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정치 리더` 만나야 경제위기 극복할 `집단의지` 부활" [김석동 前 금융위원장에게 고견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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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정치 리더` 만나야 경제위기 극복할 `집단의지` 부활" [김석동 前 금융위원장에게 고견을 듣는다]

이규화 기자   david@
입력 2019-01-03 18:06

고조선역사 새로 조명… 지금 어마어마한 반전 일어나
한국경제 난제 해법은 혁명적 생산방식과 국제적 협력
저출산대책 출발은 '살 공간'… 임대주택 무한 공급해야
무역분쟁 속 살길은 전통 주력산업 지키고 살리 챙겨야


김석동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ㆍ前 금융위원장

박동욱기자 fufus@

김석동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ㆍ前 금융위원장

박동욱기자 fufus@


[]에게 고견을 듣는다

김석동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ㆍ前 금융위원장

대담 = 이규화 논설실장



-현재 터키의 전신이 오스만투르크인데요, 오스만투르크도 우리와 친연관계가 있는 겁니까.

"셀주크투르크의 후예들이 오스만투르크를 건설했으니 당연히 우리와 친연관계가 있죠.돌궐과 터키 역사를 담은 사서가 사국사, 집사 등입니다. 중앙아시아 역사서인데, 그 중에서도 집사와 사국사가 중요해요. 사국사를 보여드리지요(김 전 위원장은 서가에서 양장이 잘 된 두꺼운 책을 하나 들고와 보여줬다). 사국사 기록어는 페르시아어인데, 이걸 다 읽고 전원철 박사가 지금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원을 하고 있고요. 이번에 번역을 하면 세계 최초로 한국어로 번역하는 겁니다. 영어로도 번역할 계획입니다."

-돌궐은 오늘날 터키로 국가형태로 남아있고 그 다음 활동한 기마유목민이 몽골인데요.

"12세기 말 징키스칸이 등장하기 전까지 몽골족이라는 게 없었습니다. 정체성이 없었어요. 몽골고원에는 돌궐이 떠난 후에 여러 종족들로 나뉘어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몽골족이 나타난 겁니다. 갑자기 몽골족이 나타나 몽골고원을 통일하고 대몽골제국을 건설해요. 이 징기스칸을 알고 보면 매우 흥미로워요. 몽골비사도 있고 여러 사서를 종합해 만든 게 징기스칸의 가계도예요. 몽골제국이 전 세계를 정복하면서 대적할 나라가 없었어요. 호라즘제국도 하룻밤에 초토화시켰죠. 당시 인류 문명권의 80%를 지배한 강대한 지역을 지배했어요. 그것도 모두 전광석화처럼 건설한 겁니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것이 몽골이 고려를 쳐들어왔는데, 항복을 받아내기까지 39년(삼별초까지 합치면 42년)이나 걸려요. 고려 조정이 접근하기 쉽지 않은 강화도로 피해 버틸 수 있다고 하지만 정말 미스터리에요. 세계사에 이런 예는 없어요. 몽골하고 대적해서 항복하거나 패배하지 않은 나라가 없거든요. 납득할 만한 설명이 없어요. 해답의 일단을 몽골이 항복을 받은 후 일어난 일을 보면 찾을 수 있어요. 고려가 항복한 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요. 두 나라가 형제지국의 조약을 맺는 겁니다. 신하가 아니고요. 다른 나라는 모두 군신관계였거든요. 또 공주를 고려 왕에 시집을 보내요. 공주를 데리고 가는 게 아니라 거꾸로 고려로 보내요. 흉노가 한나라 유방을 굴복시킨 후 한이 흉노에 공주를 갖다 바치는 것과 매우 대조적입니다."

-이긴 나라가 진 나라에 공주를 갖다 바치는 것과 다름없는 것 같은데, 몽골이 왜 이렇게 고려에 '자비'를 베풀었나요.

