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일자리 도둑 `고용세습` 덮으려 말라

[시론] 일자리 도둑 `고용세습` 덮으려 말라

[ ] | 2018-10-28 18:16
류동길 숭실대 명예교수·경제학

[시론] 일자리 도둑 `고용세습` 덮으려 말라

류동길 숭실대 명예교수·경제학

실업률은 상승하고 실업자는 100만 명을 넘었다. 일자리를 찾는 청년들은 거리를 헤매며 상실과 절망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이런 판에 공기업·공공기관의 채용시장이 비리로 얼룩지고 있는 게 드러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와 인천공항공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공공기관 노조와 임직원이 힘을 합쳐 가족과 친·인척을 비교적 입사가 쉬운 기간제 비정규직으로 취업시켰다가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등 편법·불법을 자행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탈법·편법적 '고용세습'은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청년들에게 경쟁할 기회를 빼앗는 도둑질이다. 이런 사태는 개탄스럽지만 분노하기에 앞서 왜 이런 비리가 발생했는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런 사태는 정부가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무리하게 서둔 것과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에서 비롯됐다. 공공기관의 비효율적 방만 경영과 고임금 구조를 그대로 두고 비정규직만 없애라는 것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공공기관은 '신의 직장'이라고 한다. 일단 들어가면 철밥통인 데다 임금이 높아서다. 청년들이 취업하고자 하는 선망의 대상이 공공기관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문제는 비정규직을 없애는 것으로 해결될 게 아니다.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비정규직이 부당한 차별을 받는 건 옳지 않다. 하지만 일시적 또는 계절적 일감이 늘어 계약직을 쓰거나 하도급 근로자를 고용하고 외주(外注)에 의존하는 경영을 하는 건 합리적 선택이다. 더욱이 고용의 유연성이 없는데다 정규직의 고임금 부담을 덜고자 저임금 비정규직을 고용할 수밖에 없는 사정도 있다. 이런 점을 종합적으로 살피지 않고 비정규직 제로(0)를 서둘렀으니 그 틈을 타고 이런 비리가 터지는 것이다.

더욱이 정규직 중심의 일자리정책은 4차 산업혁명시대에 역행한다. 앞으로는 기업과 근로자는 지속적 관계가 아닌 일련의 거래관계로 바뀌고 기업은 원하는 자를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식으로 고용하는 이른 바 긱(gig)경제시대가 열린다. 기술의 일자리 파괴효과와 자동화가 진전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과 로봇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거나 인간과 경쟁하는 세상이 다가왔는데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따지는 낡은 틀에 사로잡혀 있을 여유는 없는 것이다.


고용세습에 청년들의 일자리가 날아간 것은 참담하고 분통이 터지는 일인데 공공기관은 또 다시 계약직과 알바를 뽑는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정부는 24일 아르바이트 성격의 단기 일자리 5만9000개를 연말까지 만들겠다는 일자리 특단대책을 발표했다. 공기업·공공기관을 총동원하고 정부가 직접 세금을 투입해서 단기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은 일자리 숫자를 불려 고용통계를 분식하기 위한 미봉책이지 제대로 된 일자리 만들기가 아니다.

사정이 이러한데 민노총은 '고용 세습' 논란은 가짜 뉴스라고 우기는가 하면 "공공기관의 비정규직을 없애라"며 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노조가 고용세습을 주도하고 청년들에게 돌아가야 할 일자리를 가로챘는지는 조사해 보면 된다. 그런데 사태의 당사자가 가짜뉴스라고 우길 일인가. 야당의 국정조사 요구에 정부·여당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오히려 정부·여당이 앞장서서 국정조사를 하든 또 어떤 방법으로든 고용세습의 실상을 밝히는 게 옳다.

그래야 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천명한 바 있듯이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한"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있다. 비리척결과 엄단, 재발방지 등의 말로 얼버무리고 넘어갈 일은 아니다.

일자리가 급하게 서둔다고 만들어지는 것인가. 기업에 힘 실어주기와 규제 혁파,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 등을 통한 정공법을 써야 한다. 이를 외면한 일자리 타령은 정도(正道)가 아닌 갓길이고 꼼수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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