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인문학] 수능 지문 誤用을 고발한다

[ ] | 2018-10-11 18:02
반성택 서경대 철학과 교수

[디지털인문학] 수능 지문 誤用을 고발한다

반성택 서경대 철학과 교수


우리가 세계에 흥미로운 뉴스를 제공하는 날이 또다시 다가온다. 매년 수능일에는 한반도 상공의 비행기 운항이 조정되고, 서울대라는 이름이 세계에 휘날린다. 성적이 좋은 순으로 3천여명을 쓸어 담는 그 대학이 세계 대학평가에서 100위권 안에 못 들더라도 SNU는 그날의 세계 뉴스를 장식한다. 한국에서는 이 하루에 일생의 직업, 이와 연계된 돈, 나아가 삶의 동반자가 대략 정해진다고 외국 언론들은 다소 과장하여 전하는 것이다.

해외 토픽 정도의 이러한 뉴스를 낳는 근본 요인은 물론 대학 서열구조이다. 이 오랜 서열구조에서 살아온 선배세대는 상위권 대학 입학이 아주 쓸모있는 밑천임을 체득하여 왔다. 학벌구조로의 성공적 진입은 이룰 수만 있다면 가장 효율적인 투자라고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회고한다.

서열구조는 여전히 견고한 가운데 11월 15일은 수험생에게도 출제자에게도 도래하고 있다. 하루의 시험으로 직업도 돈도 대개 결정한다는 것은 수험생에게 큰 부담이지만 출제자에게도 중대한 과제에 해당한다. 50만명이 넘는 수험생들을 순위로 세우되 이유있게 세워야 하는 것이다. 이는 불가능한 일처럼 보이나 그들은 4주간 합숙을 하며 최선을 다한다.

그 비법은 평이한 문제부터 이른바 '킬러 문항'까지를 주요 과목에 넣는 것이다. 몇해전까지는 수학과 영어가 일류대 입학 여부를 결정하여 왔다. 그러면서 2014년쯤에 이르러서는 변별력을 위하여 출제되는 영어의 고난이도 문항들이 임계치를 넘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대졸 영어 원어민도 풀지 못하는 영어 문제가 출제된다는 것이다. 이에 영어 절대평가가 시행되었다. 영어보다 더 중요한 요소인 수학에 대하여도 미적분을 중심으로 너무 어렵다는 비판이 쏟아져 왔지만 수학은 꿋꿋하다. 이는 과학입국을 기치로 근대화를 이룬 이 사회가 수능 수학이 학벌사회 형성과 지속에 미치는 절대적, 파행적 영향력에는 애써 눈을 감고 수학적 사고의 가치는 수용한 결과이다. 수학은 서양 근대에서 과학과 함께 하여 왔지만 수능 수학에서는 중고교 시절 내내 성실하게 축적하는 역량이 결정적이다. 서양 근대가 보여주는 과학의 도전, 혁신 자세보다는 성실한, 꼼꼼한 역량이 수학 성적에 주로 반영되는 것이다.


수학 포기는 일류대 포기를 뜻한다. 이를 학원가는 '수포면 대포다'라는 현수막에 담아낸다. 이렇듯 수학의 지배력은 여전한 가운데 영어 절대평가가 시행되며 수험생의 7% 내외가 1등급을 받게 되었다. 영어가 일류대 결정요소에서 밀려난 빈자리를 이제 국어가 이어받은 형국이다. 지난 몇 년간 국어 문제를 보면 숨이 막힌다. 1등급을 받으려면 다른 문제를 다 풀고 킬러 문항에서 승부를 내야 한다. 그런데 고난이도 지문들은 철학, 경제, 과학 등에 대한 일반적 소개가 아니라 전문적 내용을 담고 있다. 악명 높은 지문들은 주로 철학의 몫이다. 칸트의 판단력비판,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 콰인과 포퍼의 분석철학이 킬러 지문을 장식해오고 있다. 학원가에서는 올해 철학 지문은 어느 분야에서 나올지를 예견하며 특강을 개최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프랑스 철학 시험의 한국판인 꼴이다.

이 지문들을 보면 특징이 있다. 제시된 지문은 전문가나 읽을 법한 글인데 질문은 평이하다. 난해한 지문을 놓고 이해력을 테스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이 수학의 고난이도 몇 문제와 더불어 명문대 입학을 결정한다. 지난 9월 모의평가를 전하는 뉴스들은 국어에서 오답률이 가장 높은 5문항 중 4문항이 독서 문제에서 나왔다고 전한다.

인문학 위기와 함께 대학의 국문과는 현재 스러져 가고 있지만 대입 국어는 융성하는 인상이다. EBS 교재는 전문적 지문들을 다루며 학생들을 고난도 문항에 대처하도록 돕고 있다. 병 주고 약 주는 식이다. 영어 절대평가제가 비상식적 난이도의 국어 지문으로 돌출하는 형국이다.

한 명의 철학교수로서 변별력을 이유로 자행되는 이러한 지문 오용을 고발하고 싶다. 철학의 주요 문헌을 고교를 졸업하고 학문과 직능교육에 진입하는 이들에게 지문으로 제시하여 중대한 시험에서의 생존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부당한 출제라 말하고 싶다. 그것이 변별력을 위한 것이라도 말이다. 전공자도 어려워하는 독서 지문은 더 이상 국어 시험이 아니다. 국어 영역은 자신들이 일류대 진학 여부를 결정한다는 사명감을 내려놓기 바란다. 보다 많은 수험생들에게 높은 등급이 부여됨을 출제자들이 변별력을 이유로 피하기보다는 오히려 국어 교육의 성공으로 인식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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