"그 열쇠가 징기스칸의 가계에서 찾을 수 있다고 봐요. 전원철 박사가 저서에서 증명을 했는데, 전 박사는 구당서, 신당서, 오구즈역사, 사국사, 금사, 고려사, 셀주크 역사, 투르크멘의 계보, 칭기즈나메 등을 연구해 밝혔어요. 이 가계도(가계도를 펼쳐보이면서)에서 보면, 오구즈칸의 4대손이 대조영과 대야발입니다. 대조영의 4대손이 금행입니다. 금행은 역사책에 나와요. 금행의 아들이 셋이 있는데 막내아들이 보활리입니다. 보활리의 4대손이 알람구하이고요 알람구하는 여자예요. 이 사람이 바로 모든 몽골인들이 어머니로 추앙하는 바로 그 사람이예요. 징기스칸이 바로 이 알람구하이의 10대손입니다. 그래서 따지고 보면 징기스칸은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 대야발의 19대손이 된다는 게 전원철 박사의 설명입니다. 몽골하고 우리하고는 문화나 언어, 역사, 풍습이 너무나 흡사해요. 지금도 몽골 가서 옷만 바꿔입으면 누가 한국사람이고 몽골사람인지 몰라요. 아마도 당시에도 몽골이 고려에 어떤 친연관계를 느끼고 고려에 대해서는 다른 나라와 다르게 대우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징기스칸은 그럼 고구려의 후예고 우리와 같은 뿌리로 봐도 무리는 아닌 것 같은데요.

"징기스칸이 1162년 생이에요. 사실 징기스칸이라는 이름은 우리나라도 1960년대까지는 몰랐었어요. 세계 사람들이 징키스칸을 몰랐어요. 왜 그러냐면 청나라와 러시아에서 징기스칸을 얘기하는 것은 바로 즉결처분 대상이 됐기 때문이예요. 그런 후진 동네에 영웅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안 되니까 역사를 처참하게 난도질 했던 거지요. 1961년에 징기스칸이 장장 800년 만에 알려지게 됐지요. 몽골공산당이 몽골은 소국이 아니었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역사를 돌이켜 끄집어낸 것이죠. 그리고 징기스칸 탄생지라는 헨티주에 비석을 세워요. 저도 가봤는데, 울란바토르에서 600km 버스로 15시간 걸려요. 붉은 깃발과 돌멩이밖에 없더군요."

-징기스칸 후예가 원을 세워 중국을 다스렸고 서쪽에서는 4한국이 있었잖아요. 그 후손들이 지금의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어떤 관계가 있나요.

"중앙아시아와 인도에서 티무르 제국과 무굴제국으로 이어집니다. 지금 우즈베키스탄이 티무르의 후손이라고 자청하고 있고 무굴제국은 1857년 영국에 의해 망하기 전까지 인도지역을 지배한 왕가인데 무굴이란 말이 몽골이란 뜻을 갖고 있어요."

-강성했던 기마유목민족의 마지막 주자는 여진족입니다.

"발해가 926년에 거란에 의해 멸망한 후 그 땅을 우리는 여진이라고 했어요. 여진족이 만든 나라가 금이고 그 금은 아골타가 건국을 했습니다. 금은 자기들 건국시조를 함보라고 하는데, 함보는 고구려 사람이라고 합니다. 함보의 7대손이 아골타고 대야발로부터 12대손입니다. 그리고 아골타의 20대손이 청을 건국한 누루하치지요."

-그럼 아까 고조선을 말씀하시다 나중에 얘기한다고 하셨는데, 이들 5개 북방 기마유목민족의 뿌리는 어딘가요.

"유물과 역사 등을 종합적으로 볼 때 고조선에서 파생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어요. 그럼 고조선 곧 우리민족은 어디서 왔냐로 이어지는데, 인류의 이동경로를 볼 때 한민족의 이동경로는 두 가지로 봐요. 약 7만~5만 년 전에 인류가 아프리카를 벗어나 흩어질 때 만주와 발해만 일대로 들어온 경로가 있고 다른 하나는 남쪽 해안을 따라 한반도로 들어온 경로가 있습니다. 이후 주류를 형성한 민족이동이 있었는데, 중앙아시아로 이동한 후 신장위구르를 거쳐 몽골고원으로 들어온 것으로 추정합니다. 여기서 바이칼호수 남쪽을 들러 발해만 해안을 거쳐 한반도로 들어왔다고 보는 학설이 지배적입니다. 이홍규 서울대 교수가 DNA 분석 전문가인데, 유전자를 분석하면 북방 DNA는 70% 남방 DNA는 30% 정도 된다고 해요."

-고조선을 건국한 민족은 그럼 북방민족으로 봐야 하나요.

