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적인 젠트리피케이션… 멀쩡했던 골목 다 죽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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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적인 젠트리피케이션… 멀쩡했던 골목 다 죽였죠"

김미경 기자   the13ook@
입력 2019-03-13 18:17

3년 전만 해도 '젊은이의 거리'
이젠 때묻은 현수막만 너풀너풀
골목 초입 폐점만 30여곳 달해
권리금 없애도 유입 없는 상황
인기 맛집도 매출 3분의 1토막





풀뿌리상권 살려내자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의 장탄식

누런 때가 묻은 유리창 너머로 희미한 카페 바닥엔 쓰레기와 우편물이 나뒹굴었다. 야외 테라스로 쓰였을법한 공간에는 버려진 테이블 몇 개와 의자가 뽀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먼지의 두께가 그 테이블의 버려진 시간을 말없이 대변한다. 분명 하얀 벽에 갖은 꽃이 폈던 작은 정원이 딸린 카페였으리라.

간판이 걸렸었을 자리엔 빨간색 현수막이 걸려있다. '임대문의' 옛 카페의 새 이름이 됐다.

2019년 3월 11일 오후 3시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경리단길의 풍경이다. 디지털타임스가 연간 기획으로 진행하는 '풀뿌리상권 살려내자' 캠페인 진행차 찾은 길이었다. 경리단길은 도대체 얼마나 망가졌고, 우리는 과연 이 경리단길을 살릴 수 있을까? 바로 이번 취재의 미션이었다.

현수막조차 때가 묻어있었다. 카페 옆에 있던 디저트 가게는 아예 간판도 떼버렸다. 매장 외벽 페인트는 곳곳이 벗겨져 맨살을 드러냈다. 공포영화에 나올 법한 폐가가 연상될 정도로 스산했다. 건물 1층에 있는 상가는 1곳만 빼고 모두 문을 닫았다. 상가 우편함에는 몇 달 치가 쌓인 듯한 우편물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정말 폐가가 됐구나' 싶어 몸을 돌리려는 순간, 마침 우편물을 배달 중이던 집배원과 마주쳤다.

집배원 이성연(36)씨는 "이 건물 1층에 있던 상점들은 문 닫은 지 6개월에서 1년 정도 됐다"면서 "등기 우편물을 배달하지 못해서 그냥 돌아간 적도 많다"고 했다. 절로 '아~!' 하는 한탄이 나왔다.

불과 2017년 무렵만 해도 경리단길은 서울의 명소였다. 오후만 되면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거리를 누볏다. 팔짱을 낀 젊은 연인들은 꽃을 찾는 나비처럼 예쁜 식당을 찾아 헤맸다. 골목은 매일 저녁이면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반짝였다. 이태원 거리에 인접한 경리단길에는 특히 이국적인 맛과 풍취를 자랑하는 특색있는 식당, 카페가 즐비했다. 하나 건너 하나가 젊은이들의 SNS의 머리기사가 됐었다. 말 그대로 '핫 플레이스'의 대명사였다.

그런데 불과 2년여만에 경리단길은 그저 그런 골목으로 전락했다. 아니 빈 가게가 그대로 노출돼 속살을 드러내 흉물스러울 정도였다. 2~3집 걸러 한 곳씩은 '임대'한다는 안내문이 붙었다.

"그런 말 하려거든 그냥 가세요. 할 말도 없고, 달갑지도 않아요" 지난 8일 낮 12시쯤 찾은 경리단길 중턱에 위치한 A공인중개사무소 대표의 말이다. "최근 경리단길 상권은 상황이 어떠냐?"며 기자라 신분을 밝혔더니 이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손사래부터 친다. "신문이고 방송이고 요즘 경리단길 어렵다는 이야기만 하니 사람들이 더 찾아오겠어요? 안 그래도 죽어가는 상권을 더 죽이는 게지!"

공감이 가는 말이다. 그만큼 '핫 플레이스' 시절 경리단길을 아는 이에게 경리단길의 몰락은 가슴을 멍하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골목을 더 올라가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오전 10시부터 장사를 시작한다는 빵집은 낮 2시에도 굳게 문이 닫혀있었다. 문에는 도시가스 안전점검을 하러 방문했다가 허탕을 쳤는지 연락을 달라는 공지가 붙어 있다. 빵집 근처에 하얀 벽돌로 지은 2층짜리 건물은 문을 닫은 지 족히 몇 달은 지난 것 같은 분위기를 냈다. 경리단길 초입에서 300여m를 걷는 동안 문 닫은 점포만 30여곳에 달했다.

