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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현장] `自害` 정규직화

안경애 기자   naturean@
입력 2019-01-21 18:15

안경애 ICT과학부 과학바이오팀장


안경애 ICT과학부 과학바이오팀장

"회사 이름은 제발 쓰지 말아주세요. 사업은 없어졌지만 다른 수요처를 발굴해서 만회할 겁니다." 수백 명을 투입해 한 공기업의 핵심 IT시스템을 20년 가까이 운영해온 IT기업 A사 관계자는 기자에게 신신당부했다. 이 회사는 정부·공공기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광풍'이 불어닥친 지난해 수백 명의 인력과 그들이 해온 일감을 잃었다.

공기업은 자회사를 설립해 기업 소속 인력들을 직원으로 뽑고 IT시스템을 자체 운영하기 시작했다. 회사 정규직 직원 50명이 남고 계약직 10여 명과 협력사 직원 수백 명이 공기업 자회사로 넘어갔다. 연 수백 억원의 매출이 함께 사라졌다. 회사는 약 20년간 시스템을 개발·운영하면서 해당 분야 전문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개발한 솔루션은 다른 영역에도 적용돼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줬다. 그러나 이제 그 고리가 끊어졌다. 회사에 남은 50명의 직원은 다른 먹거리를 찾아야 한다. 상장사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투자한 주주들도 덩달아 정부 정책의 피해자가 됐다. 그동안 공공기관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IT업계에 별 영향이 없을 것으로 관측돼 왔다. 고용노동부가 가이드라인을 통해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거나 SW산업진흥법 등 법령·정책 등에 의해 중소기업 진흥이 장려되는 경우 예외라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장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상당수 기업이 인력과 시장을 한꺼번에 잃고도 발주기관이나 주주 눈치를 봐서 대놓고 아픈 티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또 다른 IT기업 B사는 정규직화 여파로 회사 직원 수가 네 자릿수에서 세 자릿수로 바뀌었다. 전체 인력의 4분의 1이 줄어 1000명 훨씬 넘던 인력이 900여 명이 됐다. 직원들은 4개 공공기관으로 흩어지고 수백억의 매출이 사라졌다. 대기업인 A사가 계약직과 협력사 직원 위주로 옮겨간 것과 달리 중견기업인 B사는 피해가 더 컸다. B사 한 임원은 "한 기관에서만 300명 가까운 인력이 이관되고 수 십년 간 해오던 사업을 잃었다"면서 "당장 만회할 시장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규직화 이슈는 올해도 진행형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계약 관계인 기업 직원까지 비정규직으로 계산해 IT도 예외 없이 밀어붙이고 있다. 이미 상당수 인력을 자사화한 데 이어 올해와 내년 계약이 끝나는 사업 인력도 자회사로 흡수할 계획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한국가스공사, 국민연금공단 등도 같은 움직임이다.

인천공항공사와 심평원을 모두 고객사로 둔 C사는 설상가상 상황이다. C사 관계자는 "작년에도 일부 직원이 전환 배치됐는데 올해와 내년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면서 "하던 사업이 없어지는 게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인천공항공사 IT시스템 두 가지를 유지관리해 온 D사는 올해와 내년에 걸쳐 인력과 사업을 넘겨야 한다. 이 회사 관계자는 "공공기관 비정규직 채용과 기업과의 용역계약은 엄연히 다른 사안인데 계약 상대인 기업 인력까지 직원화하겠다는 것은 이해가 안 가는 발상"이라고 고개를 내저었다.


정부는 공공기관 IT부문에 대해 전산조직을 민영화하거나 기업에서 아웃소싱하는 정책을 수십년간 추진해 왔다. 급변하는 IT업무를 '고인 조직'으로 해결하는 것은 공공·산업 어느 영역에도 손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규직화 피해를 본 4개 기업 중 한 곳은 실제로 공공기관 IT조직 민영화를 통해 탄생했다. 그런데 내부 조직을 민영화하는 대신 일부 사업을 민영화 기업에 맡겨온 공공기관이 인력과 사업을 회수하면서 기업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다. 이 회사 관계자는 "비대한 공공기관을 효율화하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민영화할 때는 언제고 다시 사업과 인력을 빼앗으면 남은 기업은 뭐가 되느냐"고 한탄했다.

미국은 국가안보의 핵심인 국방부마저 자체 전산센터를 닫고 민간기업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다시 내부 전산실 시대로 돌아가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세계적인 혁신기업들은 자체 IT조직과 자원에 투자하는 대신 IT에 매년 대규모 투자를 하는 전문기업의 서비스를 이용한다.

관계사에서 혁신 실험 기회를 얻는 대기업과 달리 중견·중소기업들은 공공 IT시스템을 운영하면서 기술력을 다져왔다. IT는 개발과 운영의 경계가 사라진 지 오래다. 문재인 대통령이 외치는 혁신성장은 어느 나라 얘긴지 묻고 싶다.

안경애 ICT과학부 과학바이오팀장 natu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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