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장수기업 가로막는 상속세 손질해야

[ ] | 2017-12-06 18:00
류동길 숭실대 명예교수·경제학

[시론] 장수기업 가로막는 상속세 손질해야

류동길 숭실대 명예교수·경제학

내년 예산안에는 공무원을 9475명 증원, 법인세 최고세율 25% 인상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미국은 법인세를 35%에서 20%로 낮추자 일본도 20%까지 낮추는 방안을 추진한다. 글로벌 경쟁을 해야 하는 한국의 기업환경은 척박하다.

기업은 어떻게 성장하며 오래 견디는가. 다시 말해 기업의 수명(壽命)에 한계가 있는가. 오늘날 급속한 변화의 물결은 기업의 생존을 위협한다. 그런 가운데 수백 년은 물론 천년을 뛰어 넘어 장수(長壽)하는 기업도 있다. 혁신을 거듭하며 경쟁력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일본 오사카 소재 건설회사 공고구미(金剛組)는 144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여관 1400년, 부엌 칼 만들기 1100년, 과자 만들기 1000년의 역사를 기록하는 기업을 비롯해서 백년 넘은 기업은 2만7000여 개에 이른다. 이들 가운데 가업(家業)과 소규모 기업이 전체의 61.7%을 차지한다. 조사대상에서 제외된 가업을 포함시키면 백년 넘은 기업은 10만여 개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전 동아출판사 권태명 사장의 기행문 '수 백 년을 이어온 일본의 노포-그 생존의 비결')

한국은 100년 이상의 업력을 가진 기업은 7개사에 불과하다. 미국(1만2780개사), 독일(1만73개사), 네덜란드(3357개사) 등에 비할 바가 못된다. 물론 굴곡의 시대를 거쳐 온 탓도 있다. 정부는 지난해 중소기업이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한 '명문 장수기업 확인제도'를 마련했고 지난 2월에는 명문 장수기업을 선정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무엇이 달라지는가. 정책의 몫은 장수기업의 출현을 실질적으로 돕는 것이어야 한다.

장수기업은 가족기업에서 많이 나온다. 가족경영은 선진국에서도 보편적인 경영형태다. 월마트, 도요타, BMW, JP모건, 포드, 피아트 등 세계적 기업도 가족기업이거나 가족기업에서 출발했다. 가족기업의 비중은 미국(92%) 독일(84%) 영국(76%) 호주(75%) 등에서 매우 높다.

우리 중소기업의 대부분은 가족기업의 형태다. 중소기업 경영자의 고령화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경영권 승계문제는 피할 수 없는 경영과제가 돼있다. 가업(家業)을 승계하는 경우 상속세는 상속재산의 50%에 최대 주주는 30% 할증돼 65%의 세율이 적용된다. 중소기업의 재산 대부분은 공장·건물 등 부동산이다. 상속세를 내기 위해 공장 일부 매각, 경영권 포기 또는 회사정리 등의 사례가 생길 수밖에 없다. 쓰리세븐(세계 1위 손톱깎이 기업)과 농우바이오(국내 종자업계 1위), 유니더스(최대 콘돔 제조사) 등이 상속세 때문에 회사를 매각했다. 공장 일부를 매각한 결과 고용과 생산규모를 축소한 기업도 있다. 기업을 키울수록 경영권 승계는 더 어렵게 돼 있어 중소기업 경영자들 대부분은 기업을 키울 생각을 접고 온갖 편법을 동원하기도 한다.

현재 가업영위기간에 따라 200억 원~500억 원까지 상속재산 공제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공제 대상은 매출 3000억 원 미만의 중소·중견기업으로 피상속인이 60세 이상, 상속자는 상속 후 10년 간 주된 업종을 변경할 수 없고 고용규모도 줄여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붙어있다. 구글이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세상인데 업종을 변경하지 못한다는 건 시대착오적이다.

선진국들이 가업상속 지원에 나서고 있는 건 중소기업의 폐업을 막아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다. 일본은 중소기업의 상속세를 대폭 감면해주기로 했고 미국은 아예 상속세 폐지로 기업의 기 살리기를 추진 중이다. 가족기업의 비중이 높은 독일은 가업상속 후 5년~7년간 가업을 영위하고 지급한 급여총액이 상속 당시 급여 지급총액의 400% ~700% 이상이면 85%~100%를 공제한다.

가업승계는 제2의 창업이다. 부(富)의 대물림으로 보고 과중한 상속세를 매기면 기업이 장수할 길은 없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움츠리게 하거나 죽여서는 안 된다. 회사를 팔아야 상속세를 낼 수 밖에 없는 현실을 그대로 둘 것인가. 가업승계를 통해 고용과 사회적 이익을 실현하고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길을 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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