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약제도가 수시로 바뀌고 있지만 이를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사람들이 한 순간의 실수로 부적격자가 되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오는 11일부터는 올해 다섯번째 청약제도 개편을 앞두고 있어 가뜩이나 까다로운 청약제가 '난수표'가 됐다는 지적이다.
◇ 규제지역 부적격자 평균 15%…비규제지역의 2배= 9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적발된 청약 부적격자의 수는 총 2만1804명에 달했다. 1순위 당첨자 23만1404명의 9.4% 수준이다. 이 중 3분의 2가량인 1만4498명(66.5%)는 청약 가점을 잘못 계산하는 등 단순 실수로 부적격 처리가 됐다. 또 재당첨 제한 규정을 어겼거나 이를 잘 인지하지 못해 부적격 판정을 받은 경우도 전체의 25.9%에 달했다.
특히 청약자격이 까다로운 규제지역 내 부적격자 비율은 이보다 훨씬 높다. 올해 신규 분양한 10대 건설사의 청약조정지역, 투기과열지구 등 규제지역 내 10여개 단지의 청약결과를 보면 부적격자 비율은 평균 15.7%에 달했다.
한화건설이 올해 분양한 노원 상계 꿈에그린은 92가구를 일반분양해 18명(19.6%)이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대우건설이 과천주공 1단지를 재건축하는 센트럴 푸르지오 써밋도 일반분양 당첨자의 20%가 부적격자로 나타났다.
업계 관계자는 "비규제지역은 청약제도가 단순해 부적격자 비율도 6∼7% 선으로 낮은 편인지만 제도가 복합한 규제지역은 2배가 넘는 15∼16%, 높은 곳은 20% 이상 부적격자 나온다"며 "갈수록 부적격자가 늘어난다"고 말했다.
◇ 연평균 3.5회 꼴로 제도 개선…최근 2년새 15번 개정= 청약 부적격자가 급증 까닭에는 잇따른 제도개선이 한 가지 원인으로 지목된다.
1978년 5월 제정된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은 이달 11일 시행하는 개정안을 포함해 40년 간 총 139번 개정됐다. 연평균 3.5회 꼴이다.
특히 최근들어 청약시장이 과열되면서 개정도 잦아지고 있다. 2015년 한 해 동안 10번이 개정됐고 지난해에도 7번, 올해도 5번 바뀌며 2년 사이 15번 개정됐다.
때문에 예비청약자들은 "아파트 청약제도가 대학입시 수준으로 어렵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청약 제도를 잘못 이해해 청약을 할 경우 그 책임은 모두 청약자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특히 가장 기본적인 청악가점제 입력부터 까다롭다. 본인 스스로 점수를 매겨 기입해야 하지만 여러차례 집을 사고 팔았거나 무주택 기간 산정 기산일(미혼 만 30세, 만 30세 이하 기존은 혼인신고일)부터 헷갈려 입력 오류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여기에 배우자나 가족 등 구성원의 과거 주택 보유 이력을 미처 몰랐다가 실수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 최근에는 청약조정지역, 투기과열지구 등 규제지역내 청약제도가 더욱 까다로워졌다. 또 신혼부부와 노부모 부양, 다자녀 등 특별공급 자격요건은 일반공급과 또 다르다.
◇ 부적격 분양권 합법적으로 샀어도 취소…2차 피해 속출 = 합법적인 방법으로 아파트 분양권을 샀어도 매도인이 부적격자 판정을 받으면 매수인의 권리도 함께 사라지면서 2차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지난 9월 국토부는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아파트 부정청약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부정청약 거래 257건에 대한 계약 취소를 추진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분양권이 취소된 소유자 44명이 법적 대응에 나서면서 갈등이 커지고 있다.
입주권 소유자의 변호를 맡은 문성준 변호사는 "일부는 두 차례 이상 명의가 바뀐 분양권을 샀기 때문에 해당 분양권의 원소유주가 불법 청약자인지를 알 길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아크로리버하임 입주 예정자의 경우 입주를 코앞에 두고 취소 통보를 받는 바람에 입주하지도 못하고 마냥 대기하고 있는 매우 난처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당첨자에게 웃돈을 얹어 주고 분양권을 샀다는 A씨는 "문제가 되는 분양권인 줄 전혀 몰랐다"며 "한창 입주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너무 황당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부적격 당첨자를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국세청 연말정산처럼 개인정보를 입력하면 과거 이력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아파트 청약 사이트인 금융결제원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재당첨 제한 여부 등 극히 제한적"이라며 "청약과 관련한 모든 책임을 전적으로 청약자한테만 물을 것이 아니라 복잡한 제도에 대한 정부의 시스템 측면의 보완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국토부도 내년 10월부터 청약업무를 한국감정원으로 이관하면서 관련 시스템을 재정비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연구용역을 맡은 주택산업연구원 김덕례 주택정책실장은 "청약 시스템상에서 최대한 부적격 여부가 걸러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며 "효율성, 경제적 비용 등 여러 가지 측면을 고려해 대안을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상현기자 ishsy@dt.co.kr
청약제도가 수시로 바뀌고 있지만 이를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사람들이 한 순간의 실수로 부적격자가 되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소비자들이 견본주택을 둘러보고 있는 모습<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