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데이터 전쟁에서 살아남는 법

[ ] | 2017-08-13 18:00
안경애 IT중기부장

[데스크 칼럼] 데이터 전쟁에서 살아남는 법

안경애 IT중기부장



가끔 아슴푸레 떠오르는 어린 시절 소꿉놀이의 기억. 붉은 기왓장 조각을 빻은 고춧가루와 모래로 만든 밥, 사방에 널린 풀들로 차린 밥상은 늘 푸짐했다. 도시 아이들이 쓰는 소꿉놀이 장난감이 없어도 상상 속에서 잔치를 치르고 전쟁을 벌이기에 부족함이 없던 시절이었다.

인류 문명의 출발도 별다르지 않았다. 거친 무기와 풍족하지 않은 곡식을 갖고 인류는 문명의 꽃을 피워 왔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긴 역사가 이어져 왔다.

이제 세계는 바야흐로 데이터 전쟁시대에 접어들었다. 과거 영토와 식량, 향료를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벌여왔다면 IT가 문명의 근본이 되고, 인공지능이 국가와 산업의 뼈대가 되는 시대에는 데이터야말로 쌀이자 철이자 석유다.

구글, 애플, IBM 등 IT 전문기업뿐만 아니라 벤츠, 도요타 등 자동차기업, 알리바바 같은 중국 기업 할 것 없이 인공지능 시대에 필요한 경험과 데이터를 쌓는 일에 천문학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 박사가 저서 '총, 균, 쇠'에서 무기, 병균, 금속이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지를 저술했다면, 100~200년쯤 후 누군가는 21세기 초반의 '데이터전쟁'이 역사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다룬 책을 쓸지도 모를 일이다.

분명한 것은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일수록 기록과 문서화에 강하고, 이런 특성은 AI 시대에도 큰 강점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이다. 여기에다 이들은 거울부터 센서, 레이더, 소재 등 오랜 기초과학 투자를 통해 지구와 우주 곳곳에 흩어진 '먼지 알갱이'를 의미 있는 데이터로 바꾸는 도구를 가졌다. 그 위에 데이터를 값비싼 인공지능 정보로 바꾸는 수학과 소프트웨어 능력까지 갖췄다.

반면 우리는 '핸디캡'을 지고 같은 운동장에서 달려야 하는 상황이다. 언어에 대한 분석부터 전문영역별 경험과 데이터를 축적하는 일에 뒤져있다. 센서, 소재 등 과학기술과 산업 경쟁력 부족은 인공지능 시대에도 핸디캡으로 작용한다. 우주에 수많은 인공위성을 쏘아 올려도 센서나 레이더가 없으면 소용이 없다. 망망한 우주공간에서 촘촘한 채로 우주물질을 건져 올려야 하는데, 둔한 방망이만 휘두르는 셈이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빼곡한 사물인터넷(IoT) 전용망을 구축해도, 우리만의 기술로 요리하지 못 하면 과거 '신기술 테스트베드' 명성 외엔 건질 게 없다.



지난 9일 전자정부 미래 방향을 논의하는 행정안전부 주최 행사에서 윤영민 한양대 교수는 행정시스템 변화와 함께 미래산업의 '쌀'과 같은 존재로 데이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쌀은 밥도, 떡도, 죽도 될 수 있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미래산업의 재료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양질의 쌀을 더 잘 확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데이터를 모으는 것만 해선 앞서가기 곤란하다. 데이터를 얻는 것부터 모으는 작업, 분석하고 해독해서 잘 활용하는 과정까지 전체가 물 흐르듯이 흘러가야 한다.

우선 곳곳에 흩어진 데이터를 모으고, 이들 데이터를 인공지능 데이터로 만드는 일이 급하다. 정부는 90년대 초부터 행정전산망, 즉 전자정부 사업을 추진하면서 각 행정 데이터를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했다. 특히 김대중 정부 들어 일자리 창출을 위해 사업을 확대, 조선왕조실록 같은 온갖 자료를 디지털화했다. 이때 쌓인 데이터는 이후 각 산업영역에서 큰 도움이 됐다.

이제 이들 데이터를 인공지능에 맞게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SK텔레콤, KT, 네이버 등 기업들은 이미 인공지능 데이터 확보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3사가 데이터 수집에만 수십조를 쏟아붓는 상황에서 우리는 공조전략이 필요하다. 정부는 인공지능 시대에 맞는 한국형 데이터 플랫폼을 기업들과 함께 만들고 힘을 합쳐 우리 곳간을 채워야 한다. 공공DB 업그레이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일자리를 만들 수도 있다.

데이터와 사이언스, 사이언스와 데이터를 잘 묶어내는 내공도 필요하다. 특히 남들은 얻기 힘든 차별화된 데이터를 과학기술을 통해 포착해내기 위한 투자를 간과해선 안 된다.

오늘날 중요한 자료는 과학기술에서 나오는 게 많다. 스위스 변방에서 우주의 태동기를 재현하는 거대강입자충돌기(LHC)를 비롯해 우주공간을 떠다니며 우주와 지구에서 날아오는 온갖 신호와 데이터를 포착하는 인공위성, 생명체의 비밀을 푸는 게놈 데이터, 아직 미스테리로 둘러싸인 뇌까지…. 실제로 IT 진화가 과학기술 진보로 이어지고, 과학기술 현장에서 새로운 IT 기술이 태동한다.

우리의 약점인 '사이언스(S)'와 '소프트웨어(S)'. 두 가지 'S'의 수준을 'S(Special)'급으로 올려야 데이터 전쟁시대에 희망이 있다. 미래창조과학부에서 이름을 바꿔 단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행안부에 주어진 가장 큰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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