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美·北 합의 실패, 영향력 커지는 중국

메뉴열기 검색열기

[시론] 美·北 합의 실패, 영향력 커지는 중국

   
입력 2019-03-11 18:02

박승준 아시아 리스크 모니터 Inc. 중국전략분석가


박승준 아시아 리스크 모니터 Inc. 중국전략분석가
핑샹(憑祥)시는 중국과 베트남의 접경도시다. 중국 광시(廣西) 장족자치구의 수도 난닝(南寧)에서 베트남으로 가는 국제열차를 타고 열차가 핑샹시에 도착하면 승객들은 일단 내려야 한다. 중국 쪽은 우리와 마찬가지 폭의 광궤 철로가 깔려있지만, 베트남 쪽에는 폭이 다소 좁은 협궤 철로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핑샹에서 내린 승객들은 베트남 입국 수속을 밟은 뒤 베트남 쪽의 동당(同登)에서 협궤열차로 옮겨 타고 하노이(河內)로 가게 된다. 하노이로 가다보면 박닝(北寧)을 통과하게 된다. 중국과 베트남이 국경을 사이에 두고 중국 쪽에는 난닝(南寧)이란 도시가 있고, 베트남 쪽에는 박닝(北寧)이란 도시가 있다는 점은 상징적이다. 역사적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부담스러운 존재였다는 점이 그런 지명이 생겨난 이유일 것이다.


핑샹시 인민정부는 지난달 26일 인민정부 웹페이지에 이례적인 발표를 했다. "핑샹시 경찰이 인터넷 네트워크 순찰을 도는 도중, 일부 네티즌들이 사실과 다르고, 과격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공공질서를 교란할 가능성이 있는 내용의 글을 올려놓은 것을 발견하고 수사를 해서 4명을 체포했다." 그들의 이름은 장(張),리(李), 황(黃), 황(黃) 등 4명으로 "이들 가운데 장 모는 2월25일 20시쯤 '모 국가의 영도인(領導人)을 살해하려고 하는데 뜻을 같이 할 동지들을 구한다'는 내용의 글을 웨이신(微信)에 올린 혐의로 체포돼 구류 10일의 처벌을 받았다"고 핑샹시 인민정부는 밝혔다. 나머지 3명도 "폭파, 방화, 위험물질 투척 등의 글을 올렸다가 체포돼 구류, 벌금 등의 처벌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핑샹시 인민정부는 한국언론들이 이 사실을 "김정은에 대한 살해 위협이 있었다"고 보도한 후 글의 제목만 남기고 내용은 삭제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중국인들의 SNS 웨이신에는 해당 내용이 여전히 떠있다.


핑샹시 인민정부가 김정은에 대한 위해 내용을 담은 글을 사전에 적발해서 웹페이지에 공개한 사실은, 두말할 것도 없이 중국 정부와 당의 상부조직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핑샹시 인민정부가 김정은 살해를 부추기는 내용의 SNS 메시지를 검열해서 글을 올린 4명을 체포, 처벌한 것은 일단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김정은·트럼프 하노이 회담에 대한 대처 전략이 "일단 김정은을 보호해서 조미(朝美)회담에 참석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과시하는 것"임을 알게 해주었다. 물론 처벌 내용을 보면 실제 음모라기 보다는 장난끼 어린 글 올리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외교부 루캉(陸慷) 대변인은 2월 26일 뉴스 브리핑을 통해 "이번 하노이 회담에 중국은 어떤 기대를 갖고, 어떤 역할을 했느냐"는 질문에 "한반도 문제에 대한 우리 중국의 입장은 '반도의 비핵화 실현'과 '동북아의 평화안정'이며, 이번 조미회담은 그런 방향으로 진행됐다"고 말하고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을 통과할 때 우리가 제공한 것은 교통 방면의 보장이었다"고 밝혔다. 루캉 대변인은 이틀 뒤의 브리핑에 나와서는 "제2차 조미회담이 곤란에 부딪쳤는데 앞으로 중국은 어떤 역할을 하려고 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했다. "방금 어떤 기자들은 조미회담이 이미 실패했다고 말하고, 일부에선 좌절에 부딪혔다고 말하는데, 그 정황에 대해서 우리는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 형세의 발전에 우리의 진일보한 노력이 필요하게 됐다는 점을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28일 하노이 회담 결과를 설명하러 베이징(北京)에 온 이길성 북한 외무성 부상에게 좋은 말은 다 동원해서 위로를 했다. "이번 하노이 회담을 통해 국제사회가 알게 된 것은 조미간의 담판이 이제 배를 띄울 수 있을 정도의 깊은 물에 도달했다는 점이다. 중국에는 '호사다마(好事多魔)'란 말이 있다. 신념과 인내심을 갖고 계속 노력하면, 우리 중국도 계속해서 건설적 작용을 하기 위한 노력할 것이다."

트럼프와 김정은 사이의 하노이 2차 정상회담의 돌연한 파국이 트럼프의 국내정치 문제 때문이든, 북한 외교팀 수뇌부의 판단 잘못 때문이든, 분명해진 것은 북한 핵 문제의 해결을 '북한의 비핵화'가 아닌 '한반도의 비핵화'로 드라이브 해 온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는 국면으로 전환됐다는 사실을 우리 외교당국은 계산에 넣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