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미생`에 그친 과학기술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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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현장] `미생`에 그친 과학기술정책

이준기 기자   bongchu@
입력 2019-01-14 18:07

이준기 ICT과학부 차장


이준기 ICT과학부 차장



"올해 과학기술계도 쉽지 않은 해가 될 것 같습니다." '복과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기해년 '황금돼지의 해'가 밝았지만 올해 과학기술계의 기상도는 '흐림'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새해를 맞이하는 벅찬 희망과 기대, 셀렘보다는 국가와 이 나라의 과학기술 미래를 걱정하는 과학기술인의 한숨소리는 더욱 절절해지고 있다.
지난해 교수들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임중도원'(任重道遠, 할 일은 많고 갈 길은 멀다)을 꼽았다. 우리 과학기술계가 처한 상황과 딱 어울린다는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렇다면, 올해 과학기술계는 어떨까. 무엇보다 현장과 현실을 무시하고 오로지 '이념'의 굴레 속에서 탄생한 정책으로 연구현장의 혼란은 가중될 전망이다.

우선 연구 현장의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정부의 획일적인 가이드라인에 맞춰 추진되고 있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따른 후유증과 부작용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지난해 깊은 상처를 남긴 상시·지속 업무수행 기간제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고 있으며, 파견·용역 등 간접고용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도 추진 방식(직접고용, 자회사 설립)을 놓고 합의점을 찾지 못해 노사 갈등의 골은 한층 깊어지고 있다. 친노동정책을 표방하는 정부는 '노사 합의'로 이뤄질 사안이라며 팔짱만 끼고 중재자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주 52시간 근무 단축'도 묘안을 찾기 힘든 사안이다. 연구환경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R&D 분야의 경우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오는 7월 시행 예정이다. R&D 분야는 특성상 근로시간을 정확히 측정하기 힘들고, 특정 기간에 시간을 초과해 근무해야 하는 경우가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다. 노동과 업무에 따른 직군도 다양해 시행 이전과 이후 연구현장에 정착되기까지 상당한 혼란을 가져올 수 밖에 없는 '시한폭탄과 같은 정책'이다.

이런 정책 모두 R&D 현장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국정과제'라는 이름을 달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연구 현장의 연구자들의 이해와 공감을 이끌어 내지 못해 반발만 키우고 있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최대 숙원인 PBS(연구과제중심제도)도 수년 째 정부가 나서서 개선하겠다고 분명히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다. PBS 폐지까지 검토했던 정부는 "PBS를 원하는 연구자도 있다"는 논리를 내세워 출연연에 떠넘기는 방식으로 개선안을 마련토록 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이 정부가 내세운 '국민 중심, 연구자 중심의 과학기술 정책'이 과연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헷갈리기만 하다. 연구자 사이에선 현장과 동떨어진 정책 추진으로 국민들이 체감하는 성과 창출을 방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과학기술계에선 이를 두고 "미생의 과학기술 정책이 과학기술 생태계를 무너뜨리고 연구자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주범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과학기술 뿐 아니라, 올 한해 우리를 둘러싼 국내외 여건이 녹록지 않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미·중 무역전쟁과 보호무역주의 확산 등으로 글로벌 경기는 급속히 둔화되면서 우리 경제의 역동성과 활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여기에 내수부진의 장기화와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급격한 고용환경 변화로 인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대한민국 경제'의 앞날은 짙은 터널 속으로 점점 빠져들고 있다.

결국 국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이 나라의 과학기술도, 평화도, 통일도, 그리고 대한민국의 미래도 없다. 불확실성의 시대, 위기에 처한 우리나라 경제를 살릴 수 있는 근원적인 방정식은 뭘까. 바로 과학기술 기반의 끊임없는 기술혁신 밖에 없다. 지금 전 세계는 승자독식이 더욱 뚜렷해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들면서 앞으로의 세상은 '테크(기술)을 가진 국가'와 '기술을 가지지 않은 국가'로 생존이 결정될 것이다. 지난 8∼11일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9'는 각국은 물론 글로벌 기업의 치열한 '기술혁신의 경연장'이자 '미래기술의 전쟁터'나 다름 없음을 보여줬다.

새해 벽두 영국 이코노미스트도 '2019 세계경제 대전망 보고서'에서 "기술로부터 도망칠 수도, 기술을 이용해 숨을 수도 없다"고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반해 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과학기술·ICT 인재 4만명을 양성하겠다"는 단 한 차례 '과학과 기술'을 언급했을 뿐 여전히 과학기술의 중요성과 역할에 대해선 현실인식이 부족한 것 같다. 과학기술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통해 추격형 전략을 넘어 선도형 전략으로 '기술굴기'로 무서운 기세로 혁신에 혁신을 추진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완생의 과학기술 정책'을 마련하는데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이준기 ICT과학부차장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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