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영 정경부 차장
![[박미영 칼럼] `고구마와 수박화채`](http://contents.dt.co.kr/images/201706/2017062602102257798001[1].jpg?var=3528 "[박미영 칼럼] `고구마와 수박화채`")
무더위가 이어지던 지난 22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예상치 않던 수박 화채 파티가 벌어졌다. 김정숙 여사가 손수 수박 화채를 만들어 보낸 것인데, 국민소통수석은 "무더위에 땀 흘리는 기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여사께서 준비하셨다"고 했다.
김 여사의 이 같은 '서프라이즈 내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김 여사는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이 여야 원내대표들을 청와대 상춘재로 초청했을 때도 직접 만든 '인삼 정과'를 정성스럽게 싸서 참석자들이 돌아갈 때 일일이 손에 들려 보냈다. 작은 것이지만 감성을 자극하는 김 여사 나름의 소통 방식인 셈이다. 김 여사의 정성과 마음이 오롯이 담긴 수박 화채를 맛보니 장미 대선과 새 정부 출범을 거쳐오면서 켜켜이 쌓인 피로가 가시는 듯했다. 그런데 김 여사의 화채를 보면서 '얄궂게도' 화채와 상반된 '고구마'가 떠올랐다. 대선 기간 문재인 대통령에게 꼬리표처럼 붙어 상대 후보가 심심찮게 활용했던게 고구마다. 고구마는 답답하리만치 원리 원칙에 집착하고 모호한 화법 탓에 붙여진 '닉네임'인데, 대통령 취임 후 시원시원한 행보로 그 이름과는 결별하는 듯했다.
그러나 수박 화채를 맛보면서도 목이 메는 고구마가 따라온 건 여전히 문 대통령에 대한 답답함이 남아있는 연유다. 우선 현 정치상황이 그렇다. 문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입에 달 듯하던 '협치'는 증발 위기다.
야 3당이 강하게 반대해 온 강경화 외교부 장관 임명 강행에서 촉발된 것인데,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이어가고 있는 야 3당 탓만 할게 아니다. 청와대는 강 장관 임명 후 국회 정상화 협상을 여당에 맡기고 뒤로 빠진 모양새다. 새 정부의 첫 조각(組閣)도 마찬가지다. 가까스로 인사청문회가 정상화됐는데도 청와대는 "국민이나 국회의 검증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며 신중론을 펴고 있어 조각 마무리는 한미정상회담 후인 7월로 순연될 조짐이다.
국회가 올스톱된 상태다 보니 문재인 정부의 대표 정책인 일자리 창출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 심사도 역대 최장기간 동안 묶여 있는 상태다. 문 대통령은 높은 지지율을, 야당은 의석수를 믿다 보니 협치는 갈수록 멀어져 가는 형국인데, 결국 실타래를 푸는 것은 국정 책임자인 대통령의 몫이다.
문 대통령의 버팀목이랄 수 있는 '여론', 즉 80%를 웃도는 국정수행 지지율도 뜯어보면 실상은 허수에 가깝다. 국정수행 지지도 중 '소통'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정책 추진은 20%대, 인사는 10%대에 그쳤다. 결국 국정 평가의 핵심인 정책 추진과 인사보다 새 대통령의 신선한 소통 행보에서 오는 후한 평가를 두고 '문 대통령이 잘한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정치 지도자는 이미지로 평가받지 않는다. 선의나 진정성에 그치지 않고 '결과'를 내놓는 유능함을 보여줄 때 사람들은 호평을 넘어 '지지'한다.
이탈리아의 정치 사상가인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군주에 관하여 사람들은 결과에 주목한다. 일반 대중은 외양과 사태의 결과에 의해 설득되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았나. 또 "군주는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가장 강력한 집단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일을 피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 것처럼, 문 대통령은 국회 야 3당과, 경제의 한 축인 재벌들과 척지려 해서는 안된다. 끊임없이 설득하고 손을 내밀고 양해를 구하는데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 청와대가 나서 협치가 되고, 국정이 제대로 굴러가고, 경제주체들의 불만이 잦아들어 나라가 나라답게 돌아가기 시작한다면 이를 '야합' 또는 '타협'으로 치부할 대중은 없을 것이다.
"정치가가 아무리 진정성을 가지고 인간적 성품을 갖고 있어도 나쁜 결과(국회 갈등, 경제 위기, 불평등)를 만든다면 실패한 정치가가 될 수 밖에 없다"는 막스 베버의 말을 새겨 '좋은 결과'를 내놓는다면, 고구마 먹다 수박화채를 맛본 기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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