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목 칼럼] `이념외교`로는 北核해결 못한다

메뉴열기 검색열기

[최원목 칼럼] `이념외교`로는 北核해결 못한다

   
입력 2019-03-07 18:09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하노이 제2차 미북 정상회담이 '빅딜'(핵무기 폐기, 대북제재 해제)도, '스몰딜'(핵동결, 제재완화)도 아닌 '노딜'로 끝났다. 이 회담에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취한 태도는 시사하는 바가 많다. 많은 사람들이 국내정치적 위기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이 스몰딜이라도 수용해 북핵문제의 진전을 이루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측했다. 청와대는 국제사회에 스몰딜 분위기를 띄워놓고 대북 경제협력에 박차를 가할 실무적 준비까지 갖추느라 분주했다.


그 사이 정작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의 오찬 및 공동성명 서명식을 취소한 뒤 협상장을 나와 버렸다.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백악관 브레인들은 북한의 핵무기 완전폐기라는 유토피아적 목표를 실무정책 목표로는 설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북한체제에 대한 실질적 안전보장 조치 없이 경제제재 해제라는 당근만으로는 북한이 수 세대에 걸쳐 이룬 핵보유국 지위를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영변핵시설 파괴에 덧붙여 북한이 받아들일 수 없는 추가적 요구사항을 내밂으로써 빅딜로 만들어 협상자체를 결렬시키는 수순을 밟은 것이다. 그래서 협상결렬의 책임을 북한측에 전가할 수 있고, 스몰딜 타결보다는 결렬이 미국의 전반적 국가이익에 부합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 첫 번째 이유는 더 이상 미국과의 협상테이블에 스몰딜을 올릴 수 없다는 점을 북한은 물론 국제사회에 각인시킴으로써 공을 먼저 상대방 코트로 던져 넣었기 때문이다. 경제제재를 당하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수세적 입장에서 시간에 쫓기며 후속협상에 임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둘째,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미중 통상협상에서도 미국의 입지를 강화해준다. 이미 중국은 1300조원 규모의 미국산 제품을 구매해주고 지재권 보호와 기술이전 강요 관행을 시정하는데 합의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이러한 합의사항들을 중국측이 성실히 이행하지 않는 경우 미국이 취할 수 있는 제재방식에 관한 줄다리기가 진행 중이다. 또한 서비스 시장개방과 환율 투명성 보장 문제도 막판 난제다. 하노이에서의 트럼프식 협상방식의 시현은 중국에 대해서도 언제든지 막판에 협상장을 박차고 나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효과가 있다. 셋째, 한국정부에 던지는 메시지도 있다. 섣부른 한반도 운전자론이나 성급한 대북한 경제협력 시도에 찬물을 끼얹고, 1년 단위로 갱신될 한미 방위비 분담협상에서 한국정부 측의 대폭 양보를 압박하는 효과도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전략에는 북한 핵문제 해결과 같은 장기적인 난제는 후순위 과제임을 보여준다. 겉으로는 이 과제를 크게 띄워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켜 놓고, 다른 선순위 이익을 얻어내는 레버리지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무역적자 해소, 해외시장 개방, 미국 제조기술 보호, 동맹국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이 트럼프 외교의 선순위 목표다. 북한 핵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보다는 미국 본토에의 위협을 적절히 관리하는 수준에서 위험을 관리하면서 말이다. 이러한 게임의 상대국들인 북한 중국 한국의 정부가 북한 핵문제 해결에 부여하는 정치적 가치와 조급성이 크면 클수록, 이러한 미국의 전략은 잘 먹힌다.
북한으로서는 어차피 핵문제 해결의 가치를 한껏 키울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으나, 한국의 국가이익은 그렇지 않다. 어차피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는 난제인 만큼, 핵문제에 성급히 올인하는 대가로 잃는 실리를 항상 계산하며 문제를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마땅하다. 그것이 진정으로 한반도 문제를 우리가 운전해나가는 길이며,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국가가 헤쳐 나가는 삶의 길이다. 하노이 회담의 결렬을 전후한 우리정부의 대응은 치밀한 분석이 아닌 '막연한 기대'(wishful thinking)에 기대고 있고, 그러한 모습을 게임 상대국들에게 고스란히 내비치고 있는 아마추어적 외교의 모습이다. 냉엄한 국제사회 속에서 먹히지 않는 이념외교의 한계도 보여준다.

중국도 궁극적으로는 북한 핵문제의 해결을 원하고 있기는 하나, 그 대가를 대신 지불해주거나 북한을 강압하여 해결하는 수순을 밟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모두가 실제로는 장기적 위기관리 차원에서 북핵문제를 접근하며 경제적 실리를 챙기고 있는데, 우리만 비핵화와 남북경제협력의 장밋빛 미래에 자아 도취해 회수가능성이 불확실한 투자에 정말로 올인하고 있는 셈이다.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