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인문학] 공부가 즐겁지 않은 우리의 까닭

[ ] | 2017-10-12 18:00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교수

[디지털인문학] 공부가 즐겁지 않은 우리의 까닭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교수


아버지가 큰맘 먹고 아들과 '논어'를 읽기로 했다. 첫 문장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그 뜻을 아들에게 묻는다. 학교에서 분명히 배웠을 텐데 대답이 없자, 아들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아버지는 앞부분을 해석해주며 다시 묻는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이 또한 '열(說)', 어떻다는 거냐? '열'이 무슨 뜻이지?" 아들은 기억이 되살아난 듯 밝은 표정을 지었지만 짓궂게 말했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이 또한 '열'받지 아니한가!" 기가 막히는 대답이긴 하지만, 아들이 '기쁠 열(說)'의 의미를 일그러뜨리며 자신의 심정을 솔직하게 말했으니, 틀렸다고 할 일도 아니다. 공자는 공부의 즐거움에 감격하며 이 말을 했을 것이나, 아들은 아들대로 나름의 사정이 있으니 말이다.

아이들은 세상에 나온 지 7~8년 될 무렵에 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한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12년의 세월동안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낸다. 아무것도 모르던 아이들이 유익한 정보를 습득하며 세상에 관해 알아가는 것이다. 자기가 태어났고 살아가고 있으며 성인이 되어 주인처럼 살아갈 우리 사회가 어떻게 형성됐으며, 어떤 역사를 통해 전통을 형성해 왔는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현재는 어떤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미래를 어떻게 가꾸어 나가야 하는지, 그 거대한 조직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나'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아이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탐색하고 준비하고 연습해야 한다. '나'의 가능성과 취향을 파악하고 사회 속에 자신을 깃들여 놓고 역동적으로 활동하며 행복을 가꾸어 나갈 수 있는 모든 준비를 하는 곳, 그곳이 바로 학교인 것이다.

황금 같이 찬란한 시간을 들여서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준비하며 공부하는 즐거움을 느낀다면, 삶에 유익한 정보를 얻고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들의 인생은 얼마나 풍부해질까? 그런데 왜 배우고 익히는 일이 아이들에게 열 받는 일이 되었을까? 그것은, 아이들이 배우고 익히는 모든 것들이 오직 시험 문제를 풀기 위한 아이템에 불과하며, 학교는 시험이라는 제도를 통해 아이들이 배운 것을 얼마나 잘 익혔는지를 체크한 후에 서열화 시켰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심지어 서열화의 정밀성과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시험은 교묘한 함정을 파놓고 아이들이 그곳에 빠지기를 기다리는 교활한 사냥꾼처럼 음흉하게 도사리고 있지 않은가. 시험이 끝나면 아이들의 희비가 엇갈린다. 기뻐하는 아이의 기쁨은 공부를 통한 깨달음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보다 더 높은 위치에서 돋보이고 칭찬을 독점하는 데에서 온다. 그리고 그들을 돋보이게 한 다수의 아이들은 짜증과 좌절, 열등감과 절망을 느낀다. 심지어 공부하는 동안 깨달음의 기쁨을 누렸으며 다양한 독서의 달콤함에 취해 세상을 찬란하게 꿈꾸던 아이들조차 학교에서 공표하는 공부의 예기치 않은 결과들에 고통을 느낀다. '공부는 그런 것이구나'라는 단정이 내려지면, 공부의 즐거움, 그 자체가 주는 깨달음의 즐거움은 잔혹하게 사라진다.

학교는 잔혹의 전주곡에 불과하다. 더욱더 큰 문제는 국가가 일으킨다. 국가는 학교를 사회의 중요 조직으로 설치해놓고, 필요한 전문 인력을 양성한다는 명목으로 상위의 교육기관으로 대학을 인가한 후, 그곳으로 들어가기 위한 좁은 문을 만들어 놓았다. 그 시스템이 확고해지자 학교는 그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한 다단계 입시준비 장소가 되었다. 사회는 한 아이가 어떤 대학에 입학하여 무엇을 전공했는가에 따라 직업과 직장, 심지어 경제적, 사회적 수준까지 결정적으로 좌우한다.

그러다보니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 좋은 직장을 얻으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은 우리 시대의 보편적 가치를 대변하는 신화로서 견고하게 사람들의 가치관을 지배하게 되었다. 시험을 통해 절망을 경험하고 열등감을 뼛속 깊이 새겨야 하는 시스템에서 공부는 잔혹한 경험의 원천이며, 그런 공부를 강요하는 학교는 새싹 같은 아이들을 가두고 열 받게 하는 불행한 수용소로 전락할 것이다. 나아가 그렇게 자란 사람들이 모인 사회 역시 행복을 위한 공간이 될 수 없는 것은 불을 본 듯 뻔하다. 희망이 사라진 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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