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진수 칼럼] `이번엔 다르겠지` 증후군

[ 예진수 기자 jinye@ ] | 2018-09-30 18:09
예진수 선임기자

[예진수 칼럼] `이번엔 다르겠지` 증후군

예진수 선임기자


사막에 사는 굶주린 코요테는 빠르게 달리는 새 로드러너를 잡으려다 늘 수모를 당하곤 한다. '와일 E. 코요테'는 미국 유명 애니메이션 루니툰에 등장하는 캐릭터다. 로드러너를 잡기 위해 천방지축으로 뛰다 어느 순간 절벽을 지나쳐 허공에 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바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밑으로 추락하게 된다. 최근 벤 버냉키 미국 전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미국의 경기 상황을 와일 E.코요테에 빗댔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버냉키 전 의장은 한 정책토론회에서 "경기부양책이 올해와 내년에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겠지만 2020년에 가서는 '와일 E. 코요테'가 절벽에서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도 1∼2년 뒤 경기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하는 상황에서 경기를 부양할 수단이 마땅치 않은 와일 E. 코요테가 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사람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10년을 주기로 한국경제에 위기가 휘몰아쳤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 10년 만에 이번에는 실물 경제위기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통상 문제와 가계 부채 뇌관 등이 도사리고 있는 향후 2년이 한국경제에 '결정적 시기'가 될 공산이 크다.

전후방 연관 효과가 크며 막강한 경쟁력을 자랑하던 자동차 부품업체의 잇딴 도산이 대표적인 징후다. 한국의 대중국 수출 가운데 소비재 비중은 5.6%에 불과하고 부품·소재 등 중간재 수출 비중이 75%에 달한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으로 중국 주요 산업 매출이 격감하면, 한국 경제 유일한 버팀목인 수출도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정책은 타이밍이다. 지난해와 올해 숨 가쁜 정치 급류 속에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구조 개혁이 뒷전으로 밀렸다. 노동 시장 유연성 제고와 한계 기업 정리 등 구조 개편을 실기한 것이 뼈아프다. 한국 근로자의 시간당 노동생산도 2016년 기준 33.3달러로 미국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취임 일성으로 "먼저 우리 산업을 투입 위주의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해 생산성을 높여 나가야 한다"고 말했을 정도다. '전가의 보도'인 추경 등 재정 투입이 없으면 성장률이 급락하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생산·소비·투자가 동반 침체하는 데도 경제주체 모두가 "당장은 힘들지만, 이번에도 또 다른 해법이 있겠지"라는 막연한 착각만 하고 있는 형국이다.


욕 먹을 각오로 개혁을 주도하는 사람은 없고 눈치만 보는 '팔로어'들만 있다. 영국의 작가 버나드 쇼가 말한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는 전혀 힘을 안 쓰고 있다고 불평하면서 세월을 보내는 자기 중심적 소인'이 넘쳐난다.

외환위기 때보다 더 나쁜 40대 취업자 감소 폭을 보인 8월 고용동향은 '재정 투입 땜질 처방'의 한계를 보여준다. 최악의 청년 실업률은 그 만큼 신성장동력 산업 투자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며칠 전 만난 중견기업 대표는 "반기업 정서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기업의 배를 가르려 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기업에서 발을 뺄까를 고민하는 기업인이 의외로 많다"고 말했다.

'미국 금리 인상'이라는 태풍의 눈도 다가왔다. 미국 중앙은행이 26일(현지시각)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 올렸다. 문제는 한국 기준금리가 현재 연 1.5%로 미국과의 격차가 0.75%포인트로 확대됐다는 점이다. 미국이 올해 한 차례 더 금리를 올리면 격차는 1.0% 포인트로 벌어진다. 외국 자본이 빠른 속도로 빠져 금융·실물 부문에 충격이 올 수 있다. 적절한 금리 인상 시기를 놓치면 호미로 막을 수 있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게 된다.

10년마다 경제를 위협하는 위기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정신을 똑똑이 차려야 한다. 분명한 점은 위기를 미리 대비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는 한 순간에 승패가 결정돼 버린다는 점이다. 오갈 데 없는 실업자들이 거리를 배회하는 모습은 이제 상상하기조차 싫다.

예진수 선임기자 jin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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