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봅시다] `게임 장애` 질병 등재 논란

입력 2018-04-11 18:00

"효과적 치료·연구에 도움" vs "중독 개념 등 기준 불명확"
WHO, 보건총회 통해 게임장애 등재 추진
중독 치료 서비스 성숙도 향상에 도움 기대
옥스퍼드대 등 연구자 36명 "근거부족" 주장
질병진단 기준 등 의학적 연구 부족한 상황

[디지털타임스 김수연 기자] 게임중독이 질병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쟁이 최근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국제질병분류'(ICD)에 게임장애(Gaming Disorder)를 정신건강질환으로 포함하는 것을 추진하면서입니다. WHO는 게임 장애를 질병으로 정의한다는 내용과 게임 장애 진단 기준을 명시한 ICD 11차 개정(ICD-11)안 초안을 지난해 말 확정했습니다.

초안에서 WHO는 게임 장애를 '게임 사용 시 통제력이 약화 되는 행동 패턴'으로 규정했습니다. 또 게임 장애 여부를 진단하는 기준으로 △게임에 대한 통제 기능 손상 △삶의 다른 관심사나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우선시하는 것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중단하지 못하는 것 등을 명시했습니다. 이러한 행동 패턴이 개인, 가족, 사회 등의 중요한 영역에서 심각한 손상을 초래할 정도의 수준으로 최소 12개월 동안 나타날 때 게임 장애로 규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는 5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제71회 세계보건총회(WHA)에서 개정안을 승인받고, 6월 게임 장애를 ICD-11에 등재 하는 것이 WHO의 계획입니다.
이러한 가운데 현재 국제 사회에선 WHO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한 찬반 의견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지난달 영국 옥스퍼드대, 미국 존스홉킨스대, 스웨덴 스톡홀름대, 호주 시드니대 등의 정신건강·사회과학 분야 연구자 36명은 임상심리학 분야 학술지인 '행동 중독 저널'에 논문을 투고하며 WHO의 방침에 반대 의사를 밝혔습니다.

WHO의 주장에 근거가 없다는 게 논문의 요지입니다. 이들은 게임 장애를 질병화하려는 WHO의 계획을 지지하는 연구진 사이에서도 게임 장애가 정확하게 정의 내려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 게임 장애를 질병으로 진단할 명확한 과학적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 새로운 질환으로 공식화하기 이전에 중독의 개념부터 명확하게 정립해야 한다는 점 등을 반대 이유로 들었습니다.

또 한국, 브라질, 미국, 캐나다, 남아프리카, 호주, 뉴질랜드, 유럽 등의 게임산업 관련 단체들도 WHO의 움직임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게임 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하는 것이 게임 중독 치료와 관련한 의료 시스템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습니다.

영국 나이팅게일정신건강병원의 중독 치료 프로그램 전문가인 리차드 그레이엄 박사는 최근 미국 인터넷 신문인 허핑턴포스트를 통해 "WHO의 계획이 의료 서비스의 성숙도를 향상 시킬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게임 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하는 것에 대해 "디지털 세계에서 길을 잃거나, 손실이 발생하거나, 손상된 부분이 있는 이들을 회복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 올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국내에서도 찬반 의견이 갈리고 있습니다. 게임업계에선 WHO가 '게임 장애'를 ICD에 포함하게 되면 향후 한국질병분류코드(KCD)도 이를 따르게 될 것이라고 우려합니다. 이렇게 되면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커져 산업에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게임은 콘텐츠 수출액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는 산업이지만,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이에 바탕을 둔 각종 규제가 게임 산업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게 업계 시각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게임 중독이 질병으로 분류되면, 게임에 대한 인식 개선은 더욱 어려워진다는 우려입니다.

의료계 일각에선 WHO의 게임 장애 진단 기준이 허술하며, 게임 장애를 ICD에 등재 하려면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한덕현 중앙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지난달 한국콘텐츠진흥원이 개최한 '게임문화의 올바른 정착을 모색하기 위한 토론회'에서 "'인터넷 게이밍 장애'는 문제를 호소하는 이들이 우울증, 불안장애 등의 질환을 같이 앓고 있는 경우가 많아 추가 연구가 필요한 사안이라, 정신의학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 5판(DSM-5)'에서도 질환으로 규정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러한 상황에서 WHO는 '중독'을 판단하는 핵심 잣대인 내성, 금단증상 등을 뺀 채 진단 기준을 제시했다"며 "정신과 질환의 경우 한번 만들어진 진단기준은 수정되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점에서, 제대로 된 진단 기준을 만들기도 전에 게임 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학계에선 게임 장애를 질병으로 규정할 경우, 게임 장애로 진단받은 사람들을 비정상인으로 분류하는 '낙인' 현상이 확산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이러한 가운데 다른 한편에선 게임 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할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달 '게임문화의 올바른 정착을 모색하기 위한 토론회'에서 김봉석 인제대 상계백병원 교수는 "1800년대에 발발한 크림 전쟁 때, 전쟁하다 죽은 사람보다 수술하다 사망한 사람이 훨씬 더 많았는데 이는 미생물균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며 "게임 중독 또한 올바르게 치료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문제가 일어나는 것"이라고 발언했습니다. 게임 장애를 질병으로 규정하면 효과적인 치료방법에 대한 연구도 함께 이뤄질 수 있을 것이란 주장입니다.

김수연기자 newsnew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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