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애ICT과학부 과학바이오팀장
![[DT현장] `극한도전 ITER 다국적팀`](http://contents.dt.co.kr/images/201902/2019022602102269650001[1].jpg?var=0638 "[DT현장] `극한도전 ITER 다국적팀`")
인간은 불가능해 보이는 난제 앞에서 종종 괴력을 발휘한다. 한계를 미리 규정하지 않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이들의 도전 덕분에 인류문명은 발전해 왔다.
다국적 연구조직, ITER(국제핵융합실험로) 팀 앞에 놓인 과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무겁다. 그들은 에펠탑 3개가 넘는 무게의 인공구조물 속을 태양계에서 가장 뜨거운 공간으로 만들어 태양 같은 항성 속에서나 일어나는 핵융합 반응을 연속적으로 일으켜 미래에너지를 얻는 도전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인류는 태양이 주는 에너지로 살아왔다. 석탄, 석유, 태양광, 풍력은 모두 태양이 지구에 준 것이다. 원자력발전의 연료인 우라늄도 태양 같은 항성이 만들어낸 것이다. 지구의 시작부터 있었던 이들 자원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인간이 직접 '인공태양'을 만드는 핵융합은 과거와 다른 차원의 에너지원이다.
세계 각국은 신재생에너지의 불안정성을 보완하면서 기저전력 역할을 할 에너지원으로 핵융합을 주목하고 있다. 핵융합의 강점은 온난화, 대기오염, 대형 폭발사고에서 자유롭고 연료가 무한에 가깝다는 것이다. 연료인 중수소와 삼중수소는 바닷물에서 얻을 수 있다. 삼중수소는 방사성물질이지만 반감기가 12년으로 짧아 방사능 위험도 적다. 발전효율도 획기적으로 높다. 바닷물 1리터에 중수소 0.03그램이 들어있는데 이 양만으로도 서울, 부산을 세 번 정도 왕복하는 300리터의 휘발유와 동일한 에너지를 낸다.
문제는 핵융합 현상이 엄청난 고온 고압환경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태양 중심부에서는 약 1400만도에서 핵융합이 일어나지만 중력이 낮은 지구에서는 1억5000도의 초고온이 필요하다. 태양계에서 가장 뜨거운 공간을 인간이 만드는 것이다. 성공 가능성이 보장되지 않은 도전이다.
이 때문에 ITER는 출발부터 극적이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미하엘 고르바초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냉전시대 종식의 서막을 연 1985년 11월 제네바 미·소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핵융합을 올렸다. 만남을 이어가며 핵무기폐기협정 체결 등 냉전 종식을 이끌어냈지만 핵융합은 첫 회담에서 '핵융합 연구개발 공동성명'을 채택하며 바로 협력을 시작했다. 에너지 문제의 시급성에 대해 국제사회를 이끄는 두 정상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이후 1988년 ITER가 공식 출범하고 총 7개국이 참여하면서 2010년 ITER 건축물 기공, 2013년 핵융합실험로 건설 착수로 이어졌다. 회의론자들도 있지만 세계 각국은 핵융합을 학술적 연구가 아닌 실질적 에너지원이란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유럽과 일본은 ITER 가동 후 2050년대에 핵융합으로 전기생산까지 하는 실증로를 건설할 계획이다. 우리나라는 한국형 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 'KSTAR'로 플라즈마 이온 온도를 1억도까지 높이는데 성공하고 ITER 건설을 주도하고 있다.
2025년 ITER가 가동되면 핵융합은 새 장을 열게 된다. 계획대로라면 2028년 제 성능을 내기 시작해 2037~2038년에는 투입 에너지의 10배를 생산하는 목표성능에 도달하게 된다.
모든 지식과 과학성과를 총집결해 난제를 푸는 과정에서 인류는 또한번 진화할 것으로 확신한다. 물리이론이 새로 쓰이고 인공지능과 증강현실, 빅데이터 같은 첨단 디지털 기술이 총동원될 것이다.
최근 방한한 이경수 ITER 국제기구 사무차장은 "핵융합은 이제 구석기를 지난 신석기로, 앞으로 청동기를 거쳐 철기를 열 것"이라면서 "폭발적 기술 진화에 힘입어 누군가 철기를 발명하면 게임이 끝나고 모든 에너지 문제가 정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글, 애플, MS 같은 혁신기업들은 이미 ITER 진척상황을 주목하면서 투자기회를 엿보고 있다. 기술 불확실성이 거의 해소되는 약 10년 후에는 각국 정부와 거대 기업들이 상용화 경쟁을 시작할 것이다. ITER는 달탐사나 화성탐사보다 어렵지만 성공 시 얻는 게 훨씬 크다. 지구자원을 넘어선 에너지를 스스로 발명함으로써 인류는 문명의 새 지평을 열 것이다.
그동안 소수 천재의 발명과 혁신이 세상을 바꿔왔다면 앞으로는 다를 것이다. 우주시대를 열고 생존과 직결된 환경, 식량, 에너지 문제를 푸는 것은 뛰어난 한 개인이나 국가의 힘만으론 힘들다. 더 어렵고 복잡한 과제 앞에서 국제공조의 필요성은 갈수록 커질 것이다.
ITER 다국적팀의 성공 스토리가 인류 역사에 큰 족적으로 남기를 기대하고 응원한다.
안경애ICT과학부 과학바이오팀장 naturean@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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