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봅시다] 을 지켜줄 갑질 근절 대책

입력 2018-03-27 18:00

대기업은 특허 뺏고 가맹본부 '맞불 입점'…갑-을 악순환 끊어라
기술 유용 위법성 기준 완화하고 직권조사 도입
담합 행위 과징금 부과율도 10%서 20%로 올려
7월부터 전속거래 강요·원가 등 정보 요구 안돼
가맹본부는 가맹점 인건비 부담 나누고 보복 금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경제검찰의 수장인 공정거래위원장에 임명되면서 '갑질 근절' 정책이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하도급·유통·가맹 분야의 경우 이미 몇 가지 정책은 시행 단계에 돌입했고, 상당수 과제들은 법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용이 복잡하고 방대해 실제 현장에서는 어떤 법과 제도가 바뀌는지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것도 사실입니다. 지금까지 제도 개선이 완료된 것과 앞으로 바뀔 것들을 잘 들여다보면 대표적인 '을'이라 할 수 있는 중소·중견기업이나 프랜차이즈 가맹점주에게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우선 이미 시행에 들어간 제도들을 보면 중소·중견기업의 기술을 대기업들이 탈취하는 일들을 막기 위한 거래 전 협상 단계에서의 기술유용 대응 강화 방안과 원천기술에 대한 공동특허 요구 금지 행위 등이 눈에 띕니다. 거래 전 협상 단계에서의 기술유용 대응 강화안은 위법성 판단 기준을 완화한 것이 핵심입니다. 즉 과거에는 기술유용 위법성 판단을 '심히 곤란하게 할 경우'로 규정했지만, 법 조문에서 이 부분을 '상당히 곤란하게 할 경우'로 바꾼 것입니다. 이는 지난해 10월부터 적용 중입니다.
올해부터 중소·중견기업의 기술을 부당하게 빼앗은 혐의가 포착된 대기업에 대해 별도의 신고가 없더라도 공정위가 직권으로 조사에 착수할 수 있게 된 점도 기술 유용·탈취 행위 근절 효과를 제고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1월부터 공동특허 요구도 금지됐습니다. 대기업이 중소·중견기업 자체 개발 기술을 두고 공동특허를 요구하거나 특허 반환기간 이후에도 무단으로 사용하는 행위를 위법으로 규정한 것입니다. 지속적인 거래관계 유지를 빌미로 원사업자가 자금이나 기술지원을 전혀 하지 않은 하청기업의 자체 개발 기술에 공동 특허 출원을 요구하는 사례가 비일비재 했는데 앞으로 이런 요구를 하면 공정위 제재와 사법처리 대상이 됩니다.

유통 분야에서는 과징금 부과 기준율이 지난해 11월부터 2배 인상됐습니다. 예컨대 담합이라는 불공정 행위를 하면 과징금 부과기준율 10%를 적용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를 20%로 올린 것입니다. 유통 기업 입장에서 법 위반 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과징금보다 커 법을 준수할 유인이 적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입니다. 또 1월부터는 상품 주문계약서에 납품수량을 제대로 기재하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 수량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으며, 지난해 12월부터는 판매수수료 공개대상이 대형마트와 온라인쇼핑몰까지 확대됐습니다. 이어 최저임금 상승에 따른 인건비 부담 해소 차원에서 하청업체의 공급원가 변동 시 납품가격을 조정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12월 마련됐습니다.

가맹 대책 중에서는 외식업종 구입 요구 품목 점검을 바탕으로 유통 마진 공개가 2017년 12월 의무화 됐고, 가맹분야 옴부즈만 제도도 지난해 7월 도입됐습니다. 옴부즈만 제도는 가맹거래 경험이 풍부한 전·현직 가맹점주와 한국공정거래조정원 직원들이 현장을 상시 감시하는 것이 내용입니다. 1기 옴부즈만 13인이 이미 선정돼 외식업종에서 활동 중이며, 이후 치킨·한식·커피·주점·분식·제과 등으로 확대한다는 게 공정위의 계획입니다. 가맹본부의 법 위반 행위를 공정위에 신고 또는 제보하고,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 자료를 제출한 자에게는 포상금을 지급하는 제도도 1월에 법 공포가 완료됐습니다.

앞으로 도입이 예정된 갑질 근절책도 상당합니다. 하도급 분야에서는 7월17일 시행을 앞두고 있는 전속거래 강요 금지, 원가 등 경영정보 요구 금지, 하도급 대금 조정 신청 협의 요건 확대, 3배 손해배상 소송에 보복조치 추가 등이 대표적입니다. 전속거래 강요 금지는 대기업이 협력사에 정당한 사유 없이 자기에게만 납품하라고 강요하는 행위를 막겠다는 것이 요지입니다. 공정위는 전속거래 금지 여부가 지켜지는지에 대해 2년마다 실태 조사를 실시할 방침입니다. 유통과 마찬가지로 최저임금 상승 탓으로 공사비용이 추가로 들 경우 인건비 상승의 부담을 원청업체와 나눌 수 있게 제도화되며, 하도급법상 징벌적 손해배상 적용 대상에 기존 부당 대금 결정이나 부당 위탁취소 외에 보복행위(3배 손해배상)가 추가됩니다.

시행을 앞둔 가맹 대책은 보복조치 금지 규정 도입과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해당 지역 업체의 정보공개서를 등록하고 취소할 수 있도록 권한이 부여됩니다. 두 사안 모두 7월부터 적용됩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경제민주화의 시작은 재벌개혁이지만 본령은 갑질 근절에 있다"며 "대·중소기업간 수직적 관계에서의 거래 공정화 뿐 아니라 중소기업·소상공인이 자생할 수 있도록 수평적 네트워크를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나아가 김 위원장은 올해 정책 기조로 "중소·중견기업과 영세 소상공인들이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을 중심으로 선제적으로 직권조사를 하고 실질적인 피해구제가 가능하도록 하겠다"며 "고여 있는 물은 부패하기 마련인 것처럼 경제 주체 간 치열한 경쟁 하에서 기업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고 전체 경제의 발전도 가능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업종·업태별로 공정한 경쟁 원리가 제대로 작동되게 하기 위해서는 우월적 지위를 남용한 갑질부터 뿌리 뽑아야 한다는 게 김상조 위원장의 기본적인 정책 기조 입니다.

세종=권대경기자 kwon213@dt.co.kr

도움말=공정거래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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