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욱 서울여대 경제학과 교수
![[시론] `현장 없는` 정책은 惡策이다](http://contents.dt.co.kr/images/201901/2019011402102269607001[1].jpg?var=3643 "[시론] `현장 없는` 정책은 惡策이다")
세계 경제규모 1, 2위 국가에서도 실물 시장의 경제지표에 따라 정책책임자가 유연하게 정책 방향을 수정하는 예는 얼마든지 있다. 이는 기존의 약속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현장의 성과를 엄중하게 보고 그에 맞게 대처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미국 공급자 관리협회가 신년 1월 3일 발표한 실물 시장의 현장 성과에 따르면, 최근 상승해왔던 제조업구매지수는 지난 12월 전월 59.3에서 54.1로, 또 신규 주문 구매지는 전월 62.1에서 51.1로 각각 5.2%, 11% 하락했다. 시장에서 소매판매 지표는 강하게 나타났지만 생산자 경제 상황 지표가 크게 악화된 것이다.
그러자 바로 다음날 전미경제학회에서 파월 연준의장은 "통화 정책에 미리 정해진 경로는 없다. 항상 변화할 준비가 돼 있으며 필요하다면 상당히 크게 바꿀 수도 있다"며 보유자산 축소 프로그램도 "시장에서 문제가 된다면 주저하지 않고 바꾸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19일 연방기금 금리를 2.25~2.5% 범위로 인상하면서 2019년 금리 인상 회수도 기존의 3회서 2회로 줄일 것이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실물 시장의 악화된 현장 상황 지표를 보고는 불과 15일만에 태도를 확 바꾼 것이다. 그래도 한발짝 앞도 제대로 못 보았다고 비판받기보다는 적절한 조치라는 칭찬이 더 많다.
중국의 경우, 지난해 11월 전년 동기 대비 소매판매 증가율이 8.1%로 10년 만에 최저가 되면서 시진핑 주석이 나서서 실물경제 둔화를 우려하자, 중국 인민은행은 올해 1월 4일 대형은행 지급준비율을 1월 15일·25일에 각각 0.5%씩 내린다고 발표했다.
한국의 상황은 어떤가. 지난해 11월 22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3분기 가계동향조사'를 보면, 소득 상위 20%인 5분위 평균 소득은 하위 20%인 1분위 평균소득의 5.5배를 넘었다. 3분기 소득 기준으로 2007년 이후 소득양극화가 가장 심화된 수치다. 이는 상위 5분위 근로소득은 11.3% 증가한 반면, 최하위 1분위 소득은 22.6% 감소했기 때문이다. 소득분배 통계가 작성된 2003년 이후 최대폭 이격(離隔)이다.
2018년도 16.4% 최저임금 인상 후 1분위 평균 소득은 오히려 47만8900원 감소했다. 이러한 소득 감소를 보전해 주기 위해 정부는 각종 보조금, 복지수당, 연금 등을 22.8%로 올려 평균 60만4700원의 이전소득을 지급했다. 그런데 이 지급액이 평균 근로소득 감소보다 12만5800원이 더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5분위 평균소득과 1분위 평균소득의 소득 격차가 더 확대 되었다면, 그 원인은 근로시간 단축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게다가 2018년 7월 이후 월별 남녀 실업률은 모두 전년 동월 대비 높다. 소득 창출의 근원이 되는 일자리를 찾지 못한 근로자들이 늘어나니 당연히 1분위 평균소득은 더 낮아 질 수 밖에 없다.
시장에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지만,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은 2019년 경제정책에서 매우 미흡해 보인다. 정책당국은 "최저임금 인상 및 노동시간 단축에서 경제사회적 수용성과 이해관계자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느니 "일부 정책이 시장의 기대 보다 급진적으로 추진되어 경제전망이 기대 보다 낮아졌을 뿐이다"라는 등의 현상무마적 언급만 할 뿐, 소득 양극화를 개선하기 위한 적극적인 정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중국발 사드 사태와 더불어 최저임금, 근로시간 단축 등을 겪으면서 자영업자들과 기업들은 정치가 사업의 성패를 좌우할 정도로 이렇게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가를 처음 느꼈다고 한다. 소득감소를 겪은, 혹은 일자리가 없는 최하 1분위 그룹의 사람들도 같은 얘기를 하지 않겠는가? 소득양극화를 극복하고 '다 함께 잘사는 사회'로 나가려면 최저임금 인상 및 근로시간단축이라는 기존 메커니즘에서 벗어나 시장의 현장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현장과의 소통, 그것이 모든 정책의 시발점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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