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규 성균관대 하이브리드 미래문화연구소 연구위원
![[디지털산책] AI시대와 `증강인류`의 꿈](http://contents.dt.co.kr/images/201706/2017062302103451607001[1].jpg?var=3709 "[디지털산책] AI시대와 `증강인류`의 꿈")
지난 5월에 열렸던 바둑의 미래 서밋 결과에 대한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다. 아마도 미리 예방 주사를 맞은 탓일 수도 있고, 어쩌면 결과 예측이 빤한 것이었기에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마음 졸이며 이세돌의 대국을 지켜보던 우리는 알파고와 커제 9단의 대결 결과를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일 따름이었다. 그가 한국인이 아니라는 점과 우리의 심정은 아무런 관련도 없다. 그도 우리도 그저 같은 인간일 따름이다. 담담한 것은 우리만은 아니었다. 알파고 역시 담담히 바둑계를 은퇴했다.
바둑이 처음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바둑보다 먼저 무너진 것은 체스였다. 체스 역시 바둑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능력 중 가장 고도의 것으로 이해되는 인간의 일이었다. 그러나 1997년, 체스 챔피언이었던 개리 카스파로프는 IBM의 딥블루에게 패하고 말았다. 그 당시의 반응은 지금보다 과격한 것이었던 듯하다. 카스파로프의 패배 이후, 컴퓨터와 대결한다면 어떤 준비를 하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네덜란드의 그랜드 마스터였던 얀 하인 도너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망치를 가져가겠습니다."
인간의 반격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 전과는 조금 더 세련된 방식으로 인간은 컴퓨터에 대항했다. 2005년 프리스타일 체스 대회에서 인간은 디지털 컴퓨터와 팀을 이뤄 전용 슈퍼컴퓨터인 하이드라(Hydra)와 대결했다. 그 대결은 참으로 드라마틱한 것이었다. 결과뿐 아니라 과정 역시 그러했다. 체스 고수가 아닌 아마추어 수준의 인간이 보다 좋은 성능의 컴퓨터와 협력해 최강의 실력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은 인간이 기계와 어떤 관계를 정립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대립이 아닌 협력의 방식으로 인간은 기계와 더불어 강화를 꿈꿀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증강인류(augmented humanity)'는 이와 같은 인간의 강화를 가장 집약적으로 표현한 개념이었다.
알파고의 은퇴로 한동안 잠잠했던 이 개념이 다시 주목받게 됐다. 체스가 무너질 때에도 건재할 것이라 여겨졌던 바둑에서 인간은 더 이상 인공지능의 경쟁자일 수 없게 됐다. 경기 결과에 관계없이 인류의 승리가 될 것이라는 에릭 슈미트의 말은 인사치레 정도로만 여겨질 따름이다.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인공지능과 대립 관계를 구축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오히려 그 반대의 관계를, 어떠한 방식으로든 인공지능과의 공존의 관계를 구상하는 것이 보다 현명한 판단이다. 그리고 그 공존 속에서 인간은 기존 인지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던 애초의 증강인류의 꿈을 현실로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꿈은 위험 속에서 새롭게 자라고 있다. 위험의 지적은 아이러니하게도 최첨단의 방식으로 인공지능을 활용하고자 하는 선구자들에게서 이뤄졌다. 이들에게도 인공지능은 위험한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 인공지능의 능력이 인간이 대항할 수 있는 수준을 크게 넘어서 있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통제의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될 가능성이 높으며, 인류의 생존이 위협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는 인간보다 똑똑한 인공지능이 판단을 내리게 되면, 인간은 인공지능의 애완동물이 될 것이라는 경고도 내놓은 바 있다.
증강인류의 구현은 미래의 위험을 경고하는 사람들이 내놓고 있는 대응책이다. 이른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기술을 통해 인공지능에 뒤처지는 인간의 약점을 보완하는 것이다. 뉴럴링크를 새로 설립한 일론 머스크 뿐만 아니라 페이스북의 저커버그 역시 인간의 뇌와 인공지능을 연결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라 밝힌 바 있다. 더욱이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비 속에서 이 같은 기술의 개발 및 활용 가능성은 매우 높아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브레인 이니셔티브나 중국의 차이나 브레인 정책과 같은 해외 주요국들의 뇌과학 연구 정책들의 결과들은 질병의 치료를 넘어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술의 현실적 적용 가능성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과의 대결에서 우리가 받았던 충격을 고려한다면, 인공지능에 대항할 수 있도록 인간의 능력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방식은, 인공지능과의 대결을 위해 망치를 들고 가는 것보다는 세련된 방식일 수 있다. 머지않은 미래에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술 개발이 성공해, 인공지능 칩을 장착한 강화-뇌(augmented brain)를 소유한 인간이 탄생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한 인간을 지금의 우리와 같은 존재로 생각할 수 있는지는 별도의 문제겠지만, 어쩌면 그 실현으로 인해 자연적으로 나약한 인간들이 강력한 인지 능력을 갖추고서 인공지능에 대응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전쟁 억제를 위한 무기의 성능 경쟁과 같은 방식으로 전개돼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위기의 악순환만을 초래할 따름이다. 의미가 고려되지 않은 사용은 반드시 심각한 문제를 수반하기 마련이며, 이에 우리는 기술의 개발과 더불어 그 개발의 의미를 함께 고려해야만 한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해명은 그 기술의 개발만큼이나 우리에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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