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교수
![[디지털인문학] 인문학 위기, `고전`서 출구 찾자](http://contents.dt.co.kr/images/201608/2016081202102251607001[1].jpg?var=3641 "[디지털인문학] 인문학 위기, `고전`서 출구 찾자")
세상을 잘 살려면 정보가 필요하다. 좋은 정보는 상황을 잘 판단하고 올바르게 행동할 수 있게 해준다. 그렇다면 유용한 정보는 어떻게 얻는가? 마크 트웨인은 이렇게 말했다. "만약 당신이 신문을 읽지 않는다면, 당신은 아무런 정보를 갖지 못할 것이다."(If you don't read the newspapers, you are uninformed.)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중요한 사건이나 결정이 어떤 가치와 의미를 갖는지, 삶에 유용한 정보를 얻기 위해 우리는 신문을 찾는다. TV나 라디오, 인터넷, 잡지 등 다양한 매체가 있지만, 신문은 가장 전통적인 정보의 원천처럼 보인다. 그런데 마크 트웨인은 이렇게 덧붙였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신문을 읽는다면, 당신은 잘못된 정보를 갖게 될 것이다."(But if you do read them, you are misinformed.)
신문이 우리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는 이유는, 기자의 실수 탓도 있지만, 신문사가 특정한 가치와 이념에 편향된 탓도 있다. '보수'와 '진보', '종교', '상업성' 등의 이유로 편향성을 갖는 신문은 자칫 사건을 자의적으로 재단하고 해석함으로써 '잘못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신문사가 권력과 자본의 압력에 굴복하거나 타협할 경우, 사태는 더욱 심각해진다. 마크 트웨인은 신문의 편향성을 꼬집고 독자의 딜레마를 밝힌 것이다. 독자는 신문 덕택에 '정보를 얻지 못한'(uninformed) 상태를 벗어날 수는 있지만, 신문 탓에 자칫 '잘못된 정보를 갖게'(misinformed) 될 수도 있다. 신문을 읽을 수도, 안 읽을 수도 없는 딜레마에서 대책은 비교적 분명하다. 신문을 읽고 정보를 얻되, 그 정보의 실체를 판단할 수 있는 혜안을 갖는 것이다. 지혜로운 독자라면 신문이 전달하는 정보에 거리를 두면서 그 진위와 의도를 냉정하게 판단하며 오해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지혜는 어디에서 오는가? 가장 유력한 길은 '고전'을 읽는 것이다. 고전은 특정 시대에 특정 작가의 시각에서 집필됐지만, 그 시대의 한계 안에 갇히지 않고 역사의 흐름을 이겨내며 지금까지 버텨왔다. 사람들이 계속 읽어왔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이다. 고전의 생존은 그 가치를 입증한다. 사람들은 자기 시대의 문제를 풀기 위해 최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지난 시대의 산물인 고전에 끊임없이 손을 내밀었다. 왜? 거기에는 어느 시대에나 통용되는 인간의 비밀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플라톤의 <국가>를 읽으면서 우리 시대의 문제를 절감하며 깊은 고민과 사색에 잠길 수 있는 것은 그 책이 기원전 4세기 고대 그리스의 문제를 다루지만, 그 시대의 한계를 넘어 인간의 보편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신문이 휘발성이 강한 정보를 양산하는 데 반해, 고전은 묵직하게 시대를 이겨내며 버티는 뚝심을 가지고 있다. (물론 어떤 신문 기사나 분석, 칼럼이 지금을 다루지만 훗날에도 읽히는 '고전'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흔히 인문학의 위기를 말하곤 한다. 인문학이 인간의 본성과 삶에 유용한 지침과 정보를 제공하는 학문이라면, 한국 인문학의 위기는 사람들에게 좋은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 탓에 비롯된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동서고금의 고전을 해석하고 생산하여 확산시키는 일에 실패한 것이다. 위기를 극복하고 한국 인문학을 새롭게 구상해야 한다면, 우리 시대에 필요한 고전을 정확하게 번역하고 해석하며 실천적 적용의 묘수를 찾는 일을 그 핵심에 두어야 한다. 예컨대 고전주해를 연구자 개인 작업에 맡기지 않고 다양한 분야의 전공자들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방법을 개발하며 공론의 장을 확장시키는 방안을 찾는 것이다. 이것은 인문학이 추구해야 할 '학제간 연구'의 새로운 길일 수 있다.
읽을 만한 고전을 만들지 못한 것이 인문학자들의 과실이라면, 고전을 읽지 않는 것은 시민들의 실책이다. 이 또한 시대를 불문하고 계속 되풀이되는 인류의 보편적인 실책인가 보다. 마크 트웨인은 이렇게 말했다. "고전이란 모든 사람들이 찬양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다." 이 말에서 한국 인문학이 직면한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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