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인문학] 책이 사는 곳, 문자가 숨은 곳

[디지털인문학] 책이 사는 곳, 문자가 숨은 곳

[ ] | 2018-11-08 18:02
조만수 충북대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교수

[디지털인문학] 책이 사는 곳, 문자가 숨은 곳

조만수 충북대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교수

연구실 밖 교정, 붉게 물든 나뭇잎들 사이로 가을빛이 찬란하다. 이러다 날을 놓치면 가을을 한번에 잃고 말것을 알지만, 매년 밀린 일들 때문에 쉽게 연구실 밖으로 가을을 맞으러 나가지 못했다. 가을산 낙엽 냄새에 심호흡하기는커녕, 연구실 책 곰팡이 냄새에 밭은기침만 한다. 연구실은 책감옥, 글감옥이다. 이번 가을도 마찬가지이다. 몇 편의 원고가 빚쟁이처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정작 더 마음이 쓰이는 것은 밀린 번역이다. 출판사에 약속한 기일이 너무도 오래 지나 이젠 출판사에서 전화도 오지 않는데, 전화로 독촉을 받을 때 보다 이 체념조의 압박이 훨씬 더 무겁게 느껴진다. 하지만 올해는 책감옥을 벗어날 구실을 마침내 찾아내었다. 해외에서 초청한 학자가 한국의 사찰을 보고 싶다는 것이다. 잠시 속세의 모든 일들과 작별하고, 속리산(俗離山) 가을을 보러나선다. 산 이름이 무척 마음에 와닿는다.


외국인을 안내하다보면-결국 통역이나 번역을 하다보면-평소에는 자문해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던 것들의 의미를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 법주사로 안내하면서 외국인 학자가 이 사찰의 이름을 묻는다. 너무도 익숙해서 그 뜻을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이름, 법주사(法住寺), '경전이 거하는 절'이다. 경전이란 부처님의 말씀을 받아 적은 것이다. 흔히 책을 의미하는 서(書)라는 글자가 성인의 '말씀'(曰)을 '붓'(聿)으로 쓴 것을 일컫는 것이니 경전은 대문자로서의 '책' 그 자체인 셈이다. 결국 연구실이라는 책감옥을 빠져나와, 도리어 책이 거하는 곳으로 와버린 셈이다. 553년 신라 진흥왕 14년에, 천축국에 가서 경전을 얻고 귀국한 승려 의신이 이 경전을 안치하기 위해 법주사를 창건하였다한다. 서유기에 나오는 당나라 승려 삼장법사나 『왕오천축국전』을 쓴 신라 승려 혜초보다 앞서서 천축국으로 여행하고 경전을 가져와 이곳에 안치한 것이다. 천축국에서 받아온 경전은 산스크리트어로 적혀 있었을 것이고, 이를 음차한 중국어본을 참고하여 다시 한문으로 의미화하는 번역 작업을 거쳤을 것이다. 법주사는 그러므로 방대한 산스크리트어 경전을 번역하고, 해석하고 분석하는 학자들의 집단이 머무는 곳, 가히 오늘날의 대학에 비유할만한 곳이었다. 오늘날의 학자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진실'을 추구해야 할 방향과 원칙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은 '경'의 형식으로 이미 존재하며, 학문은 이를 해석하고 깨닫는 것 뿐만 아니라, 그 깨달음을 자신의 몸으로 만드는 과정까지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먼저 깨달은 자의 가르침을 내 몸으로 만드는 과정이 해탈을 위한 수행의 과정이다. 그러므로 면벽한 동안거의 수행은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말씀이 육신이 되는 과정이며, 책의 감옥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책이 되는 과정이다. 속리산에 들어선다는 것은 속세의 반의어로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진리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번역 작업을 감옥 속 고역으로 느꼈다면, 그것은 진리 안에서의 작업이 아니라 '속세의 일', 몇푼 안되는 돈을 벌기위한 알바정도로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법주사를 거쳐 산을 오르는 길을 정비하여 속리산국립공원은 '세조길'이라는 등산로를 조성해 놓았다. 관광을 스토리텔링과 연결짓는 방식이 유행하는 요즘, 한양으로부터 아주 먼 산사에 왕이 친히 방문한 일화는 분명 활용도가 높은 스토리일 것이다. 왕의 가마가 걸리지 않게 스스로 가지를 들어올려 벼슬을 하사받았다는 정이품소나무, 세조의 피부병을 치유한 목욕소 등등. 그리고 이 이야기의 끝은 속리산에서 가장 유명한 봉우리인 '문장대'에 이른다. 문장대(文藏臺)란 '글자'를 '숨겨놓은' 넓은 곳이라는 뜻이다. '책이 거하는 곳'으로부터 산을 오르면 그 끝에 '글자를 숨겨놓은 곳'에 도달하는 것이다. 복천사에서의 법석에 참석한 후, 목욕소에서 목욕재계한 세조는 꿈을 꾸는데 꿈 속에서 한 귀인이 세조에게 산에 오르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 하여 운장대(雲藏臺)에 올라 삼강오륜을 담은 책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 봉우리의 이름이 운장대에서 문장대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불교 사찰을 방문한 왕이 산정에서 유교 경전을 얻는 등 다소 이야기가 뒤죽박죽인 감이 없지 않지만 문장대라는 이름은 흥미롭다. 단지 책을 얻은 것이라면 '서장대'라 하면 될 것을 왜 '문장대'라 하였을까? 문(文)은 '글'이 아니라 글을 이루는 무늬 즉 글자 그 자체를 가리킨다. 세조가 산에 올라 무엇을 얻었다면 그것은 책이나 글귀가 아니라 그것을 이루는 가장 기초적인 단위인 '글자'를 얻은 것이다. 세조는 수양대군 시절 아버지 세종의 명으로, 훈민정음이 반포된 이듬해에 석가의 일대기인 <석보상절>을 한글로 편찬한 바 있다. 세조가 속리산을 찾은 것은 신미대사의 초청에 응한 것이며, 신미대사는 집현전 학사인 김수온의 형으로 훈민정음 창제에 깊이 관여했다고 전해진다. 불교 경전 번역을 위해 산스크리트어는 물론, 티벳어, 몽골어, 한문 등 여러 언어에 능통했던 신미대사의 언어학적 지식은 훈민정음 창제에 유용했을 것이다. 이처럼 '문장대'의 '문'은 한글의 자모와 관련된 것이라 추측하는 것 또한 억지스러운 것은 아닐 것이다. 속세로부터 멀리 떨어진 깊은 산중에서 새로운 문자의 창제를 위한 숨은 연구가 이루어진 곳이 바로 문장대인 것이다.
글감옥을 피해 온 가을 산행은 책이 사는 곳을 지나 문자가 숨어있는 곳을 향했다. 그리고 이제 속세로 돌아와, 다시 연구실로 들어선다. 그러나 이제 바로 이곳이 속과 이별한 곳이기를, 더 이상 책과 글의 감옥이 아니라 책이 거하는 곳, 숨겨진 말들이 태동하는 곳이기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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