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들은 극복하기 어려운 기술적 난제가 생기면 자연에서 답을 찾는다. 물총새의 날렵한 부리를 본뜬 열차 앞모습으로 주행 중 소음을 줄인 일본의 고속열차 신칸센과 흰개미의 둥지를 모방한 짐바브웨의 자연 냉방건물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렇게 수 억년의 진화를 통해 쌓인 생물의 구조와 기능을 모사해 공학적으로 응용하는 분야를 '청색기술'이라고 한다. 지금도 청색기술은 최첨단 과학기술부터 우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펼쳐지고 있다.
◇파리의 눈에서 찾은 태양전지=차세대 에너지원으로 꼽히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는 저렴한 제조 비용과 높은 효율로 기존 실리콘 태양전지의 한계를 극복할 것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페로브스카이트 자체가 매우 불안정하고 기계적으로 약해 열이나 습기로 인해 쉽게 깨질 수 있다는 한계가 상용화의 발목을 잡고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라인홀드 아우스칼트 교수 연구팀은 이런 한계를 '파리의 눈'을 통해 극복했다. 파리의 눈은 육각형 모양의 미세한 눈 결정 수백 개가 벌집처럼 모여있는 구조다. 결정들이 서로를 지탱하는 구조로 이 중 하나가 고장 나거나 손상돼도 주변에 있는 결정들을 통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연구팀은 파리의 눈 구조를 모사해 페로브스카이트를 한 변의 길이가 약 0.05㎜인 사각형 틀 안에 넣어 태양전지를 만들었다. 연구팀은 파리 눈 구조를 가진 태양전지가 페로브스카이트 자체로 만든 태양전지와 비교해 효율이 떨어지지 않으면서 내구성은 훨씬 뛰어나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확인했다. 이 태양전지는 온도 약 85℃, 습도 약 85%인 덥고 습한 환경에서도 6주 동안 전기 생산 효율성이 떨어지지 않고 꾸준히 전기를 만들어냈다.
◇우주 쓰레기 치우는 게코 발바닥=현재 우주에는 인간이 만든 약 50만개의 우주 쓰레기가 시속 2만8000㎞의 속도로 날아다니고 있다. 이 쓰레기들은 인공위성이나 우주선 등에 엄청난 위협이 되지만 치우는 일 자체도 골치다. 끈적이는 접착제는 화학성분이 우주의 극한의 온도 변화를 견디지 못해 쓸 수가 없고, 작살은 강력한 힘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쓰레기를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밀어버릴 수도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팀은 우주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 '게코'의 발바닥을 가져왔다. 도마뱀의 사촌격인 게코의 발바닥에는 수백만 개의 털이 나 있어 벽에 닿으면 강력한 접착력을 발휘한다. 과학자들은 이미 2000년대부터 게코의 발바닥을 모방했다. 마크 쿠토스키 스탠퍼드대 교수는 2006년 게코처럼 발바닥에 미세한 털이 달려 벽을 기어오를 수 있는 로봇을 개발했고, 이를 발전시켜 이번엔 우주 쓰레기를 치우는 집게를 개발했다. 집게의 접착 물질에 있는 미세 털은 0.04㎜로, 실제 게코 발에 난 미세 털의 200㎚(나노미터·10억분의 1m)에 비해선 200배나 크지만 접착 원리는 같다. 연구팀은 이 게코 집게를 작은 크기로 만들어 실험실과 국제우주정거장 등에서 무중력 상태로 여러 차례 실험했고, 초기 결과가 성공적이어서 우주정거장 밖에서의 실험도 고려하고 있다.
◇거미줄 모방한 휴대폰 배터리=박호석 성균관대 교수팀은 거미줄의 구조와 기능을 모방해 휴대폰이나 노트북에 쓰이는 리튬이온전지의 용량과 충전 속도를 높이는 기술을 개발했다. 연구팀은 탄소나노튜브를 거미줄 형태의 3차원 구조로 조립하고 끈적이는 거미줄과 같은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표면을 오존으로 처리한 '3차원 탄소나노튜브 웹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이 거미줄은 벌레를 포획하듯이 고용량의 철 산화물 나노입자를 잡고 있어 전하가 빠르게 이동하고 구조적으로 높은 안전성을 가진다. 이 거미줄 전극을 이용한 리튬이온전지는 기존 음극 소재인 흑연의 용량 한계인 370㎃ h/g의 두 배 이상인 820㎃ h/g의 고용량에서 300회 이상 충·방전해도 88% 이상 용량을 유지했다.
박호석 교수는 "현재 극복하기 어려운 기술적 난제들을 간단하게 해결할 방안은 자연계 현상을 모방하는 기술이라고 생각했다"며 "거미줄의 구조와 기능을 모방한 이번 기술은 물에 분산되는 어떠한 나노입자에도 적용할 수 있는 범용적인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남도영기자 namdo0@dt.co.kr
미국 스탠퍼드대 라인홀드 아우스칼트 교수 연구팀은 파리의 눈 구조를 모사해 내구성 문제를 극복한 새로운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개발했다.(출처 : 스탠퍼드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