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함 칼럼] 정치인이 한국 민주주의 죽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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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함 칼럼] 정치인이 한국 민주주의 죽이고 있다

   
입력 2019-03-14 18:10

양승함 前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양승함 前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5·18망언 사태에 이어 한 야당 원내대표의 국가원수를 조롱하는 발언에 이르기까지, 정치인들의 극단적이고 선동적인 언행들이 끊이지 않고 벌어지고 있다. 이들을 국회 윤리위원회에 회부하고 의원직에서 제명해야 한다는 여당의 반응 또한 극한적으로 치닫고 있다. 이들은 진실 여부를 규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최대한 비방하고 폄훼하여 말초신경을 자극함으로써 쾌감을 느끼고 자신들의 진영으로부터 지지와 결속을 획득하는 데만 급급하고 있다. 한국 정치의 갈등 양상은 그 정도를 넘어 사실상 치유 불가능한 수준으로까지 첨예화되고 있다. 이들은 경제 침체와 미세 먼지 등의 재난을 어떻게 극복해야하는가에 대한 국정운영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로지 책임 전가와 상대방 헐뜯기에만 치중하여 국회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국민을 분열시켜 자기 진영 쌓기에만 골몰하고 있다.


정치인들의 무분별한 사리사욕과 권력 추구 현상은 절정에 다다르고 있다. 이해충돌 방지 원칙을 범하고도 적반하장 격 반응을 보이고 있는 가하면, 한국유치원총연합회 등과 같은 집단이기주의에 편승하려는 정치인들도 있다. 이들은 도덕적 수치심을 느끼기는 커녕 온갖 논리로 자기 행동의 합리화에 여념이 없다. 이들에게 국가이익과 국민 복지가 눈에 들어 올 리 없다. 오히려 사회균열 구조에 편승하여 갈등을 확대 재생산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이익만을 추구한다.
정치인들이 사회갈등을 치유하지 않고 오히려 증폭시킴으로서 사적이익을 챙기는 행태는 한국정치에 뿌리 박혀있다. 지역주의 갈등을 부추겨서 선거에 이용한 '부산복집'사건은 유명하다. 최근 들어 지역주의가 완화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오로지 국민들의 정치의식이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지역갈등이 감소되니까 활로를 찾은 것이 이념갈등이고, 또 다른 사회균열구조를 찾아 정치마케팅을 하고 있다.



이념갈등은 정치인들에게 이미 황금어장이 되었다. 어느 쪽에만 확실하게 줄 서면 의원직 하나는 떼어 놓은 당상이다. 촛불이든 태극기이든 확실하게 잡는 것이 중요한 세상이 되었다. 이성을 갖춘 중도 또는 중립은 설자리가 없을 정도로 세상은 각박해졌다. 이렇게 정치적 갈등이 극단에 이르게 된 것은 사회균열구조가 복합적으로 형성되어 있기보다 단순하게 이분화 현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념을 중심으로 지역, 계층, 세대, 양성의 갈등양상들이 대략적으로 중첩되어 있다. 보수, 영남, 기득권층, 노년층, 남성 대(對) 진보, 호남, 서민층, 젊은층, 여성으로 전열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그 갈등양상이 복합적이고 다른 사회보다 매우 심각하다.
이와 같은 정치적 양극화는 민주주의 제도들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장기화되면 될수록 민주주의는 퇴보하기 마련이다. 치열한 정쟁으로 인해 무력해진 민주적 제도들이 무수하게 많다. 국회가 민생을 챙기지 않은지 오래고, 사법부의 권위가 떨어졌고, 언론을 믿지 않고 유튜브 같은 사회네트워크만 좋아하고, 시민사회는 정치개입으로 바쁘다. 여기에 사회갈등으로 인해 정부의 정책 수립과 집행이 무기력해진 것을 포함하면 사실상 한국의 민주적 거버넌스 구조는 정상 가동되고 있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뉴욕타임스 지가 정치학 저서로는 드물게 베스트셀러로 선정한 '민주주의는 어떻게 죽는가'라는 책에서 저자들은 "민주주의는 총을 가진 사람에 의해서만 죽는 것이 아니고 정치인들의 심각한 갈등에 의해서도 죽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민주주의의 비공식 인프라인 규범과 불문율을 무시하거나 또는 민주주의의 '부드러운 가드레일'인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력을 상실할 정도로 빗장 풀린 정치적 갈등이 전개되면 민주주의는 퇴보할 수밖에 없다며 트럼프 사례를 지적하고 있다. 한국의 정치적 양극화와 상호 적대감은 이들의 경고를 넘어서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관용과 인내의 규범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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