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석의 건강수명 연장하기] 죽음보다 무서운 치매

입력 2018-11-29 18:07

이현석 대한흉부외과학회 상임이사

[이현석의 건강수명 연장하기] 죽음보다 무서운 치매 — 이현석 대한흉부외과학회 상임이사

1995년 일본 존엄사 협회에서 회원 3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한 사람의 85%가 존엄사 선택 항목에 노인성 치매가 있기를 원했고 특히 57%는 본인이 치매에 걸렸을 경우 치매 정도에 관계없이 연명치료를 거부하기를 원했다.

좀 더 살펴보면 치매가 존엄사 대상이기를 원하거나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았던 응답자의 대부분이 치매환자를 돌봤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었으며 자기가 겪었던 고통을 주위 사람은 겪지 않기를 원하고 있었다.
또 알츠하이머에 걸린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1996년 은퇴한 후 2012년 심장마비로 사망한 당시 51세의 일본 유명 탤런트인 야마구치 미에는 '여자 혼자서 부모를 돌보다'란 자서전을 쓴 적이 있다. 이 책을 읽고 보내온 독자 편지의 80%가 자기 딸에게 미에가 겪었던 시련을 주지 않기 위해 나이가 들면 시설로 가기로 결심했다고 적혀 있었다.

치매는 뇌세포의 손상으로 기억력과 인지능력, 충동조절 장애 등이 동반되는 질환인데 최근 기억일수록 손상되는 정도가 심한 것이 특징이다. 이는 최근 기억과 오래 된 장기기억을 저장하는 뇌의 부위가 다른데 치매환자는 주로 최근 기억을 저장하는 부위의 뇌세포가 손상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구인들과 유태인들은 비교적 기억력과 인지능력 손상에 국한되는데 반해 전쟁과 가난 그리고 수직적 관계로 인한 한의 정서를 가지고 있는 한국과 일본의 경우 우울증, 불안증, 피해망상 그리고 흔히 '홧병'이라고 하는 정서 장애가 동반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욱 돌보기 힘들어진다. 그래서 우리의 경우 정서장애가 없는 단순 치매 환자를 '예쁜 치매'라고 부르게 된다.

외국의 경우 영화 벤허로 유명한 찰톤 헤스톤이 초기 치매 진단을 받고 곧바로 '내가 치매 진단을 받았다. 만일 내가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무례하게 대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그것은 단지 치매라는 병 때문이라는 점을 당신이 이해하고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언론에 공개적으로 보내고 비디오로도 촬영하여 공개한 것이 예쁜 치매의 사례가 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치매 환자들은 화를 잘 내고 폭력적이 되며 현실과 맞지 않는 망상이 심해지면서 쓰레기를 모은다거나 이물질을 삼키고 배변을 아무데나 하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과거에 일들이 잘 기억나지 않기 때문에 기억하는 내용들을 모아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도 하며 돈을 도난 당했다던가 누가 자기를 해친다던가 하는 안 좋은 내용의 망상을 갖는 경우도 있다.

이런 환자를 돌볼 때는 환자의 감정을 이해하고 기다려 주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환자가 스스로를 비참하게 느낄 때에도 그 감정을 솔직하게 얘기하도록 유도하고 슬픔과 같은 감정이 있으면 그 감정을 존중하면서 그 원인이 혹시 어린 시절의 상처로 인한 것은 아닌지 살펴보는 것이 좋다.

다만 부적절한 행동을 할 때는 환자가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 수 있게 분명히 지적하면서 이를 제재할 필요는 있다. 예를 들어 바닥에 음식을 버릴 때는 '바닥에 음식을 버리지 마세요'가 아니라 '바닥은 음식 버리는 곳이 아니에요'하는 식으로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제한을 가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강한 경쟁심을 드러내 경쟁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미워하는 경향이 있는데 환자에 따라서는 게임이나 놀이 같은 것으로 관심을 돌리는 것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환자가 잘하는 일을 하도록 하면서 칭찬을 하여 환자 스스로가 자긍심을 갖도록 유도하는 것이 좋다. 환자는 누군가가 자기 마음 속 동기를 이해하고 인정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에 자신이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면 부정적인 감정이 약해지게 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치매환자에게도 적용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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