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DJ와 정적이자 라이벌·동지로 반세기 호령
DJP 연합 통해 가장 '힘있는 총리'로 꼽히기도
여야, 깊은 애도… "내각제 후배 정치인 과제로"
김종필(JP) 전 국무총리의 일생은 한국 정치사와 고스란히 맞물린다. 김 전 총리를 한국 현대 정치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로 평가하는 이유다.
김 전 총리의 정치 인생은 박정희·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을 뺀 채 설명할 수 없다. 김 전 총리는 중령일 당시인 1961년 5월 16일 처삼촌인 박 전 대통령의 5·16 군사정변을 도우면서 정치 인생의 첫발을 내디뎠다. 쿠데타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자 김 전 총리는 "내가 박정희 장군을 모시고 5·16을 기획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전 총리는 5·16 이후 중앙정보부장, 민주공화당 의장, 국무총리 등 주요 요직을 거쳤다. 1979년 10·26 사태로 박정희 정권이 무너지고 신군부가 들어서면서 5·16 군사정변 세력은 침잠했지만 김 전 총리는 정치인으로 살아남았다.
◇ 정적이자 라이벌이자 동업자 YS·DJ= 박 전 대통령과 정적이었던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은 김 전 총리의 정적이자 경쟁자, 정치적 동지였다. 정치적 필요에 따라 손을 잡으면서 대치하던 진영으로부터 비난·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김 전 총리가 가장 먼저 손을 잡은 인물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었다. 김 전 총리는 신민주공화당 총재 시절인 1990년 1월 노태우 대통령,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를 만나 민정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을 선언했다. 당시 제1야당은 평화민주당이었지만 3당 합당으로 거대 여당이 탄생했다. 3당 합당을 놓고 총선 민의를 거스른, 정당정치의 퇴행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3당 합당이 '호남 고립-영남 패권'의 갈등구도를 불러왔다는 비판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자당의 최고위원이 된 김 전 총리는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 후보의 대통령 당선 '1등 공신'이 됐다. 하지만 김 전 총리는 내각제 시행을 둘러싸고 김영삼 전 대통령과 갈등을 빚었다. 1995년 민자당을 탈당해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을 창당했다. 자민련은 이듬해 총선에서 50석을 확보하는 기염을 토했다.
김 전 총리가 '영원한 2인자'를 원했던 것은 아니다. 김 전 총리는 1997년 자민련 후보로 대선에 출마했다. 하지만 선거 막바지 김 전 총리는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을 성사시키고 김대중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당시 보수 진영에서는 박 전 대통령, 김 전 총리 최대 정적인 김대중 후보와 손을 잡을 것에 대한 비난·비판이 거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당선을 도운 김 전 총리는 김대중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냈다. 김 전 총리는 국정 현안을 직접 컨트롤하는 등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깊숙이 관여해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힘 있는 총리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역시 김 전 총리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내각제 개헌 등의 문제로 갈등을 빚었고, 2001년 임동원 당시 통일부 장관 해임안 가결이 결정타가 돼 김대중 정부와 결별한다.
DJP 연대가 파기되면서 자민련의 세력은 급속히 약화했다. 한때 50석을 얻었지만 2000년 16대 총선에서는 17석을 얻는 데 그쳤고,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4석의 미니 정당으로 쇠락했다. 특히 17대 총선에서 김 전 총리는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추진에 가담해 역풍을 맞았다.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1번으로 출마했지만 낙선하면서 10선 고지를 밟는 데 실패하고 총선 직후 정계를 은퇴한다.
◇ 정치권, 여야 가리지 않고 깊은 애도= 정치권은 김 전 총리의 별세 소식에 여야를 막론하고 애도를 표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3일 빈소를 조문한 뒤 기자들과 만나 "1997년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에 총리님께서 동행해주셨다. 우리나라 정치에 족적을 남기신 어른"이라고 말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겸 당 대표 권한대행은 "오늘의 경제 대국이 되기까지 그분의 족적이 너무나 중요하게 느껴진다. 특히 보수정당의 절체절명의 위기에 별세 소식을 접해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는 "한국 현대 정치사에 길이 남을 풍운아였고, 각박한 정치 현장의 로맨티스트였다. 큰 어른을 잃어 안타깝다"고 했다.
자민련 시절 'JP의 대변인'으로 활약했던 정진석 한국당 의원은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의 걸출한 지도자였고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민주화에 공히 공헌한 유일한 인물이었다"고 했다. 김 전 총리와 가까웠던 정우택 한국당 의원도 "항상 여유와 위트가 있는 정치를 추구하셨던 분으로, 정치가 각박한데도 불구하고 항상 여유 있는 마음가짐이 후배들에게 인상적이었고 모든 것을 원만하게 타결해가는 성품을 갖춘 분이셨다"고 말했다. 유의동 바른미래당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고인이 생전에 바라왔던 대한민국 정치발전과 내각제를 바탕으로 한 민주주의의 발전은 후배 정치인들에게 과제로 남았다"고 말했다.장정숙 민주평화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고인은 DJP 연합을 통해 국민의 정부 출범에 크게 기여했다"며 "산업화·민주화 시대로 이어지는 세월 동안 고인은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3김 시대'를 이끌며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추혜선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JP는 5·16쿠데타의 주역으로 부상해 3김 시대를 거쳐 DJP 연합까지 영욕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다"며 "대한민국 현대사의 큰 질곡마다 흔적을 남겼던 고인의 기억은 사료와도 같은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이호승기자 yos54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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