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디지털경제 가로막는 `붉은 깃발`

[ 김승룡 기자 srkim@ ] | 2018-10-10 18:11
김승룡 금융정책부 금융팀장

[DT현장] 디지털경제 가로막는 `붉은 깃발`

김승룡 금융정책부 금융팀장


최근 국내 주요 시중은행의 디지털금융 전략을 총괄하는 책임자를 잇따라 만났다. 이들은 한결 같이 미래 금융은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블록체인 등 4차 산업 근간 기술이 접목돼 지극히 개인화된 맞춤형 자산 관리 서비스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데이터', 기술과 금융을 모두 이해하는 '융합형 인재'라는데도 모두 동의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곧 '데이터 경제'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월드와이드웹(WWW)과 모바일 혁명으로 지난 20여년 간 세계 산업 지도는 대전환을 이뤘다. 이 첨단 전자산업 시대의 쌀이 '반도체'였다면, 앞으로 다가올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데이터가 곧 쌀이다. 어느 나라가, 어느 기업이 데이터를 더 많이 확보하느냐가 앞으로 세계 경제 패권을 가를 것이란 얘기다.

IDC 등 시장조사업체에 따르면 세계 데이터 시장 규모는 지난 2017년 1508억 달러(약 169조원)에서 오는 2020년 2100억 달러(약 236조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세계 데이터 사용량은 2017년 약 18조 기가바이트(GB)에서 2025년 180조 GB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이미 세계 산업계에는 업종 불문하고 데이터 확보 경쟁이 치열하다. 구글이 자율주행차 도로주행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이미 수 년 전부터 실차 시험에 들어갔다. 구글은 또 폭증하는 방대한 검색 데이터 저장을 위해 매해 서버를 증설해 세계 곳곳에 데이터센터를 만들고 있다. 구글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해저 케이블을 보유한 기업이기도 하다. 구글 임직원조차도 자신들의 서버가 어디에 있는지 다 알지 못할 지경이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아마존은 세계 각지의 소비자의 구매 정보를 비롯해 이용가치가 높은 개인 비식별 정보를 차근차근 데이터베이스(DB)화해 이미 세계 최대 소비자 데이터 보유 기업 반열에 올랐다. 아마존의 알렉사가 최고 인공지능 기술로 인정받고 있는 것은 모두 다 방대한 소비자 데이터 덕분이다. 데이터가 많을수록 인공지능은 정교하고, 빠르게 학습해 최고 성능을 발휘하게 된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빅데이터 활용 능력 수준은 전체 조사국 63개국 중 56위에 그쳤다. 국내 기업의 빅데이터 이용률은 7.5%에 불과했다. 데이터 경제 측면에서 우리나라는 후진국을 면치 못한다.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이용법, 신용정보법 등 각종 법 규제에 막혀 데이터가 유통되지 못하고 있다. 이미 2016년 민감한 개인정보를 가명 또는 익명으로 처리해 사용자 동의 없이도 사용할 수 있는 정부 가이드라인이 나오긴 했지만, 개인정보보호법에 막혀 유명무실했다.

민감한 개인 금융정보는 더욱 유통이 어렵다. 시중 은행 디지털금융 최고책임자들은 하나같이 개인 맞춤형 금융서비스를 위해 개인 금융 데이터 확보가 시급하지만, 정부와 국회만 쳐다보면서 발을 동동 구르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시민단체와 야당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이들은 "안전장치 없는 데이터 경제 활성화는 외양간 고치자고 소를 버리자는 것과 같다"며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안전장치는 얼마든지 있다. 무턱대고 반대만 할 게 아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면 되겠는가. 개인 식별이 불가능한 가명정보, 익명정보를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보안이 문제라면 '블록체인' 기술 도입으로 민감한 개인 금융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 개인정보를 블록체인이라는 분산 서버에 저장하면 해킹이나 오용을 원천 차단할 수 있다. 물론 국회가 미래를 내다보는 깊은 안목으로 관련 법 개정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안전을 담보하지 못한다면 데이터 경제는 사상누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지난달말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지분 한도를 기존 4%에서 34%로 늘리는 특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1982년 은산분리 규제가 도입된 후 36년 만이다. 지난 8월 초 문재인 대통령은 낡은 규제를 개혁하자며 '붉은 깃발법'을 언급해 화제를 낳았다. 붉은 깃발법은 1865년 영국에서 시행된 법으로, 자동차는 도심에서 시속 3㎞ 이상으로 속도를 낼 수 없고, 전방 50m 앞에 붉은 깃발을 든 세 사람이 차가 오는 것을 알리도록 의무화하는 법을 말한다. 이 법 때문에 영국의 자동차 산업이 뒤처지게 됐다는 지적을 받는다. 미래 금융은 물론 미래 대한민국 경제에 데이터는 생존의 문제다. 곳곳에 박혀 빠지지 않는 붉은 깃발을 속히 거둬야 할 때다.
김승룡 금융정책부 금융팀장 srkim@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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