현장에서 경리단길 상권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최소 30곳 평균 매출이 연 10억이었고, 고용원이 4명이었다고 단순 가정해도 지역에서 연 300억 원 매출이 사라졌고, 120명이 일자리를 잃은 것이다. 주변의 상가가 문을 닫아도 아직 영업을 하는 곳은 마지막 희망을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이었다. 특히 상권이 죽고 사람이 찾지 않는 곳이 됐다는 이미지가 굳어질까 우려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경리단길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홍모(32)씨는 "사람이 없는 건 미세먼지나 계절 탓"이라며 "다른 집은 잘 모르겠지만 저희 카페는 손님이 없진 않다"고 했다.

편의점 점주인 이모(55)씨는 "사람이 없다 없다 하면 더 없어질 거 아니냐"면서 "그런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이씨는 곧 "사실 1년 전부터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다"며 "체감으로는 30~40% 이상 줄어든 것 같다"고 털어놨다.


경리단길에서 1997년부터 꽈배기를 만들어 팔고 있다는 조정순(57)씨는 "한창 사람이 많고 잘 팔릴 때는 하루에 300개도 팔았다"고 했으나 "최근에는 100개 정도로 줄었다"고 했다.

경리단길의 유명 맛집 중 하나인 '문오리'에도 여파가 미쳤다. 홀매니저인 정인권(26)씨는 "손님들이 많을 때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장 밖에서 기다리실 정도로 많이 와주셨다"면서 "요즘에는 예전에 비해 손님들이 확실히 줄었다. 주변에 문 닫은 식당들도 꽤 된다"고 설명했다. 최근 문오리의 매출은 최고치를 기록했을 때와 비교해 30~40%가량 줄었다고 한다.

경리단길 몰락의 주범으로 모두가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꼽는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아무도 찾지 않던 곳을 특정 카페들이 유명해지면서 인기를 끌면 상가 주인들이 월세를 올려 카페 경영자를 내쫓는 것을 말한다.

실제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세청·국토교통부·한국감정원 등으로부터 자료를 받아 서울 주요 상권 임대료 추이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지난 2015년 상반기부터 2017년 상반기까지 2년 동안 임대료가 가장 크게 오른 상권은 경리단길이었다. 경리단길 임대료는 이 기간 동안 10.16% 상승했다. 성수동은 6.45%, 홍대는 4.15%, 가로수길 2.15% 상승한 것과 비교하면 2~5배 가량 되는 셈이다. 임대료 평균 금액도 전국 평균의 3배나 됐다. 물론 건물주만 나쁜 게 아니다. 권리금을 노리고 상권을 띄우기만 하는 일부 젊은 카페 경영주들도 문제다. 이들은 경리단길 상권이 뜰 무렵 일찌감치 권리금만 챙겨 떠났고, 권리금과 월세 분쟁만 남겨놓았다.

상권이 내림세를 보이면서 임대료도 같이 내리고 있고, 고공행진을 하던 권리금도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이 곳을 찾던 소비자들의 마음은 이미 차갑게 식은 지 오래다. 부동산시장 전문 분석업체인 리얼캐스트가 지난달 27일 발표한 수도권 주요지역 상업시설의 공실률(지난해 4분기 기준)을 보면 경리단길을 포함한 이태원의 공실률은 21.6%로 가장 높았다.

C공인중개사무소의 대표 D씨는 "최근 임대료가 큰 폭으로 내렸지만 상가를 새로 임대받으려는 사람이 별로 없다"면서 "한 매장은 700만원까지 치솟았던 임대료가 350만원까지 떨어졌지만 아직도 비어 있다"고 했다. 용산구는 어떻게든 돌아선 소비자의 마음을 되돌리려 노력하고 있다. 내년 연말까지 경리단길을 '다시 찾고 싶은 거리'로 조성하기로 하고 총 사업비 18억원을 투자키로 했다. 보도를 넓히고 거리도 정비한다. 해방촌 내 신흥시장을 활성화 시켜 젊은층을 다시 잡을 계획이다. 또한 건물주와 공인중개사, 세입자 등이 참여하는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자정결의대회도 검토 중이다.

김미경·임재섭기자 the13ook@dt.co.kr

사진=박동욱기자 fufus@



●글 싣는 순서

1부. 풀뿌리상권이 경제 근간이다
(상) 1.뿌리째 흔들리는 풀뿌리상권
2.상권변화에 휘둘리는 '경리단길'

(중)정책-현장, 괴리부터 없애자

(하)선진 외국서 배운다 (일본르포)

2부. 풀뿌리상권 현장을 가다

3부. 희망의 노래를 부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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