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석의 건강수명 연장하기] 한 의사의 의로운 죽음

메뉴열기 검색열기

[이현석의 건강수명 연장하기] 한 의사의 의로운 죽음

   
입력 2019-01-10 18:07

이현석 대한흉부외과학회 상임이사


이현석 대한흉부외과학회 상임이사

우울증과 불안장애 치료, 그리고 한국형 표준자살예방프로그램 개발책임자로서 자살 예방을 위해 헌신했던 한 정신과 의사가 2018년 마지막 날 죽음을 맞이하여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살인을 한 환자가 "머리에 소형폭탄을 심은 것에 대한 논쟁을 하다가 이렇게 됐다"고 진술했다는 경찰의 발표로 볼 때 정신 질환이 의심되지만 정서적인 측면에서는 내면의 강한 분노가 폭발했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3년 전 진료받은 것과 1년 전 외래 진료를 한 번 받은 것 외에는 의사와의 접촉이 없었던 점에서 의사 개인에 대한 불만이나 원한으로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인다.

분노나 공포를 느끼게 되면 몸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많은 호르몬들이 분비되는데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흔히 카테콜아민이라는 호르몬과 스테로이드의 일종인 코티졸이다. 카테콜아민은 근육을 긴장시키고 맥박과 혈압을 올리며 혈관을 수축시키게 되는데 심한 경우에는 부정맥이나 심근 경색을 유발하기도 하며 장기간에 걸쳐 분비될 경우에는 협심증이나 뇌졸증, 당뇨 같은 성인병 뿐만 아니라 소아기에는 두뇌의 발달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또 다른 호르몬인 코티졸 역시 장기간 다량 분비되면 당뇨, 위장장애, 면역 기능 저하, 골다공증, 비만 등을 유발하여 만병의 근원이 된다.


지금 우리 사회는 개인적인 스트레스 외에도 치열한 경쟁과 어려운 경제 상황으로 인한 심리적 압박을 받고 있다. 20대는 심한 경쟁 속에서 자라왔기에 공정한 규칙에 대한 갈망이 크며 따라서 부정과 편법으로 성공한 사례가 폭로될 때마다 분노하고 절망하게 된다.



물론 이런 분노로 인해 우리 사회가 좀 더 투명해지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그리고 은퇴기에 들어선 베이비 부머들은 아직 남아있는 가족부양의 책임과 불확실한 노후 준비 때문에 쉽게 좌절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작은 일에도 쉽게 상처를 받게 되고 또 남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이런 일이 장기간 반복되면 결국 건강까지 해칠 수 있다.
스트레스를 근본적으로 받지 않고 사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우선 생활습관을 바꿔보는 것이 좋다. 화가 나는 상황에서 먼저 웃도록 노력을 하면 실제로 화를 덜 내게 된다. 그리고 매일 가벼운 운동을 계속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따로 운동을 하기 힘들면 몇 정류장 전에 내려서 걷는 것을 습관화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음악을 자주 듣는 것도 도움이 된다. 반면에 폭력적인 영화나 드라마는 더 큰 스트레스를 주어 일시적으로 현실을 잊게 하는 것이므로 피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것은 용서와 포용이다. 용서란 마음 속의 분노를 조절하여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 삶을 평온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론적으로는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몰라도 인생이 파괴되는 듯한 큰 사건을 겪었을 때 이를 실천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평소에 꾸준히 자기 자신을 다스려 나가는 긴 여정을 통해서 내면이 성숙해지지 않으면 쉽게 용서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던 의사의 유족들이 커다란 충격에도 불구하고 분노와 증오 대신 오히려 '안전한 진료환경을 만들어주십시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편견과 차별 없이 언제든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주십시오'라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진흙탕 속에서 맑게 핀 연꽃을 혼탁한 세상을 밝게 해주는 보살의 모습에 비유하는데 바로 그 연꽃의 모습이 떠오르는 장면이다. 그리고 기독교에서 말하는 믿음, 소망, 사랑의 으뜸은 사랑이라고 하는 말과도 통하는 것 같다.

힘들고 어려울 때 '과연 나는 그들만큼 힘들까'라고 생각하면 흥분하고 화났던 일들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롤 모델이 될 만한 사람들이 많이 있고 또 그들의 존재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회가 선진국일 것이다.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