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政略이 낳은 혼돈의 `브렉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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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政略이 낳은 혼돈의 `브렉시트`

   
입력 2019-02-12 18:09

최진우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前 한국정치학회장


최진우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前 한국정치학회장

브렉시트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2016년 6월 23일 유럽연합(EU) 탈퇴 여부를 묻는 영국 국민투표에서 찬성 51.9%, 반대 48.1%로 탈퇴가 결정된 이래 영국 정치는 격랑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국민투표를 주도했던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사퇴했고, 조기총선의 승부수를 던진 후임 테레사 메이 총리는 기대와 달리 상당수의 의석을 잃으면서 국정운영의 동력을 상실하게 됐으며, 영국 사회는 브렉시트 찬반론 간의 끝없는 논쟁으로 극심한 진통을 겪고 있다.급기야 2018년 11월 25일 영국 정부와 EU 간에 어렵게 타결된 탈퇴협상안을 영국 의회가 2019년 1월 15일 압도적 차이로 거부찬성 202, 반대 432)함에 따라 이제 영국은 '노딜 브렉시트'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노딜 브렉시트란 영국과 EU 사이에 아무런 합의 없이 2019년 3월 29일로 예정된 탈퇴 시점을 맞게 됨으로써 양측 간의 교역, 인적 이동, 금융, 치안 등 각 분야의 협력 구도가 법적 근거를 상실하게 되는 상황을 일컫는다. 이러한 상황이 현실화되면 양측 간의 미래관계가 지극히 불투명해질 뿐만 아니라 당장 의약품을 비롯한 주요 생필품의 공급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고, 금융거래가 파행을 겪을 수 있으며, 항공 대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 또한 영국 거주 EU 시민들과 EU에 살고 있는 영국시민들의 지위가 불안해질 수도 있다. 적어도 중단기적으로 영국과 EU는 적지 않은 충격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왜 영국은 여기까지 왔는가? 도대체 왜 EU를 탈퇴하려 하는가?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평화·번영의 프로젝트인 유럽통합을 마다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두 가지 이유가 가장 크다. 민족주의 정서와 선거정치 공학이 그것이다.


영국은 현대 민주주의와 산업혁명의 발상지였고, 외교적으로 '영광스러운 고립'을 추구하는 유럽의 균형자였으며,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경영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유럽에서는 사실상 유일한 2차대전 승전국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영국은 스스로를 '유럽'의 일원으로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영국의 민족주의 또한 다른 서유럽국가들과는 양상을 달리 한다. 유럽 대륙에서 민족주의는 파시즘과의 연관성으로 2차대전 이후 정치 이념으로서의 정통성을 상실했다. 그러나 영국은 파시즘 통치를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다보니 민족주의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지 않았다. 민족주의가 하나의 이념으로서 터부시됐던 유럽 대륙과는 달리 영국에선 민족주의가 2차대전 승리를 가능케 한 성공한 이념이었다. 따라서 민족국가의 정체성에 대한 강조가 큰 거리낌 없이 수용될 수 있었던 것이다.

브렉시트라는 선택은 이러한 역사적·관념적 전통 속에서 잉태돼 왔다. 오랜 기간 유럽과 스스로를 차별화시켜온 영국인 상당수는 끊임없이 유럽통합을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봤다. 급기야 유럽통합의 진행과정 속에서 EU 회원국들로부터의 이민 유입이 급증하게 되자 국경의 통제와 국가 운명의 자기결정권을 내세우며 민족주의를 호출하게 됐다. 그 결과가 브렉시트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역사에 대한 집착과 향수가 과도한 민족주의적 성향과 결합될 때 배태될 수 있는 잘못된 선택의 극명한 예가 아닐 수 없다.

브렉시트의 보다 직접적인 계기는 영국 국내정치에 있었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실시 공약은 무엇보다도 2015년 보수당의 총선 전략으로서, 보수당 내 반(反)유럽 강경론자들의 성가신 요구를 잠재우고 총선에서의 전열을 가다듬기 위한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의 승부수였다. 유럽통합에 대한 논란이 수반하는 보수당의 분열을 봉합하고 선거 운동 역량을 결집하기 위해 총선을 치른 다음에 EU 탈퇴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말하자면 집권 연장을 위해 유럽통합 문제를 카드로 쓴 것이다. 그 결과는 데이비드 캐머런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탈퇴 찬성'이었다. 이로써 캐머런의 정치생명은 끝나고 영국 정치는 혼돈 속으로 걸어 들어가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돌이켜볼 때 브렉시트 사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자명하다. 국내정치를 위해 대외정책 카드를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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