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성과는 없고 과정만 있는 국가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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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성과는 없고 과정만 있는 국가R&D

   
입력 2019-02-07 18:25

임주환 한국정보통신산업연구원 고문


임주환 한국정보통신산업연구원 고문

"출연연 연구과제 성공률이 99.5%라는 점은 바람직하지 않다. 실패를 당연히 여기고 도전적으로 과제를 진행해야 한다"고 문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대전 대덕특구의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을 방문해 말했다. 지난해 위험을 무릅쓰고 자체 개발한 우주시험발사체 발사에 성공한 연구진을 치하하는 자리였다.

정부 R&D과제가 1년에 5만 개정도 추진되는데 과제의 성공률이 무려 98%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성공률은 이렇게 높으나 진짜 쓸만한 연구결과는 거의 없는 형편이다. 그사이 출연연은 성공 가능한 과제만 수행하였고 어려운 과제에는 도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R&D 풍토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현행 R&D 연구비 지원 및 관리 체계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본다. 정부 R&D를 담당하는 출연연구기관의 경우 당초에는 연구비를 정부로부터 출연받았다. 출연은 말 그대로 기부를 뜻한다. 정부 예산을 함부로 기부할 수 없으므로 특별법을 만들어 출연연구소를 만들었고 연구소에다 '출연'이란 말을 붙인 것이다.

출연금은 보조금과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르다. 출연금은 기부금이기 때문에 사용 용도가 엄격하지 않고, 사후정산을 하지 않으며, 해당 집행 잔액은 출연을 받은 기관에 귀속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출연연구소는 출연받은 연구비를 최대한 아껴 쓰고 남는 예산을 모두 모아 자체적으로 모험적인 연구를 하거나 중요한 연구장비와 시설을 구축하기도 했다.


그런데 90년대 중반부터 출연금이 연구지원금 형태로 바뀌게 됐다. R&D 연구비가 정부예산 집행 방식을 그대로 따르게 된 것이다. 얼핏 보면 투명해 그럴듯하게 보이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든 문제가 여기서 출발한다. 정부예산 집행 방식에 따르다 보니 R&D 집행에 대한 관리는 비합리적일 만큼 촘촘하다. 세부 항목마다 한도가 정해져 있고, 그 한도를 초과해서는 안 되지만 남겨서도 안 된다. 과제 종료 2개월 이전까지 장비구입 등을 마쳐야 하기 때문에, 연말에 지자체가 예산 소진을 위해 집중적으로 보도블럭을 교체하듯이 연구비를 지출하고 있다. 은행이자를 포함해 쓰다 남은 예산은 1원도 남기지 않고 모두 회수한다. 현재 R&D 과제 평가에서 연구비가 남으면 불이익이 엄청 크다. 집행실적이 부진한 경우 불량과제로 평가되기도 한다.

과제 선정부터 관리에 공정성과 투명성만 강조하다 보니 과정에만 집착하고 성과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연구비 집행에 대한 감사원 감사가 동원되고, 규모가 큰 과제의 경우 예타까지 통과해야 한다. 여기에다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공무원의 관료주의가 더해진다. 연구는 근본적으로 불확실성을 다루는 일이다. R&D는 설계도에 따라 집짓듯이 진행될 수가 없다. 연구비 지출에도 불확실성이 매우 크다. R&D는 산꼭대기 올라가는 등산로를 새로이 개척하는 것과 같다. 아직 아무도 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어떤 장애물이 있을지 모른다. 산이 높을수록 불확실성은 더 커진다. 현재 우리나라 R&D는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려고 최대한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다. 높은 산은 쳐다보지도 않고 등산로가 눈에 훤히 보이는 야산만 목표로 하고 있다.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R&D 예산 규모는 올해 20조5,000억 원으로 늘어나는 등 경제 규모와 비교해볼 때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정부도 R&D 예산 20조 원 돌파에 한껏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실업 문제 등 여러 가지 경제 현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R&D 연구비를 늘린 것은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R&D의 최종 성과이다.

"정부는 간섭하지 않을 것입니다. 규제하지 않을 것입니다. 새로움에 도전하는 과학기술 연구자를 응원하고 혁신하는 기업을 도울 것입니다."라고 문 대통령이 말했다. 제발 이대로 실행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연구 자율을 허용하고, 연구자들을 너무 옥죄지 말고, 좀 믿고 맡겨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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