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웅 성균관대 명예교수·경제학
![[시론] 글로벌 금리 딜레마에 빠진 한국](http://contents.dt.co.kr/images/201901/2019011502102269660001[1].jpg?var=0621 "[시론] 글로벌 금리 딜레마에 빠진 한국")
아시아 이머징 마켓(Emerging markets)에서 중앙은행이 발행한 통화와 은행 지불준비금은 작년 4월 이후 실질가치가 7%나 떨어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11% 폭락 이후 최대폭 감소이다. 미달러화가 강세로 돌아서자 이머징 마켓으로부터 대규모 자본이 유출되었기 때문이다. 중앙은행들은 유동성을 확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유동성의 급격한 감소현상이 세계적으로 확대되면 글로벌 경기침체가 올 수 있다. 최근 세계경제가 저조한 원인 중에는 이러한 요인도 있다.
이머징 마켓의 급격한 자본유출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미국 등 선진국이 금리를 제로 수준까지 낮추었다가 그 후 과잉 공급된 통화량을 환수하기 위해 금리를 다시 올렸기 때문이다. 달러화가 강세로 돌아서고 미국 금리도 오르면 이머징 마켓으로부터 자본 유출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자본유출(또는 자본도피)가 극심할 경우 자본 규제가 불가피할 수도 있다.
최근 우리나라 증권시장에서도 자본유출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 코스피 지수가 한 때 2000선이 무너진 것도 투자자들이 주식을 팔고 달러화를 매입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국내외 여건을 고려할 때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자본 도피가 계속될 것이라고 한다. 수출이 늘면 자본 유출로 인한 유동성 부족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미중(美中) 무역전쟁이 계속되면서 수출도 저조하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부터 중국에서 수입하는 상품 2000억 달러에 대해서 관세를 25%로 올릴 방침이다. 미중 무역전쟁이 완화되지 않으면 중국 수출은 현저하게 감소할 것이며 미국과 중국이 수출시장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한국 수출 역시 위축될 수밖에 없다. 한국은 작년에 수출 규모가 6000억 달러를 넘어 사상 최대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수출 증대에도 불구하고 국내 유동성은 별로 증가하지 않았다. 그 만큼 자본유출도 많았음을 나타낸다.
달러화의 유입이 부족할 경우 중앙은행이 통화량을 증가시키려면 정부가 발행한 국채를 매입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과도한 국채 매입과 재정지출의 남발은 인플레이션을 초래한다. 물가안정을 유지하기 위해서 중앙은행은 금리를 높이고 정부는 재정적자 규모를 억제해야 한다. 그러나 선진국들이 양적완화를 폐지하면 이머징 마겟의 자본유출에 따른 유동성 부족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중앙은행이 시장에 자금을 공급하고 그 돈으로 기업이 투자를 하면 경기가 개선된다. 그런 과정에서 국채 가격은 오르고 금리는 떨어진다.
따라서 중앙은행이 경기를 개선하려면 무엇보다 금리를 내려야 한다. 반대로 물가를 안정시키려면 금리를 올린다. 그러나 통화정책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예컨대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미국 연준(Fed)은 점진적으로 금리를 올리고 있다. 그러나 금리를 올리면 주가가 떨어지고 경기가 위축된다. 이것이 미국 선거에 영향을 미치므로 트럼프 대통령은 금리 인상을 반대하고 연준 의장에게 압력을 행사하려한다. 이에 비해서 대부분의 이머징 마켓에서는 유동성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서 금리를 낮추어야 한다. 그럴 경우 자본이 해외로 유출될 수 있다.
이같은 딜레마의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이다. 한국은 미국 연준이 점진적으로 금리를 올려도 국내금리를 오랫동안 동결해왔다. 결국 미국 금리가 한국 금리보다 높아지는 역전현상이 일어났으나 대규모 가계 부채를 떠안고 있는 국내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까 우려해서 금리를 올리지 못했다. 마침내 한국은행은 지난해 밀 정책금리를 0.25% 포인트 올렸으나 한미간 금리 역전현상이 개선되기도 어렵고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기에도 역부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인 정부로부터 총재 연임까지 따낸 이주열 한은 총재는 트럼프 대통령의 비판을 받고 있는 미연준의 파월 의장보다 행복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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