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車·석유화학 올해보다 악화 예상
미·중 무역전쟁- 글로벌 경기침체도 악재
"통상협상 불확실성… 유연한 대응 필요"
'빙하기' 접어든 제조한국
미·중 무역전쟁 장기화와 미국발 통상 압박, 글로벌 경기 침체 등의 영향으로 내년 우리 수출도 녹록지 않을 것이란 우울한 전망이 속속 나오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제조업 157개사를 대상으로 내년도 수출 전망을 조사한 결과 올해와 비슷할 것이란 응답이 58.0%로 가장 많았고, 악화할 것이란 응답(23.6%)이 개선될 것이란 응답(18.4%)보다 많았다고 13일 밝혔다.
업종별로는 반도체의 경우 올해와 유사할 것이란 응답이 가장 많았으나 '악화' 예상이 '개선' 예상을 소폭 앞섰다. 일반기계와 석유화학, 자동차, 자동차 부품, 철강, 섬유 등도 악화 전망이 개선 전망보다 우세했다. 수출 개선 전망이 악화 전망보다 우세한 업종은 선박, 디스플레이, 컴퓨터, 가전 등 단 4개에 불과했다.
수출 기업들은 내년의 우려되는 수출환경으로 보호무역주의 확대(19.7%)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주요 수출상대국 경기 부진(19.1%), 수출 경합국과의 경쟁 심화(17.8%), 환율 변동성 확대(14.6%) 등의 순으로 응답했다.
내년 수출확대를 위해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해법으로는 수출시장 다변화(30.6%)를 제시했다. 그 다음으로는 원가 절감(28.7%), 글로벌 보호무역주의에 따른 통상압력 대응(12.1%), 신제품 개발(11.5%), 해외마케팅 강화(10.8%) 등을 꼽았다. 수출확대를 위해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국가로는 중국(37.6%), 미국(20.4%), 동남아시아(16.6%), 일본(7.0%), 서유럽(6.4%), 중동(4.5%) 등을 지목했다.
유환익 한경연 상무는 "응답 기업 10개사 가운데 8개사가 내년도 수출을 올해와 비슷하거나 나빠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며 "보호무역주의 확산과 글로벌 경기침체 등으로 내년도 수출여건이 녹록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전문가들도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다. 이날 서울 삼성동 트레이드타워에서 한국무역협회 주최로 열린 '2019년 통상환경 전망 및 대응전략 세미나'에서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내년에도 미·중 통상마찰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으며, 주요국들의 통상협상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 우리 산업계의 유연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USMCA(미국 ·멕시코·캐나다협정)에 대해 발제를 맡은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새로 개정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인 USMCA는 힘의 우위로 상대를 압박하는 미국이 주도한 관리무역협정"이라면서 "무역협정 사상 처음인 환율조항, 철저한 중국 견제 조항 등은 미국발 통상의 파고가 심각함을 의미한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윤희 포스코경영연구원 상무는 "미국의 대중국 제재 범위·강도와 각국의 대응수위 등에 따라 내년도 한국 철강 수출물량이 3000만 톤 이하로 급격히 감소될 가능성도 있다"며 "미중 무역전쟁 격화에 따른 세계경제 침체 등 컨틴전시 플랜 마련과 장기전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태년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상무도 "세계경제 회복 지연으로 글로벌 자동차 수요는 1.2% 증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미국의 232조 관세부과 가능성과 개발도상국 정치·경제 불안, 환율 급변동, 주요국 수입규제 강화, 브렉시트 등으로 대외여건이 크게 호전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미·중 무역전쟁 장기화 우려도 우리 수출의 발목을 잡고 있다. 같은 날 열린 '코트라 세계로 포럼'에서 박태호 서울대 국제대학원 명예교수(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는 미·중 무역협상이 이른 시일내에 타결되지 못할 경우 신흥국의 자금 이탈과 다국적 기업의 외국인직접투자 축소, 세계 주식·외환시장 악화로 우리처럼 대외의존도가 높은 국가가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같은 불확실한 통상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CP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등 지역통합체제 적극 참여와 중소기업 글로벌가치사슬(GVC) 편입 지원, 외국인투자유치 강화 등 정부의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수출품목 다변화, FTA 활용 극대화, 중국 내수시장 참여 확대, 해외 조립 및 생산기지 재검토, 신남방·북방 등 대체시장 발굴 같은 기업의 발 빠른 대응도 주문했다.한편 강감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정책총괄과장은 기업들의 이 같은 우려에 "정부는 보호주의 극복과 신통상질서 논의에 적극 대응하는 한편 FTA 네트워크 확대로 해외시장 진출 기반을 강화할 것"이라며 "신남방·신북방정책 등으로 수출시장을 확대하고 유망 신산업과 소비재 등 수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기 위해 기업들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박정일기자 comja7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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