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인문학] 4차산업혁명과 노동의 위기

입력 2017-05-25 18:00

이종관 성균관대 철학과 교수

[디지털인문학] 4차산업혁명과 노동의 위기 — 이종관 성균관대 철학과 교수

찬란한 계절 5월, 그 계절의 첫날은 노동을 기리는 날로 시작된다. 그리고 금년도 예외가 아니다. 곳곳에서 노동과 노동자를 기리는 행사가 개최됐다. 근대가 남겨준 여러 가지 유산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주목할 만 것은 인간의 존재에서 노동이 갖는 의미를 부각시켰다는 것이다. 근대는 노동이 조직적으로 착취됐던 시대였지만 바로 그 때문에 노동에 관한 철학적 성찰이 일어난 때였다. 마르크스는 바로 노동을 인간 존재의 본질로서 천착해 들어갔다. 그리고 인간이 노동을 착취하는 곳에서는 결국 인간 본질의 자기 왜곡이 있을 뿐이라고 설파했다. 물론 그의 노동이론이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지만 반인간적 사회로 전락할 수도 있었던 서구 산업사회는 마르크스의 이러한 비판을 수용함으로써 내적 모순을 수정해왔다. 서구 사회가 비교적 '인간의 얼굴'을 간직할 수 있었던 데에는 마르크스의 기여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노동을 하는 자가 사회에서 구조적으로 소외되는 사태를 민주적으로 극복해온 서구 사회는 역사가 진보했다는 하나의 증거였으며 현대의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첨단 산업이 주도하는 4차산업 혁명에 들어선 오늘날 노동하는 인간은 또 다른 위기에 처해 있다. 그것은 노동의 가치가 여전히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노동으로부터 추방될지도 모른다는 데 있다. 즉 발달된 첨단 기술과 그에 기반한 첨단 산업은 더 이상 인간의 노동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대개의 인간은 그러한 첨단 산업이 요구하는 만큼 섬세하지 못하고 또 현대 첨단 산업이 기대하는 만큼 창조적이지 못하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속도로 첨단 기술이 발전하고 산업화될 때, 대개의 인간은 일터로부터 추방될 것이라는 예측이 호소력을 얻고 있다. 앞으로 세계는 매우 창조적이며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소수의 하이퍼클래스와 자질구레한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다수의 인간들로 양분되는 양상을 보일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여러 곳에서 목격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실업의 불안에 허덕이고 있다. 물론 이러한 불안은 경쟁의식을 부추키고 노동을 더욱 규율화시켜 생산성 증가의 증가에 이바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직장과 직업의 안정성을 상실한 대다수의 인간들은 끊임없이 헤매야하는 유랑인의 삶의 방식을 살아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시대는 더 이상 정착인을 허용하지 않는다. 때문에 우리의 공동체적 연대성도 파열의 위협에 처해있다. 치열한 경쟁, 삶의 불안정성, 그리고 노동의 종말, 공동체의 해체, 이것은 새로운 첨단 산업의 등장과 그에 기반한 인간의 삶이 빠져들고 있는 함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물론 여기서 정부는 4차산업 혁명이란 수식어로 포장된 첨단 산업을 거부하고 역사의 시계를 완전히 거꾸로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공동체 속의 존재이다. 따라서 인간은 파편화된 유랑인으로만 살 수는 없다. 첨단산업이 노동하는 인간을 추방함으로써 결국 인간에 적대적인 결과를 초래하지 않으려면, 첨단산업의 발전 방향은 재조정돼야 한다. 즉 정부는 첨단 산업을 속도와 효율성에만 맹목적으로 종속시키지 말고 인간에게 노동과 공동체의 삶을 배려할 수 있는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번 5월 새롭게 출범한 정부는 일자리 마련에 정부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두겠다고 선언했고 일자리 위원회를 실질적으로 이끌어갈 책임자도 임명됐다. 새 정부의 정책기조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최근 시행된 일련의 조치들이 지속력을 갖기 위해서 정부는 현재 기술의 발전이 근본적으로 인간이 서로를 필요로 하지 않는 방향으로 발전할 위험이 잠복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현재의 첨단기술이 인간에게 좋은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미래의 기술로 혁신될 수 있는 과학기술발전 정책을 마련하는 노력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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