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봅시다] 섀도 보팅 제도 폐지 후 쟁점과 과제는

입력 2018-04-02 18:00

주총 거수기 '유령 주주' 사라졌지만…'정족수 미달' 대안 마련해야
찬반 따라 출석 간주…의사 왜곡 가능성 높아 폐지
소액주주 많은 상장사는 정족수 확보 난항 부작용
칩스앤미디어 · 영진약품, 감사·사외이사 선임 실패
기관 구성 못하면 과태료…주총 노력땐 면제 검토

지난 25년 간 운영됐던 섀도 보팅(의결권대리행사) 제도가 지난해 말부터 폐지됐습니다.

폐지 전까지는 발행주식 총수의 25% 이하 지분을 갖고 있는 주주들만 주주총회에 참석해도 섀도 보팅 제도를 이용해 안건 의결 등을 진행했지만 이제는 25% 이상의 지분을 갖고 있는 주주들이 주주총회에 참석해야만 안건 의결이 가능하게 됐습니다.
당장 섀도 보팅 제도가 폐지되면서 다수의 상장사가 금융위원회에 의결권 확보 지원을 요청하는 등 혼란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칩스앤미디어', '영진약품'은 최근 주총에서 정족수 부족으로 각각 감사, 사외이사 선임 안건 처리에 실패했습니다. 지난 1991년 섀도 보팅 제도가 도입된 이후 현재 상장사의 3분의 1 이상이 이 제도를 이용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혼란은 한동안 계속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1990년대 초반 당시 상법은 발행주식 총수의 2분의 1 이상의 주주가 참석해야 주주총회가 성립하는 의사정족수를 규정하고 있어서 주주 과반수가 직접 주주총회 현장에 오거나 대리인을 보내 의결권을 행사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과반수 주주들이 참석하지 못해 주주총회가 성립되지 않는 회사들이 생겨났고 경제계와 정부는 상장회사의 주주총회가 성립할 수 있도록 1991년에 (구)증권거래법을 개정해 섀도 보팅제도를 도입했고 1993년 3월부터 시행됐습니다.

섀도 보팅 제도가 시행된 이후 1995년 상법 개정으로 의사정족수 규정이 폐지됐고 발행주식 총수의 4분의 1 이상 주주가 찬성하면 주주총회 안건이 의결되도록 됐습니다. 1999년에는 서면투표, 2009년 전자투표가 각각 도입됐고 주주들이 직접 주주총회에 참석하지 않고도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됐습니다.

하지만 제도 변화에도 불구하고 섀도 보팅 제도로 의결권 확보가 수월했던 회사는 주주들의 의결권 행사를 보장하는 전자투표 등 제도 도입에 소극적이었고 일방적으로 찬반비율에 따라 출석으로 간주하는 섀도 보팅 제도는 주주들의 의사를 왜곡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습니다. 국회는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섀도 보팅 제도를 2015년 1월 1일 폐지하기로 했지만 부작용을 우려해 2014년 12월 부칙을 개정해 폐지를 3년 유예하기로 했습니다.

이 제도 폐지로 우려되는 사태 중 하나는 소액주주들의 다수를 이루는 상장회사의 경우 발행주식 총수의 4분의 1을 확보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입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상장회사 5.4%에 해당하는 119개사가 소액주주의 지분율이 75%를 넘습니다. 실제 지난 3월13일 기준으로 제이웨이, 와이디온라인, 영진약품에서는 정족수 미달로 임원 선임 안건이 통과되지 못했습니다.

국회입법조사처 황현영 입법조사관은 "섀도 보팅 제도는 임원선임, 배당과 같은 보통결의사항에 대해서만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의결정족수 완화도 보통결의사항에 한정하도록 하고, 주주들의 의결권 행사를 보장하기 위해 전자투표를 도입하는 등 주주총회의 성립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 회사에 한정하여 의결정족수 완화를 허용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섀도 보팅 제도가 가장 많이 이용된 안건은 감사 또는 감사위원회 위원 선임인데, 상법에서는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감사 등의 독립성 보장하기 위해서입니다.

예를 들어 발행주식 총수의 40%를 보유하고 있는 대주주도 감사 등의 선임 안건에서는 최대 3%의 의결권밖에 행사하지 못합니다. 이로 인해 감사 등 선인 안건에서는 지분이 분산된 회사들은 물론 최대주주의 지분이 높은 회사도 의결정족수를 충족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상장회사가 주주총회에서 의결정족수 미달로 감사 선임안건이 부결돼 기관이 구성되지 못하면 상법에 따라 5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해당회사는 한국거래소의 관리종목으로 지정되며 이후 1년 이내에도 법적 요건에 부합하지 못할 경우 상장이 폐지됩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상장규정을 개정해 상장회사가 전자투표 도입, 주주총회 분산 개최 등 주주총회 성립을 위해 노력했음에도 의결정족수가 미달된 경우에는 관리종목지정을 면제하고 상장폐지가 되지 않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과태료 부과에는 예외가 인정되지 않아 일정 조건을 충족한 경우엔 과태료 부과를 면제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호승기자 yos547@dt.co.kr

도움말=국회입법조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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