"우리나라 역사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환국(桓國)이라는 나라가 있습니다. 그런데 환국의 존재에 대해서는 역사적 고증이 없고 다만 우리나라 역사서에 있었다는 기록만 있는 상태입니다. 존재했었다는 기록만 있는 거죠. 그 땅에 살던 사람들 중에 서쪽으로 간 일파를 수메르라고 한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동쪽으로 간 민족을 배달민족이라 한다는 거예요. 배(培)자가 밝다는 뜻이거든요. 즉 밝은 땅, 동쪽으로 간 민족이란 뜻입니다. 고조선에 대해서는 여러 고증이 있고 역사서도 충분해 국가로서 분명히 우리 고대국가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우리가 역사 시간에 배운 고조선사는 불과 몇 줄에 불과해요.

"그동안 우리가 역사시간에 배운 것은 BC 4~5세기에 생겼던 국가고 평양에서 건국됐으며 연나라에서 위만이 와 위만조선이 되었고 한무제가 쳐들어와 망해서 한4군을 설치했다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완전히 왜곡된 역사입니다. 원래 고조선은 발해만 일대 북중국 대흥안령산맥을 중심으로 존재했던 BC 24세기 전에 건국된 국가라는 것이 이 지역에서 출토되는 유물과 유적으로 거의 확실해지고 있어요. 아까 얘기한 요서에서 자기들 조상인 동호 즉 고조선이 40대 이상 왕이 이어졌다고 하는 기록도 있고요. 단재 신채호 선생은 1931년에 '조선상고사'에서 만주 한반도 발해만을 아우르는 대제국이라고 했고 북한 리지린이라는 학자는 고조선 연구에서 고조선은 BC 24세기에 분명히 존재했고 발해만 일대와 만주를 모두 포괄했다고 사서를 기초로 연구해 밝혔어요. 러시아 학자 유 엠 부찐도 중국의 역사서만 보고서도 고조선은 발해만과 만주에 존재했던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이밖에도 물론 위서 논쟁이 있긴 하지만 '환단고기'나 '규원사화', '단군세기' 등도 고조선의 존재를 자세히 밝히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책들을 역사서로서 보기에는 어렵다는 비판적 시각이 있지 않나요.

"위서라고 아무도 단정적으로 말을 못합니다. 왜냐하면 1972년에 규원사화라는 책을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숙종 때 발간된 거라고 진본 판정을 내렸습니다. 거기 보면 단군이 47명이라고 나옵니다. 저는 이것을 강조하진 않습니다. 그러면 자 고조선 사람들은 우리와 어떤 관계가 있느나는 문제가 제기돼요. 고조선 사람들이 부여, 고구려가 되거든요. 또 이 사람들이 전란을 피해 대거 한반도 남쪽으로 이주했다는 기록도 있고요. 이 같은 이치로 흉노의 흔적이 한반도 남쪽 경주에 남아있는 겁니다. 이런 사실이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에 잘 설명돼 있고 단재 선생은 이들 다섯 개 북방 유목민족이 아(我)의 동족이라고 했어요."

-고조선의 역사는 이제 새롭게 조명된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근래 들어 발해만 일대에서 엄청난 유물 유적이 발견되고 있어요. BC 7000년 전부터 여기에 문명이 존재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960년대부터 어마어마한 증거들이 땅속에서 나오고 있어요. 특히 1983년부터 1985년까지 정말 어마어마한 것들이 쏟아져나옵니다. 지금 가봐도 마을 근처에서 BC 3000년 전의 항아리들이 막 출토돼요. 이게 바로 홍산문화(紅山文化 )라고 하는데요, 이것은 중국 한족 문화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특히 중국은 이쪽에 대해서 역사 기록이 없어요. 자기들 문명이라면 기록을 했을 텐데 없는 거 보면, 기마민족 역사가 아니라면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그중 우리를 경악하게 하는 게 BC 24세기에 하가점 하층문화가 발견이 돼요. 이건 국가의 존재를 증명하는 겁니다. 거기에 국가가 있었다는 데는 아무도 부인 못합니다. 그럼 바로 그 국가가 무엇이냐고 물을 수 있는데, 많은 역사 학자들이 바로 고조선이라 보고 있지요.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중국 사서에는 이 부분이 전혀 나오지 않으니까요. 우리 역사에서는 BC 2333년 건국했다는 고조선이라는 역사가 나오거든요. 어마어마한 반전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거예요.물론 중국 역사학계에서는 고조선이 아닐 거라고 얘기하고 있지요. 역사에서 한족은 북방으로 올라온 적이 없거든요."

