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렬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포럼] 승자의 저주로 얼룩진 `인스턴트` 사회](http://contents.dt.co.kr/images/201810/2018101602102369640002[1].jpg?var=1924 "[포럼] 승자의 저주로 얼룩진 `인스턴트` 사회")
한국시장에서 개발된 커피믹스 제품은 최근 동남아시장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으나 한국에서는 예전만큼 판매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커피, 크림, 설탕이 한꺼번에 섞여있는 커피믹스는 개발경제시대의 한국을 대표하는 정말 경이로운 제품이었다. 식사를 빠르게 마치고 커피믹스를 탄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다시 일터로 향하는 한국인에게는 일의 활력소이기도했다. 그러나 선진국 시장에서는 커피믹스는 찾아보기 힘들다. 선진국 소비자는 인스턴트 커피믹스보다는 다양한커피, 크림, 설탕을 기호와 건강에 맞게 선택하는 각자의 커피를 즐기고 있다.
커피믹스는 그동안 정신없이 급하게 달려온 우리사회를 대변하는 산물인 것 같다. 우리경제는 목표를 향해 과정을 통합하면서 빠른시간내에 많은 것을 이뤄내는 압축성장의 기적을 창출했다. 6·25 전쟁의 폐허속에서 세계 모든 국가가 부러워하는 한강의 기적을 이뤄내며 우리경제는 가전, 자동차, 조선, 반도체산업 등을 일으켜 해당 산업에서 글로벌리더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4차산업혁명의 파고가 우리경제를 뒤덮으며 이제 우리는 글로벌 경쟁력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 그 결과 IMF가 예고했듯이 올해 우리 경제성장률이 2.8%, 내년도는 2.6%로 하향조정됐다.
우리경제의 주역인 기업도 속도와 효율을 달성하기위해 쉬지않고 달려왔다. 우리시장의 불완전성으로 초래된 성장속도와 효율의 한계를 극복하기위해 삼성, 현대, LG, SK 등은 기업집단을 형성했고, 이런 내부화를 통한 기업성장은 그 어느국가도 달성하지 못한 빠른 경제성장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속도와 효율을 바탕으로한 빠른 성장은 중국과같은 거대시장을 가지고 있는 신흥시장기업으로부터 맹렬한 추격을 받고있다. 반도체산업을 제외한 거의 모든 산업에서 우리기업은 경쟁력을 빼앗기고있다.
1960년대 산업화시대가 열리면서 획일화된 우리 교육제도를 통해 경제발전과 기업성장에 필요한 산업인력을 빠른속도로 양성하여 지속성장에 걸림돌이 될수있는 관리자공급의 돌파구를 마련했다. 밤낮으로, 그리고 새벽까지 학습과경쟁을 통해 20세기 산업사회를 주도할 능력있는 소위 말하는 산업전사를 끊임없이배출했다. 지금도 새벽조찬세미나를 시작으로 각종 포럼, 더나아가 다양한 야간교육과정이 개설되고 있고, 각종 경제및경영자료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기업은 21세기 거대한 변화의물결속에서 서서히 표류하기 시작하고 있다.
20세기 산업사회를 겪으면서 빠른 속도로 최선을 다하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우리만의 비법을 학습했고 이를통해 우리는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뤄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의 도래와 함께 세상이 무서운 속도로 변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여전히 압축성장의 인스턴트 묘약을 즐기는 승자의 저주에 빠져 있다. 우리경제는 혁신을 창출하기위한노력보다는 정부주도의 경제발전을 고집하고 있고, 우리 기업도 전문성을 바탕으로한 지속성장보다는 여전히 규모를 통한 외연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우리 교육역시 주입식교육에 매몰되어 새로운 환경을 주도할 창의적인 교육을 수행하고 있지 못하다.
현재 우리가 겪는 성장통은 지난 성과에 대한 과신과 과욕으로부터 비롯된 승자의 저주이고, 그 밑바탕에는 압축성장의 환상을 버리지 못한 인스턴트 처방이 자리잡고 있다. 경제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함에 있어서 우리는 오랜시간 숙고하고 당장은 효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고뇌 어린 사회적 논의가 필요함에도 인스턴트 처방만 내놓고 있다. 우리 기업역시 의사결정권을 가진 관리자가 되면 기업의 미래에 대한 깊이있는 생각과 스스로의 학습보다는 한방에 해결할 수있는 인스턴트 처방전만 요구하고 있다. 우리 대학역시 대학의 기본사명인 교육과 연구향상을 추구하기위한 근본적인 변화보다는 생존을 위한 단기적인 인스턴트 대책만 수립하고있다.
우리나라는 2020년까지 세계 열강들의 갈등과 경쟁 속에서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정부, 기업, 사회모두 지난 시대의 인스턴트 망령에서 하루 속히 벗어나 변혁하는 환경을 겸손한 마음으로 품고 이에 대처할 수 있는 장기적인 방안을 스스로 찾아내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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