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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화 칼럼] 탈원전 폐기, 改宗보다 어려우랴

이규화 기자   david@
입력 2019-03-12 18:07

이규화 논설실장


이규화 논설실장
"하느님은 일요일이면 내 왕국의 모든 국민들이 닭고기를 먹길 원하신다." 피비린내 나는 종교전쟁을 끝낸 프랑스 왕 앙리4세가 한 말이다. 닭이 프랑스의 상징이 된 데는 앙리4세의 애민정신이 깃들어있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라면 이렇게 말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천주님은 아침이면 내 나라의 모든 국민들이 맑은 공기를 호흡하길 원하신다."


하지만 그걸 기대하는 것은 힘들 겠다는 생각이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탈원전'은 신앙에 가깝다. 이성과 과학이 아니라 감성과 믿음의 영역에서 형성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탈원전이 얼마나 반이성적이고 비경제적 행위인지 과학적 데이터와 근거를 대며 설명해도 꿈쩍하지 않는다. 사상 최악의 미세먼지(초미세먼지 포함) 공습 속에서 온 국민이 먼지지옥에 휩싸여 헉헉대는데도 미세먼지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원전 가동 확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다.
'탈원전'을 폐기해야 하는 이유는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세 가지만 들어보자. 첫째, 미세먼지를 전혀 발생시키지 않는다. 현재 이보다 더 강력한 이유는 들 수 없다. 둘째 산업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비용합리적인 발전방식을 택해야 한다. 정부는 탈원전과 함께 탈석탄을 추진하며 발전연료로 LNG를 늘리고 있다. 한전 전력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18년 10월 기준 연료별 kwh당 단가는 원자력 58.2원, 유연탄 70.7원, LNG 117.1원이다. 석탄발전소를 LNG발전소로 전환하면 전기료는 오를 수밖에 없고 산업경쟁력은 그만큼 후퇴하게 된다. 중국은 2030년까지 원전을 100개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고 전력수요의 20%를 원전으로 충당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동해안(황해안)에 집중 배치하는 원전의 위험성을 차치하고라도 우리보다 에너지를 반값에 쓰는 중국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된다.

탈원전을 폐기해야 할 세 번째 이유는 위험하기 때문에 탈원전 해야 한다는 주장이 허구이기 때문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2016년 말 현재 세계에서 가동 중인 원전은 448개다. 1954년 소련 오브닌스크 원전이 최초로 가동된 이래 65년 동안 유의미한 원전사고는 단 세 번 일어났을 뿐이다. 1979년 미국 스리마일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운전원의 조작 실수로 인한 냉각재 상실로 노심용융이 발생했지만 원전 내부에서 통제돼 인명피해가 없었다. 1986년 4월 26일 일어난 소련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재앙이었다. 화재 진압에 동원된 소방수 등 수 천명이 수년 내에 방사능 피폭으로 사망하고 33년이 흘렀는데도 반경 수십 km 이내에는 사람의 접근을 막고 있다. 그러나 체르노빌 사고도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다. 체르노빌 원전은 만약의 사고에 대비한 격납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국내 원전은 1m 이상 두께의 시멘트 벽으로 이중삼중 격납된다. 8년 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원전 사고는 쓰나미 침수로 전력 공급이 중단되면서 노심이 과열돼 일어났다. 방사능이 누출됐고 10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다. 그러나 후쿠시마도 침수 방벽을 충분히 높이 쌓았더라면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65년 역사에서 단 두 번의 사고에 그쳤다는 것은 위험도가 낮다는 것이며 통제 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원전 위험을 과대 포장하는 것은 항공기 이용과도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항공사고가 일어날 확률은 극히 낮지만 일단 발생하면 치명적이기 때문에 공포를 자아낸다. 며칠 전 에디오피아항공 추락 사고처럼 탑승객 전원이 사망하고 세계적으로 큰 뉴스가 된다. 하루에도 수백만명이 항공여행을 한다. 치명적 위험이 있지만 통제 가능하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원전도 마찬가지다. 한국 원전은 지난 40여년 동안 단 한 건의 방사능 유출 사고도 없었다.
이제 탈원전 정책은 폐기해야 한다. 문 대통령과 정부가 퇴로를 원한다면 국민이 찾아줄 수 있을 것이다. 가장 괜찮은 방법은 탈원전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이다. 내년 4·15 총선이 기회다.

앙리4세가 신앙의 혈투극을 끝내기 위해 생각해낸 것은 자신이 '개종'(改宗)하는 것이었다. 스스로 신교에서 구교로 개종하며 적을 친구로 만들었다. 신앙의 자유를 가져온 낭트칙령은 이렇게 탄생했다. 앙리4세의 결단은 종종 사회적 갈등 해소를 위해 인용되는 대표적 교훈이다. 탈원전은 나라경제를 결딴내는 종교전쟁 버금가는 비극이자 소극이다. 문 대통령의 '개종'을 기대한다. 그러지 않으면 탈원전은 집권세력이 꿈에도 두려워하는 탈정권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설마 탈원전 폐기가 개종보다 어렵겠는가.

이규화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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