-이제 현대로 돌아와 한국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여쭤봐야 할 것 같아요. 저성장으로 인한 고용절벽과 주력산업의 경쟁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데요.

"아까 얘기했던 이제까지와 전혀 다른 혁명적 생산방식을 만들어야 하고 국제 협력이 필요합니다. 우리 문제를 세계를 이용해 푸는 지혜가 필요해요. 두만강 하구에 가보면 중국이 동해로 나가는 길이 막혀 있어요. 중국은 이곳을 통해 동해로 가려는 욕망이 아주 강합니다. 중국 땅에 동해를 바라보이는 곳에 '망해각'이라는 정자를 지어놓을 정도니까요. 러시아도 앞으로 성장동력을 극동에서 찾으려고 혈안입니다. 러·중 양국과 북한이 두만강 하구에 만나는 곳에 거대한 생산기지와 물류기지로서 국제도시를 건설하는 겁니다. 북·중·러가 땅을 내놓고 한·미·일을 비롯한 서방이 참여해 투자하는 방식입니다. 이곳은 부산에서 출발한 시베리아행 열차가 지나는 길목이고 중국 내륙으로 들어가는 통로 역할도 합니다. 또한 북극항로가 2030년 쯤에는 1년 내내 열리게 되는데, 북극항로와 유라시아 철도가 만나면 물류의 대혁신이 일어날 겁니다. 신도시 건설에 노하우와 경쟁력이 있는 우리가 나서서 건설하면 돼요. 이 신도시를 구체화시켜 북핵 해결에 대한 레버리지로 이용할 수도 있어요. 1930년대 대공항 이후 세계 경제는 거대한 부채로 성장을 지속해왔어요. 이런 문제를 풀고 아울러 우리가 저성장에서 벗어나는 좋은 해법이 두만강 국제도시 건설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장 한국경제는 활로를 찾아야 하는데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기업이 뛰게 해야 합니다. 기업을 묶어 놓으면 안 돼요. 기업을 풀어놓으면 우리 DNA에 있는 북방기마민족의 특질인 생존본능, 승부사 기질, 집단의지, 개척자 정신이 발휘될 거라고 봅니다. 그런데 전제 조건이 있어요. 집단의지는 좋은 지도자를 만나야 발휘된다는 겁니다. 위기 상황이 닥치면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해요.(이 부분에서 김 전 위원장은 현 정부의 리더십이나 정책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사양했다)"

-한민족은 지금 인구학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느냐는 문제에 봉착해 있습니다. 저출산 문제입니다.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하겠습니까.

"그동안 백조 넘는 돈을 쏟아 부었지만 효과가 없었습니다. 방향이 잘못됐어요. 인간은 의식주가 가장 기본적인 것이고 이게 해결돼야 합니다. 그 중 의식은 그런대로 우리가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어요. 하지만 주(住), 살 집이 문제예요. 살 공간이 없는데 누가 자녀를 낳겠습니까. 저는 저출산 대책의 출발이 우선 살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정부와 지자체가 임대주택을 제공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처럼 찔끔찔끔 해서는 안 됩니다. 혁명적으로 물량을 늘려야 합니다. 정부와 지자체가 가진 땅 가운데 교통이 좋은 곳에 품질 좋은 임대주택을 무한정 공급해 주거 문제가 해소되면 저출산 문제는 어느 정도 풀리리라 봅니다. 프랑스가 성공했잖아요."

-2019년 한국경제 역시 희망 보다는 걱정이 앞섭니다. 미중 무역분쟁이 계속되는 등 세계경제 환경이 악화되고 있고 국내적으로도 소득주도성장책으로 급격한 임금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이 시행될 텐데요.

"미중 무역분쟁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겁니다. 1980년대 일본 경제가 급상승할 때 미국이 플라자합의로 일본 엔화를 무자비하게 절상했어요. 8년에 걸쳐 엔화 가치를 250엔에서 80엔으로 3분의 2나 절상해놨어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원인입니다. 미중 무역분쟁은 오바마 정부 때 계획되고 트럼프가 실행하는 것인데, 세계 패권질서와 연관돼 있기 때문에 미국이 쉽사리 중국을 놔두지 않을 겁니다. 우리가 살 길은 역시 우리가 강한 전통 주력 산업의 경쟁력을 잃지 않으면서 실리를 취하는 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려면 내부에서 갈등을 최소화하고 외부로 진출하는 기마민족 특유의 기질을 발휘해야 한다고 봐요. 한민족은 위기에 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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