를 보여준다.
설경구가 철길에서 달려오는 기차를 향해 "나 돌아갈래"라고 외치는 장면으로 기억되는 이 영화는 광주라는 근원적인 폭력 이후 주인공의 삶이 다시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훼손됐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하여 첫사랑의 기억처럼 달콤한, 순백의 시간을 회복할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설경구가 연기한 주인공 김영호의 대사 한 줄이 묘하게 '미스트랄 가냥'이라는 프랑스 샹송의 가사와 겹쳐져 들린다.
형사로서 대학생을 취조하면서 김영호는 마침내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대학생의 자백을 얻어내고 묻는다.
"너 정말 삶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니? 네가 일기에 그렇게 썼대. 삶은 아름다운 거라고."
영화 속 김영호는 삶이 아름답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그리고 2016년 우리 사회에 내재된 반복되는 폭력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삶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감히 생각하지 못한다. 달콤한 디저트의 나라인지 아니면 혁명의 나라인지 논란이 되는 그 오래된 친구가 영화 속 인물 김영호의 질문에 대답하여 노래한다.
"비록 시간이 널 죽이고, 시간과 함께, 어린이들의 웃음을 앗아가 버린다해도, 삶을 사랑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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