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입자 빛의속도 충돌 신호포착
100번 충돌데이터만 디지털 분석
2026년 데이터 10배 확충 총력
디지털 빅뱅
(5) 미래 IT의 산실 'CERN'
2013년 10월 8일 스위스와 프랑스 국경지대에 위치한 CERN(유럽입자물리연구소).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상위원회가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를 발표하자 수십명의 연구원들이 환호하며 샴페인을 터트렸다. 노벨상의 영예는 '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입자의 존재를 예견한 피터 힉스 영국 에든버러대 명예교수와 프랑수아 엥글레르 벨기에 브뤼셀자유대학 명예교수에게 돌아갔다.
힉스 교수와 엥글레르 교수가 힉스입자를 예견했다면 힉스입자의 존재를 실험적으로 증명한 곳은 CERN이다. CERN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복잡한 과학시설인 LHC(강입자가속기)를 두고 있다. 세계적으로 수천명의 과학자들이 100m 지하터널에 설치된 둘레 27㎞의 LHC를 통해 수십년간 검증되지 못한 채 이론 상으로만 있던 힉스입자를 2012년 실험적으로 입증했다.
◇거대과학 발전 떠받치는 IT= 과학자들은 LHC에서 양성자와 원자핵 같은 강입자를 빛의 속도 가까이 가속해 충돌시킨 후 빅뱅 직후 상태를 재연해 각종 신호를 포착한다. 이 순간 LHC 내부는 태양 중심부 온도보다 100만배 높은 극초온 상태가 돼 양성자와 중성자마저 녹아내려 제3의 상태로 변한다. 가속과 충돌이 물리의 영역이라면 신호 포착 이후 과정은 IT다.
에릭 그랜처 CERN DB서비스그룹장은 "LHC에서는 초당 10억번의 충돌 중 거르고 걸러 100번의 충돌 데이터만 디지털화해 분석하는데 올해만 용량이 50~70페타바이트에 달한다"면서 "HD 영화 1500만~2000만편을 합친 양과 버금가는 규모"라고 말했다.
CERN은 기관 내 주 데이터센터와 헝가리 데이터센터에 23만개의 프로세서와 1만5000대의 서버를 운영하고 있다. 또 테이프스토리지에 230페타바이트의 데이터를 영구 저장하고 있다. 최적의 데이터 처리를 위해 CERN은 디스크와 테이프 시스템을 자체 개발하고 매일 페타파이트급 속도로 데이터를 처리한다. 이와 함께 글로벌 그리드망을 구축해 데이터를 분산 저장하고 분석한다. 세계 170개 지역을 연결하는 그리드망은 80만개의 프로세서 코어와 400페타바이트의 디스크, 500페타바이트의 테이프로 이뤄졌다.
◇R&D 과정서 인터넷·클라우드 탄생= 과학자들이 집단지성을 동원해 거대과학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IT 기술 진화가 일어났다. 오늘날 인터넷의 대명사가 된 월드와이드웹(WWW)이 1989년 CERN에서 탄생했다. 과학자들은 서로의 연구성과와 아이디어를 효율적으로 주고받는 도구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WWW을 고안했다. 원래 월드와이드웹은 CERN의 팀 버너스-리와 로버트 카이유가 개발해 1991년 배포한 웹브라우저의 이름이었다. 최초의 웹사이트도 팀 버너스리가 1990년 CERN에서 만든 info.cern.ch다. 인터넷으로 연결된 가상의 플랫폼을 통해 IT자원과 SW, 서비스를 공유하는 클라우드의 발상지도 CERN이다. 데이터 저장·처리·분석 기술도 이곳에서 진화를 거듭해 왔다.
◇또 한번의 IT진화 기대=CERN은 2026년까지 LHC 내 입자충돌 횟수를 늘려 우주연구에 필요한 데이터를 지금보다 10배가량 더 많이 얻어낼 계획이다. 이 경우 저장·처리하는 데이터의 양이 50~100배 커지고 페타바이트의 1000배인 엑사바이트급 용량의 저장장치가 필요할 전망이다. 현재 예측되는 IT기술 발달 속도로는 CERN의 요구사항에 못 미친다. CERN은 과제를 풀기 위해 오픈랩 프로그램을 통해 HP, 델, 구글, 오라클 등 글로벌 IT기업들과 협력하고 있다. 현재 가동 중인 공동R&D 프로젝트만 20개가 넘는다. 이 과정에서 과거에 없던 하드웨어 아키텍처와 컴퓨팅 기술, 소프트웨어, 머신러닝 기술 등이 선보일 전망이다.
안경애기자 naturean@
한국과학창의재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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