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탁 ICT과학부 블록체인팀장
![[DT현장] 得보다 失 많을 인터넷 검열](http://contents.dt.co.kr/images/201902/2019021402102269041001[1].jpg?var=3835 "[DT현장] 得보다 失 많을 인터넷 검열")
"저 새는 해로운 새다." 과거 중국 대약진 운동 당시 마오쩌둥이 곡식을 쪼아먹는 참새를 보고 한 말이다. 이 말 한마디에 중국 전역에서 참새 박멸 작전이 이뤄졌고 참새가 사라지자 메뚜기를 비롯한 해충이 창궐했고 농작물은 초토화됐다. 결국 1958년부터 3년 동안 중국인 3000만 명 가까이가 굶어 죽었다. 현재 정부가 경제와 산업 생태계를 바라보는 관점, 이에 대응해 쏟아내는 정책 및 규제 수준이 마오쩌둥 못지 않다는 평가다. 특히 최근 정부가 무자비한 인터넷 검열 정책을 시행하자 주변이 시끄럽다. 명분은 좋지만, 결국 실리는 못 챙기고 역효과만 생기지 않을까 우려된다.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의 보안접속(https) 차단 정책을 반대하는 국민 청원이 청원 시작 하루 만에 10만명을 넘어섰다. 방통위가 불법음란물 및 불법도박 등 불법정보를 보안접속(https) 및 우회접속 방식으로 유통하는 해외 인터넷사이트에 대한 접속차단 기능을 강화한다고 발표한 것 때문이다. 이미 지난 11일부터 방통위는 통신심의를 통해 불법 해외사이트 895건을 차단하기 시작했다. 방통위에 따르면 지금까지는 보안접속 방식의 해외 인터넷사이트에서 불법촬영물, 불법도박, 불법음란물, 불법저작물 등 불법정보가 유통되더라도 해당 사이트 접속을 기술적으로 차단할 수가 없었다. 법 위반 해외사업자에 대한 법집행력 확보 및 이용자의 피해 구제에 한계가 있었다는 뜻이다.
그동안 불법정보를 과도하게 유통하는 일부 해외 인터넷사이트는 예외적으로 해당 사이트 전체를 차단해왔다. 기존에 당국이 사용하던 'URL 차단'은 보안 프로토콜인 https를 주소창에 쓰는 방식으로 간단히 뚫린다. 지난해 10월 도입된 'DNS(도메인네임서버) 차단' 방식도 DNS 주소 변경 등으로 우회가 가능하다. 이번에 방통위는 국내 7개 인터넷서비스제공사업자와 '서버네임인디케이션(SNI) 필드차단 방식'이라는 새로운 해외 사이트의 불법정보를 차단하는 기술방식을 협의했다.
SNI는 웹사이트 접속 과정에 적용되는 표준 기술을 가리킨다. 기술 특성상 이용자가 차단된 불법 인터넷사이트 접속을 시도할 때, 해당 사이트의 화면은 암전 상태로 표시되며, 해당 사이트는 불법으로 접속이 불가능하다는 불법·유해정보 차단안내나 경고 문구가 제공되지 않는다. 접속 과정에서 주고받는 서버 이름(웹사이트 주소)이 암호화가 되지 않고 그대로 노출된다.
문제는 SNI 필드차단 방식을 이용한 웹사이트 차단으로 정부의 인터넷 검열 및 규제 강도가 높아질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일부 관련 전문가들은 "SNI 필드를 차단하려면 정부가 기기 사이에 오가는 패킷(데이터 전송 단위)을 볼 수밖에 없다"며 "인터넷 이용자들이 누려야 할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또 '유해 사이트 차단'을 목적으로 암호화되지 않은 개인 정보를 감시하는 것에 대한 적절성 문제를 제기하는 의견도 있다. IT 전문 시민단체 오픈넷은 "암호화되지 않은 SNI 필드는 일종의 보안 허점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를 정부 규제에 활용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라며 "불법 사이트 차단 목적으로만 활용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는 마치 중국의 사례가 떠오른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중국은 인터넷 검열 시스템 '황금방패'를 통해 정보를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방화벽이 장대한 '만리장성'과도 같다며 '만리방화벽'이라고도 한다. 중국 정부가 민감하게 여기는 키워드는 황금방패의 검열 대상이다. 달라이 라마, 파룬궁, 천안문, 위구르, 민주주의 등이 대표 사례다. 이에 따라 중국의 자체검열이 어려운 구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 등 서비스도 차단되고 있다.
더구나 SNI 암호화 기술이 도입되면 이번 차단 조치도 간단히 무력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애초부터 한계가 뚜렷한 '미봉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미 일부 웹브라우저에 있는 SNI 암호화 기능을 켜면 정부의 이번 차단 조치를 우회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이트들이 이렇게 차단된다고 과연 음란물이 사라질까? 오히려 국민들의 '다크웹' 사용만 판 치게 만들 수 있다.
이에 대해 방통위는 SNI 차단방식은 암호화 되지 않는 영역인 SNI 필드에서 차단 대상 서버를 확인해 차단하는 방식으로, 통신감청 및 데이터 패킷 감청과는 무관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 같은 설명만으로 국민들의 불신을 해소하기에는 부족하다. 당장은 불법 정보 차단으로만 활용된다고 해도 얼마든지 다른 의도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IT 전문가는 "애초에 패킷을 중간에 가로챈 뒤 분석하는 것 자체가 불법인지 아닌지 그것부터 생각해볼 문제"라며 "SNI 감청기술은 TCP/IP 통신을 공부한 대학생 정도의 실력만 되도 만들 수 있는 만큼 불법이 아니라면 수많은 개발자들에게 해도 된다는 빌미를 주게 되고, 개발자가 누군가를 감청해도 처벌할 명분조차 없어지는 것 아니냐"고 우려를 표했다.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