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성 202·반대 432표 사상최대
보수당 하원 표결에서 최악 참패
英 국내총생산 8% 줄어들 수도
메이 21일까지 '플랜B' 제시키로
EU 27개 회원국 우려감 표시
영국 하원이 테리사 메이 행정부와 유럽연합(EU)의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합의안을 의정 사상 최대 표차로 부결시켰다.
합의안이 의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며 메이 총리 또한 정치적 위기에 봉착했다. 브렉시트 발효 시한을 불과 2개월가량 남겨두고 영국의 앞날이 오리무중에 빠져드는 모양새다.
합의안 없는 브렉시트가 현실화 할 경우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도 높아져 그 파장이 우려된다. 당장 영국 국내총생산(GDP)의 8%가 줄어들 전망이다. 심지어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당시보다 더 큰 불황이 올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15일(현지시간) BBC,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영국 하원의원 634명은 이날 오후 의사당에서 정부와 EU가 합의한 'EU 탈퇴협정 및 미래관계 정치선언'을 놓고 찬반 투표를 실시, 230표차로 부결시켰다. 투표 결과 찬성 202표, 반대 432표였다.
구체적으로 보면 찬성 202표는 보수당 196표, 노동당 3표, 무소속 3표 등이다. 반대 432표는 노동당 248표, 보수당 118표, 스코틀랜드국민당(SNP) 35표, 자유민주당 11표, 북아일랜드의 연방주의 정당인 민주연합당(DUP) 10표, 웨일스민족당 4표, 녹색당 1석, 무소속 5표 등이다.
영국 의정 사상 정부가 200표 이상의 표차로 의회에서 패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최대의 표차는 1924년 당시 노동당의 램지 맥도널드 총리가 기록한 166표였다.
이날 투표는 영국과 EU가 지난 11월 25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특별 정상회의에서 합의안에 공식 서명하고 비준동의 절차에 착수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진행됐다.
양측은 당시 브렉시트 전환(이행) 기간, 분담금 정산, 상대국 국민의 거주권리 등에 관한 내용을 담은 585쪽 분량의 EU 탈퇴협정 및 자유무역지대 구축 등 미래관계 협상의 골자를 담은 26쪽 분량의 미래관계 정치선언에 합의한 바 있다.
메이 총리는 성명을 통해 "의회가 이번 합의안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이 명확해졌다"면서도 "이번 투표결과는 의회가 무엇을 지지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했다.
제1야당인 노동당은 부결 직후 의회에 메이 정부에 대한 불신임안을 제출했다. 불신임안 투표는 16일 실시될 예정이다.
불신임안은 하원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표를 던질 경우 통과된다. 만일 불신임안이 통과하면 하원은 다시 14일 안에 새 내각에 대한 신임안을 의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기 총선이 개최된다.
메이 총리는 의회가 정부에 대한 신임을 확인하면 보수당을 비롯한 각당 지도부와 함께 브렉시트 합의안이 통과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할 방침이다.
아울러 메이 총리는 최근 의회를 통과한 의사일정안(business motion) 개정안에 따라 3개회일 이내인 오는 21일까지 '플랜 B'를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9일 영국 하원이 통과시킨 이 개정안은 브렉시트 합의안 승인 투표에서 의회의 승인이 나지 않으면 정부는 3일 내에 새로운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향후 가능한 브렉시트 관련 시나리오로는 △'노딜'(No Deal) 브렉시트 △영국 정부와 EU의 재협상 △제2 국민투표 △노르웨이 모델의 '소프트 브렉시트'(Soft Brexit) 등이 거론된다.
영국 하원에서 합의안이 부결되자 EU와 27개 회원국들은 우려를 나타냈다. 우선, 도널드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협상이 불가능하고, 아무도 '노 딜'을 원하지 않는다면 궁극적으로 유일한 긍정적인 해법이 무엇인지 말할 용기를 누가 가질 것인가"라면서 영국의 EU 잔류를 우회적으로 촉구했다.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의 장클로드 융커 위원장은 최악의 상황으로 꼽히는 '노딜 브렉시트'에 대한 대비를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노 딜 브렉시트가 현실화하면 영국은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면서 "영국이 스스로 방법을 찾아야 한다. 행운을 빈다"고 말했다. 독일의 올라프 숄츠 재무장관은 "유럽에 쓰라린 날"이라며 유감을 표명했다.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는 "어떤 경우에도 영국과 탈퇴 협상을 다시 하진 않을 것"이라며 강경 입장을 확실히 했다.
윤선영기자 sunnyday72@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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