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CPTPP 가입 가이드라인은 패착(敗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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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CPTPP 가입 가이드라인은 패착(敗着)이다

   
입력 2019-01-28 18:11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트럼프 대통령의 탈퇴 결정으로 미래가 불투명하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일본이 주도하여 '포괄적이고 점진적인 TPP(CPTPP)'로 전환시켰고, 지난해 연말 11개 회원국 중 6개 국가가 CPTPP를 발효시켰다. 금년 1월 14일 베트남의 발효에 이어 지난 19일 CPTPP 각료회의가 일본에서 개최되어 신규 회원국 가입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가입 가이드라인은 향후 가입 협상에서 기존 CPTPP 회원국이 '절대 갑'인 것으로 스스로 자리매김하고 신규 회원국은 가이드라인에 제시된 조건을 수용할 때 기존 회원국이 가입 허용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CPTPP 다수 회원국이 민감한 사항에 대해서는 사이드레터(side letter)를 통해 양자간 유예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현 TPP 상의 모든 통상규범을 신규 가입국이 수용해야 하고 사실상 전 품목에 대한 관세철폐를 각오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가입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히기 전에 양자간 비공식 협의를 통해 민감분야를 논의할 수 있으나, 일단 가입협상을 공식 요청하게 되면 1차 회의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규범에 대한 내용과 관련 법·제도의 개정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또한 1차 회의 이후 30일 이내에서 시장개방안(상품, 서비스, 투자) 및 제도 개선안(정부조달, 기업인 일시입국, 국영기업)을 제시해야 한다. 기존 CPTPP 회원국이 요구하는 사항을 모두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가입 의사를 밝히지 말아야 함을 시사한다. 가이드라인 첫 문장도 '반드시 가입하고 싶어 하는 국가'(aspirant economy)로 시작하고 있다.



이 가이드라인은 말 그대로 신규가입을 위한 기준을 제시한 것이고, 법률적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 상황에 따라 나중에라도 변경될 수 있지만 신규 회원국을 배려하는 내용은 찾기 어렵다. 가이드라인을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신규 가입을 허용하지만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받지 않겠다는 뜻으로 보이고, CPTPP 가입을 위해 많은 국가들이 대기하고 있는 것으로 CPTPP 국가들이 착각을 하고 있지 않나 하고 헷갈린다. 신규 회원국이 군말 없이 CPTPP에 가입하도록 하기 위해 만들었겠지만, 신규 회원국의 가입과 CPTPP 확대를 가로막는 패착(敗着)이 될 것으로 보인다.
CPTPP의 최대 현안은 아직 협정을 발효시키지 않은 4개 국가(말레이시아 부르나이 페루 칠레)가 빠른 시일 안에 국내 비준절차를 완료하고 협정을 발효시키도록 하면서 경제규모가 큰 신규 회원국을 받아들여 CPTPP의 몸집을 키워야 한다는 점이다. 양자간 통상정책에 중심을 두고 있는 미국의 가입은 기대하기 어렵고, EU 탈퇴 방식이 불투명한 영국이 가입 절차에 나서기 어렵다. 가입 관심을 보인 국가로는 한국 태국 대만 등이며, 일본이 태국 가입을 권유하고 있지만 5월 총선 일정이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 대만의 참여 가능성을 의식하여 가이드라인에 국가 대신 '경제'(economy)를 언급하고 있으나, 다수 CPTPP 회원국은 중국과의 관계를 의식하고 있다. 결국 우리나라의 참여 여부가 CPTPP 확대 과정에 중요한 디딤돌이 될 수밖에 없다.

CPTPP 출범 이후 국내에서 가입 논란이 지속되어 왔으나 CPTPP 가이드라인 발표 이후 분위기가 미묘하게 변하고 있다. 가장 먼저 가입 의사를 밝힘으로써 다른 나라보다 유리하게 가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다수 산업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고 정부부처간 의견 차이가 큰 상황에서 가입국에게 일방적인 양보를 명시한 가이드라인은 CPTPP 가입 지지론자는 물론이고 통상당국에게 큰 부담을 주고 있다.

통상국가를 지향하는 우리나라가 아태지역 메가 FTA인 CPTPP에 가입해야 한다는 당위론은 일리가 있으나, 가입 조건이나 가입료를 무시하고 가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기에는 부담이 적지 않다. 일본 등 CPTPP 주도국들은 과욕에 따른 문제점을 인식하는데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나라도 시간을 갖고 현재의 대외통상환경에 따른 통상정책 방향을 새로이 정립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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