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부셔졌어도 산하는 여전하고 성 안에 봄이 오니 초목이 무성하다." 당(唐)대 시성(詩聖)으로 불린 두보(杜甫 712~770)의 '춘망'(春望)이라는 시의 첫 귀절이다. 고등학교 한문 교과서에 실릴 만큼 유명한 작품으로 안녹산의 난으로 수도 장안이 함락되자 억류돼 있으면서 어지러운 나라와 흩어진 가족을 걱정하며 지은 시다. 우국(憂國)의 심정이 잘 나타나서인지 자주 인용된다. 특히 조선 성종 때에는 두보 시의 표준화된 번역과 주석을 마련하라는 어명에 따라 유윤겸 등이 '분류두공부시언해'(分類杜工部詩諺解)라는 언문(한글) 번역본을 편찬하기도 했다. '두시언해'는 조선 초기 지식인들에게 두보 시를 공부하는데 필요한 번역과 주석의 표준을 제시한 책이었다. '춘망'과 같은 두보의 시가 우국충정과 가족애를 잘 표현할 뿐 아니라 시작(詩作)에 있어서도 전범이 될 만큼 작품성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과거 시험의 시제로 빈번하게 채택된 것은 자연스러웠다.('한국고전문학작품론' 민족문학사연구소 편, 휴머니스트 간)
나라가 어지럽지 않았던 적이 별로 없지만, 작금의 경제 안보 국민정서적 상황은 혼돈(混沌)이라 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다. 먹고 살기 힘들다는 아우성이 여기저기서 터지는데, 그 원인이 전쟁이나 내란, 환경적 재앙 때문이 아니고 '인재'(人災)라는 점에서 '춘망'의 배경과 좀 다를 뿐이다. 지난 2년여 동안 미국을 비롯한 세계경제는 비교적 호황을 구가했지만 우리만 유독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있다. 북핵과 관련한 안보상황은 미궁 그 자체처럼 보인다. 좌우 이념 갈등은 치유하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시각도 있다. 위정자들의 오도된 정책 탓이다. 세상이 하수상해도 국토산하는 유구하다. 그러나 거기 뿌리박고 사는 백성들은 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규화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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