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배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포럼] 동아태 지역 사이버안보협력 필요하다](http://contents.dt.co.kr/images/201808/2018081702102369640001[1].jpg?var=2237 "[포럼] 동아태 지역 사이버안보협력 필요하다")
최근 동아태 지역에서 발생하는 사이버 공격은 국가 기간시설의 교란에서부터 금전취득을 위한 해킹, 개인·기업 정보의 탈취 등에 이르기까지 그 목적이 다변화되고 있다. 봇넷 공격, 악성코드 침투. 랜섬웨어 유포, 인공지능 활용 등 공격수법도 다양화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큰 변화는 일견 일탈적 해커그룹의 소행으로 보이는 사이버 공격의 이면에 러시아, 중국, 이란, 북한 등과 같은 국가 행위자의 그림자가 점점 더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이들 해킹 문제가 단순히 비국가 행위자들이 벌이는 사이버 범죄가 아니라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 국제정치 문제로 인식되는 이유다.
이러한 사이버 공격에는 일차적으로 피해 당사국들이 나서서 대응할 수밖에 없다. 최근 미국은 아태 지역에서 일본 호주 한국 등과 긴밀한 협력체계를 구축했다. 나토 회원국들과 유럽 지역에서 추구했던 사이버 안보 구상을 아태 지역에서도 적용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국가 지원 해킹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사이버 공격과 피해의 당사국 정부들이 나서 양자 합의를 보는 효과도 기대되고 있다. 2015년 9월 미중 사이버 안보 협약의 사례는 적어도 민간의 시설과 지적재산은 공격하지 않겠다는 양자간 합의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최근 한중이나 남북 간에도 사이버 안보 회담이 필요하다는 문제제기가 나오는 것은 바로 이러한 기대 때문이다.
사이버 공격이 양적·질적으로 진화하는 데 비해 국제규범의 형성은 매우 더디다. 2015년 3차 회의에서 합의를 도출하면서 글로벌 규범형성의 기대를 모았던 유엔 정부자문가그룹(GGE)의 활동은 2017년 5차 회의에서는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 여러 난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유럽의 서방 진영과 러시아와 중국의 비서방 진영이 이견을 표출했기 때문이다. 이외에 서방 진영과 비서방 진영이 각기 주도하고 있는 정부간협의체나 지역협력체에서의 사이버 안보 국제규범에 대한 논의도 상대 진영을 설득할 정도의 보편성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일명 부다페스트협약으로 알려진 유럽사이버범죄협약에 중국이나 한국과 같은 동아시아 국가들은 국내 법제와의 마찰 때문에 가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이버 안보의 속성을 반영하면서도 동아태의 지정학적 특성을 고려한 역내협력과 국제규범 형성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제는 ARF와 아세안 정상회담의 사례처럼 선언적 차원에서만 협력과 규범을 논하는 수준은 넘어서야 한다. 동아태 지역에서는 유럽과 같은 형태의 협력과 규범의 틀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음도 알아야 한다. 유럽과는 달리 전통안보 규범형성의 경험이 없다는 사실은 동아태 국가들이 안고 있는 가장 큰 약점이다. 그렇다고 사이버 안보 분야에서 잉태된 혁신적 구상을 통해서 동아태 평화의 물꼬를 틀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릴 필요는 없다. 최근 중견국 외교의 리더십을 모색하고 있는 한국의 역할이 크게 기대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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