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인문학] 성냥갑 아파트는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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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인문학] 성냥갑 아파트는 가라

   
입력 2019-03-14 18:10

김종규 성균관대 하이브리드미래문화연구소 연구위원


김종규 성균관대 하이브리드미래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인간이 거주하는 공간 중에서 가장 역동적인 곳은 도시일 것이다. 산업혁명 이래 도시는 사실상 산업혁명의 변화를 뒷받침하고 견인해 왔다. 도시는 산업혁명의 중심지이자, 그 변화를 이끈 주체들의 생활 터전이기도 하였으며, 이 변화들의 흐름이 느려지고 정체될 때 산업 생산의 잉여들을 흡수하는 역할도 수행하였다. 이를 위해 도시 공간은 그 외형의 변신을 지속적으로 요구받아 왔다. 우리 사회의 도시 공간 역시 이 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의 도시 역시 산업과 거주 그리고 잉여자본과 생산물의 끝없는 흡수를 위해 지속적인 외형의 변신을 요구 받아왔다. 이것이 집약적으로 이루어진 시대를 우리는 개발시대라 부르기도 하였으며, 특히 우리의 삶 영역에서 이루어졌던 이 변화들은 작가 조세희에 의해 아프도록 생생하게 그려지기도 하였다. 그의 책이 200쇄를 넘겨 지금껏 읽히고 있는 것은 그러한 과정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음을 너무도 명확히 보여준다.


우리의 거주 양식 역시 변화의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개발시대 이래로 르 코르뷔제의 거주기계는 우리 주거 공간 곳곳에 그 영향력을 높여 왔고, 이 양식은 이제 우리 도시 경관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이른바 유니떼(Unite) 형식으로 지어진 대형의, 그리고 고층의 아파트들은 산과 강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저마다의 이름표와 가격표가 붙어 있으며, 때로는 그 이름으로 때로는 그 가격으로 전쟁 같은 긴장감과 갈등도 생겨나곤 한다. 하지만 그 너머에서 이 경관은 자신의 비슷비슷한 외형들을 통해 도시에서 영위되는 삶의 일반성과 지루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아파트에서의 삶을 폄훼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설혹 내가 그 삶을 폄훼한다고 해서 폄훼될 것도 아니다. 이 기계 성능의 우수성은 나뿐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그 기능을 넘어 우리 거주 기계들의 획일성은 그저 우리만의 특수성이나 독특함으로 간주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도시 경관의 다양성 회복은 어느 도시에서나 늘 중요한 문제였으며, 최근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서울시의 블록형 아파트 조성계획 역시 동일한 목적과 의도에서 마련된 것이다. 물론 이 계획의 방점은 공공성 강화를 위하여 서울시의 개입을 확대하는 것에도 있지만, 소규모의 저층 아파트 블록을 통해 대규모 개발이 초래해 온 획일성을 벗어나 도시의 다양성과 활력을 회복하겠다는 의도에도 방점이 찍혀있다. 경관의 다양성을 조성하고 이를 위해 지방정부의 역할을 확대하여 공공성을 강화한다는 계획은 분명 개발시대를 주도해온 이념들보다 진일보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한편으론 우려 역시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 충분한 정보가 아직까지 제공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외적 경관의 변화에 중심을 둔 계획은 자칫 진정한 도시 다양성의 회복이라는 시대적 과제의 의미를 소홀히 여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규모 블록형 아파트 단지는 유럽에서 스마트시티 정책과 연관되어 시도 중이다. 몇몇 곳에서는 이미 이 같은 소규모 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이렇게 조성된 단지들은 외형적으로도 독특한 형태를 갖추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 단지 조성에서의 중점은 그 외형과 도입된 첨단 기술에 놓여 있지 않다. 오히려 정책의 중점은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구체적 삶 그 자체에 놓여 있다. 이들의 도시 개발정책은 인간 삶의 다양성 회복을 위한 시간 정책의 우위를 토대로 구상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이해하고 있는 스마트의 진정한 의미이기도 하다. 스마트는 외형과 기술을 통해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실존적 삶 내면에서 비로소 펼쳐지는 것이다. 진정으로 스마트해져야 하는 것은 도시의 외적 기능이 아니라 인간 삶 그 자체이다.
여러 도시들이 앞 다투어 추진하고 있는 스마트시티 사업처럼, 서울시의 이번 계획도 단지 외형의 변화에만 그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외부환경의 변화에 대한 영향을 우리는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은 환경을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결정론적 존재는 아니다. 이러한 점에서 도시의 외형적 변화는 도시의 진정한 활력과 다양성 회복을 위한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 그것은 오직 도시 내에서 그 자신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구체적인 사람들의 삶 속에서 획득될 수 있을 뿐이며, 따라서 이 회복은 외형의 변화만큼이나 삶의 내적 조건 변화 역시 요구한다. 정책의 심도에 방점을 두어야 하는 이유이다.

이러한 요구는 서울시의 이번 계획이 처음으로 마련된 것은 아니라는 점과도 연관되어 있다. 소규모 블록형 아파트 단지 조성은 이미 10여 년 전 연구용역까지 거쳤던 계획이었으며, 어떤 이유에서인지 흐지부지되었던 계획이기도 하다. 좋은 계획은 시간이 지나도 다시 추진되는 것이 맞다. 다만 그것이 이번에도 계획에만 머물지 않았으면 한다. 이 계획이 과거의 단순한 반복이 아닌, 새로운 것이 될 수 있으려면 그 속에는 인간의 실존적 삶에 대한 많은 고민들이 포함되어야만 할 것이다. 이것은 인문학에 대한 시대적 요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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